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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유린은 관용 대상일 수 없다

입력
2024.12.06 17: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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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선포 사실상의 국정 포기 선언
권력 안위 위한 군 투입이 소동일 수 없어
윤 대통령 옹호가 과연 보수의 살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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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발표한 다음 날인 지난 4일 새벽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이 창문을 깨고 본청 내부로 진입하고 있다. 독자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발표한 다음 날인 지난 4일 새벽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이 창문을 깨고 본청 내부로 진입하고 있다. 독자 제공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인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꼽았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군사독재 시절로 되돌리려 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목도하면서 베버를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27년의 '칼잡이 검사' 경력만 가진 윤 대통령이 정치인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한번 던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수 정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됐을 때부터 제기된 이러한 우려는 '국정 포기 선언'과 다름없는 반헌법적 계엄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지난 2년 반 동안 국정 책임자로서 정치를 이해하고 체득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결과다. 지난 4·10 총선 참패 이후 "이젠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발언도 공수표였다.

윤 대통령이 온갖 의혹이 불거진 부인을 공사 분별 없이 방어하는 모습은 대의를 위한 헌신을 뜻하는 열정과 거리가 멀다. 야당 협조가 불가피한 4대 개혁 추진을 강조하면서 야당에 걸핏하면 '종북·반국가세력'이란 딱지를 붙이는 모습에선 개혁 완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책임감은 찾을 수도 없다. 자기를 객관화하고 여론을 읽을 수 있는 균형감각이 있었다면 유죄 판결을 받은 구청장을 사면한 즉시 다시 그 자리에 출마시키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거대 야당에 의해 제약받는 환경이 답답했을 수 있다. 그것이 요건도 갖추지 않은 계엄을 선포한 명분일 수는 없다. "야당을 향한 경고 차원"이었으며 정당한 권한 행사라는 윤 대통령의 강변에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압도적 여소야대 구도는 지난 총선 민심을 통해 윤 대통령이 받아든 성적표였다. 이를 뒤집기 위해 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와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행위는 '총선 불복'이다.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군과 정보기관에 지시한 내용을 포함해 점차 드러나고 있는 사태 전말에는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김 전 장관은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을 투입한 목적에 대해 "계엄 해제 표결을 막고,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증거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 등에 대한 체포 지시가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계엄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 언론 출판 통제, 미복귀 전공의 처단이 눈앞의 현실로 나타났을 것이다.

한 정치 원로는 "군을 동원한 친위 쿠데타 시도"라며 "인정과 관용의 영역을 벗어났다"고 했다. 자신의 안위를 목적으로 군을 동원해 의회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 것은 국가 기강 문제로, 결코 용서하거나 타협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이번 사태를 대통령 즉흥적 성격에 의한 소동으로 평가절하해선 안 되는 이유다.

야6당과 무소속 의원 전원이 참여한 탄핵열차는 출발했다. 탄핵은 대통령에게 분명한 책임을 묻되, 국가와 정치를 혁신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철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저서 '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에 따르면, 성공한 탄핵은 중대성, 대중성, 초당성이란 세 가지 요건을 갖추고 있다. 반헌법적 계엄과 탄핵 찬성 여론이 70%를 넘는 것을 감안하면 중대성과 대중성은 충족한 셈이다.

탄핵 퍼즐의 마지막 조각인 초당성을 충족할 수 있을지는 국민의힘에 달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보수 궤멸 트라우마로 주저하는 분위기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유리한 조기 대선 환경을 마련해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헌정을 유린하고 국격을 추락시킨 대통령의 편에 서는 게 보수가 사는 방안일 수 없다. 차기 지도자 선택도 결국 국민이 판단할 몫이다.

김회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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