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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사과 밭 따라다닌 운반 로봇, 농민 허리 폈다…'농슬라'가 앞당긴 미래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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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전북 김제시 벽산면의 청하농원에선 60, 70대 작업자 다섯 명이 막 수확을 시작한 사과를 바쁘게 땄다. 사과가 휴대용 통에 열 개 정도 차자 한꺼번에 바닥 위 노란 플라스틱 박스로 집어넣었다. 이렇게 사과 20kg을 담은 박스가 1만1,570㎡(약 3,500평) 크기의 밭에 100개는 돼 보였다.
처음 농사에 뛰어든 20년 전만 해도 박스를 일일이 날라야 했던 농장주 이은주(49)씨 곁엔 농기계 제조업체 대동이 만든 자율주행 운반로봇이 있었다. 그가 로봇에 달린 와이어를 살짝 당기자 운반로봇은 반려견처럼 울퉁불퉁한 밭을 졸졸 따라왔다. 이씨는 '반려로봇'이라고 별명을 붙인 운반로봇에 사과 상자를 5개씩 이 층으로 쌓았다.
이씨가 과수원 중앙의 트럭 옆에 세운 운반로봇은 적재함 높이를 차량 짐칸과 똑같이 올려 맞췄다. 사과 열 상자를 큰 힘들이지 않고 운반로봇에서 트럭으로 끌어 옮겼다. 올해 최대 2,000박스 수확을 예상하고 있는 이씨는 운반로봇 덕에 예전 같으면 세 명이 할 일을 혼자 한다고 했다. 그만큼 인건비도 줄었다. 육체적이든 비용이든 여러모로 허리를 펼 수 있게 된 셈이다.
원래 사용하던 운반 자동차 'SS 운반기'의 시동을 켜자 내뿜는 매연, 기계 소리가 코와 귀를 찔렀다. 그는 냄새, 소음이 없는 운반로봇을 이용하니 하루 종일 공해 속에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사라졌다고 했다.
운반로봇이 봄여름 철 밭에서 홀로 자율주행하면서 농약을 뿌리는 모습도 기대하고 있다. 농약이 피부에 닿을까 봐 꽁꽁 싸맸던 과거와 달리 안전하게 멀리서 지켜볼 수 있어서다. 이씨는 "농촌에선 짐을 나를 일이 많은데 운반로봇을 사용한 후 어깨에 눌러 앉아있던 피곤이 줄었다"며 웃었다.
대동은 그동안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운반로봇을 만들고 이씨를 포함한 체험단을 모집·운영했다. 와이어로 조종하는 운반로봇 외에 애플리케이션(앱)을 써서 혼자 움직이게 하는 자율주행형도 있다.
대동이 개발하고 있는 '무인 농작업 트랙터'도 운반로봇처럼 농민의 일손 걱정을 덜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같은 날 전북 김제시 부량면의 한 밭에 나온 만능 농사기계 트랙터는 소가 땅을 갈 듯 흙 속 거친 돌을 솎아냈다. 그런데 다양한 능력을 가진 기계인 만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작업자가 타는 트랙터 운전석은 텅 비어 있었다.
혼자 작업을 시작한 트랙터는 밭 끝에 다다르니 알아서 홱 돌고는 하던 일을 마저 했다. 4m 정도 앞에서 사람이 휙 나타나자 그땐 스스로 멈췄다. 대동이 약 2,500시간의 농경지 주행, 300만 장 넘는 농업 환경 이미지를 수집한 후 인공지능(AI)으로 공부시킨 결과다. 대동은 이 트랙터를 자율주행차 테슬라와 농기계를 결합한 '농슬라'라고 불렀다.
대동은 2026년 무인 농작업 트랙터가 실제 농사 현장에서 쓰이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상용화가 이뤄지면 밤에도 트랙터 홀로 작업하는 게 가능해진다. 따로 돈을 들여 트랙터 전문가를 고용하지 않아도 된다. 제대로 일하지 못한 미작업률은 2% 수준으로 전문가보다 낫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처럼 대동은 기계를 무인화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다만 농기계의 로봇화가 대동이 그리는 미래농업의 전부는 아니다. 대동은 기존에 없던 농기계를 활용하는 동시에 농업 전 과정을 디지털화해 농작물 생산성을 높이는 정밀농업을 꿈꾸고 있다.
김제에서 생육 상태에 맞춘 재배법으로 벼를 키운 정밀농업 시범 사업 결과, 비료는 7% 덜 썼고 쌀은 6.9% 더 수확하는 등 성과도 냈다. 원유현 대동 대표는 "대동의 농업 AI 기술은 농가 고령화, 농경지 감소, 급격한 기후 변화 등 국내 농업을 위협하는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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