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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컴퓨터는 주판 수준" 국내 첫 상용 양자컴 가동... 저렴한 혁신신약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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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장막이 걷히자 거울 같은 표면의 원통이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연세대가 국내 최초로 도입한 상용 단계 양자컴퓨터 ‘IBM 퀀텀 시스템 원’의 냉각기다. 냉각기 안에는 마치 신경망이 촘촘히 얽힌 샹들리에 같은 모습의 양자컴퓨터가 들어 있다. 컴퓨터에 장착된 127큐비트급 양자프로세서(QPU) ‘IBM 퀀텀 이글’이 초전도 방식으로 구동되는 만큼, 냉각기 안의 온도는 늘 영하 273도 이하로 유지된다.
연세대는 20일 인천 송도 국제캠퍼스에서 이 양자컴퓨터를 공개하고 정식 가동을 시작했다. 100큐비트급 이상의 양자컴퓨터를 설치한 나라로는 미국, 캐나다, 독일, 일본에 이어 5번째이며, 대학에 설치된 건 세계 두 번째다. 양자컴퓨터는 통상 성능이 100큐비트 이상이어야 실제 연구·개발에 활용할 수 있다. 그간 국내에는 20큐비트 수준의 실험용 양자컴퓨터만 있었다.
양자컴퓨터는 양자물리의 ‘중첩’과 ‘얽힘’을 알고리즘 계산에 활용하기 때문에 막대한 양의 정보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기존(클래식) 컴퓨터는 전기가 통하면 1, 통하지 않으면 0으로 표기하는 2진법 구조의 비트로 구성된다. 그러나 양자컴퓨터의 양자비트(큐비트)는 0과 1의 중첩 상태를 이용해 병렬 계산을 한다. 연세대가 도입한 127큐비트급 컴퓨터는 2의 127제곱 연산을 동시에 하는 속도로, 흔히 ‘우주의 원자 개수보다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고 설명된다. 양자컴퓨터에 비하면 기존 슈퍼컴퓨터가 주판 수준이라는 비유가 나오는 이유다.
연세대는 양자컴퓨팅 연구는 물론 다양한 과학 난제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양자컴퓨터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2022년부터 IBM과 협업해 양자컴퓨팅센터를 구축해왔다. 이날 공개된 양자컴퓨터 자체는 IBM의 자산이며, 연세대가 사용 과정에서 매년 소정의 비용을 낸다. 양자컴퓨터 도입과 함께 신설한 양자사업단에서는 각 분야 양자알고리즘 개발을 지원하고 기술 자문을 할 예정이다. 이학배 양자선도융합사업본부장(응용통계학과 교수)은 “하드웨어가 갖춰진 만큼 소프트웨어 개발에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연세대는 관련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학부와 대학원 과정도 개설할 예정이다.
연세대의 양자컴퓨터는 특히 바이오 분야 연구에 활용될 계획이다. 정재호 양자사업단장(의대 외과학 교수)은 “올해 초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은 베크베즈는 B형 혈우병을 치료할 수 있는 혁신적인 유전자 치료제지만, 주사 하나에 무려 46억 원”이라며 “양자컴퓨팅을 이용해 분자 시뮬레이션에 필요한 계산량을 획기적으로 줄인다면 훨씬 저렴하면서 인류에 기여할 신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는 다양한 연구자와 기관, 기업 등이 양자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공동 활용 생태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그동안 많은 비용을 지불하며 클라우드를 통해 해외 양자컴퓨터를 사용해야 했던 이들에겐 희소식이다. 정 단장은 “이미 항공, 물류 등 다양한 기업이 관심을 보였고, 다음 주부터 간담회가 시작된다”며 “국가 슈퍼컴퓨팅센터를 운영하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도 협업을 모색 중”이라고 설명했다.
양자컴퓨터는 분명 게임체인저이지만 아직 ‘오류’라는 약점이 남아 있다. 오류를 확인하기 위해 관측하는 순간 중첩 상태가 붕괴되어 데이터가 변질된다. 이번에 설치된 양자컴퓨터는 현재 기존 컴퓨터로는 불가능했던 정확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는 ‘유용성 단계’에 도달했다. IBM은 빠르면 3년 뒤 양자컴퓨터의 오류 문제를 극복하고, 기존의 어떤 컴퓨터보다 더 뛰어난 과학적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양자 우위’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했다. 표창희 IBM코리아 상무는 “지난해 오류 완화 기술에 대한 학술 논문을 발표했고, 2029년에는 오류 수정이 가능한 양자컴퓨터를 선보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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