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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국가세력'에 집착하던 尹, 끝내 계엄령으로 국민과 맞서

입력
2024.12.04 14:40
수정
2024.12.04 14:5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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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내부로 계엄군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내부로 계엄군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뉴시스

“실정의 책임을 야당에, 야당을 종북 반국가세력으로 치부한 반이성의 결과다.”

윤석열 대통령이 만들어낸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한 여권 관계자가 내린 평가다. 취임 후 국면마다 “반국가세력”을 외쳤던 윤 대통령은 3일 끝내 비상계엄 선포라는 자충수에 빠져, 반헌법적 비상계엄 사태를 야기시킨 데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윤 대통령은 3일 심야에 군사작전을 하듯 선포한 비상계엄의 이유를 ‘반국가세력’에서 찾았다. 그는 긴급 담화 형식으로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강변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감사원장,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해 탄핵 절차에 들어간 것을 겨냥한 것이지만, 결과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비상계엄으로 대응한 것이다. 선포와 동시에 200명이 넘는 계엄군이 국회를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고,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등 여섯 가지 사항을 담은 포고령(제1호)이 내려졌다.

지도자의 왜곡된 이념과 사안에 대한 잘못된 판단이 결국 국민과 정면으로 맞서는 참사를 초래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반국가세력' 용어에 집착했다. 2022년 10월 여당 원외당협위원장 초청 오찬에서 처음 등장한 말이다. 그러나 반국가세력의 정체가 모호하고, 대통령이 지나치게 이념 논리에 빠져 정치를 선악의 이분법으로 보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올 4월 총선 패배 이후 잦아드는가 싶었던 윤 대통령의 고집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다시 튀어나왔다. “사이비 지식인들은 가짜뉴스를 상품으로 포장해 유통하며, 기득권 이익집단을 형성하고 이들이 바로 우리의 앞날을 가로막는 반자유세력, 반통일세력"이라고 지목한 게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언론계와 정치권에선 “자신에게 비판적인 국민 모두를 척결해야 할 '반국가세력'으로 보는 것이냐”는 우려와 비판이 쏟아졌지만 아랑곳없었다. 며칠 뒤 윤 대통령은 부처 장관들과 함께하는 국무회의 석상에서도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며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높일 방안을 적극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윤 대통령이 ‘반국가세력’을 언급할 때마다 감싸기 바빴다. 지난해 6월 자유총연맹 69주년 창립 행사에서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를 향해 "반국가세력"이란 프레임을 씌웠지만 당시 대표였던 김기현 의원은 "대통령이 한 발언은 정확한 팩트에 근거한 것"이라고 두둔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우리 내부에는 적이 있다’는 식의 내용을 담았을 때 당과 주변 참모들이 강한 우려를 전달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내년이면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직도 자유민주주의를 얘기하면서 헌정을 군사적으로 중단시키려고 계엄을 선포하는 ‘상상력의 빈곤’에 처해 있다”고 비판했다.

김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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