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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증언하는 선교사 편지, 아직도 미국 땅에 묻혀 있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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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대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겐 가장 큰 걸림돌이 자료 부족이에요. 우연한 기회에 과거 내한 선교사들이 남긴 방대한 분량의 편지가 그대로 남아 있는 걸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독교 연구자는 아니지만 이 자료를 목록화하는 것만으로 많은 연구자에게 문을 열어 줄 수 있겠다 싶었죠."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에서 구한말·일제강점기 서구 문물을 전한 내한 선교사의 편지 기록을 보관하는 디지털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한미경(61) 박사는 작업을 시작한 계기를 이렇게 말했다.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공공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했던 한 박사는 구한말 한국에서 활동했던 선교사의 기록을 찾아 달라는 한 신학대 대학원생의 요청으로 자료를 검색하다 북미 지역 기록관에 산재해 있는 선교사 편지의 존재를 알게 됐다.
자료의 역사적 가치를 단박에 알아본 그는 북미에 흩어진 전문 기록관, 신학대학의 자료를 샅샅이 뒤지며 조사에 나섰다. 1884년에서 1942년 사이 한국으로 파송된 미국 선교사가 선교지에서의 활동을 보고하는 편지를 소속 교단에 전한 편지는 대략 2만여 종.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기 위한 밑 작업으로 그는 선교사의 낱장 편지와 묶음으로 보관돼 있는 편지 컬렉션의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목록을 만들고 유형을 분류했다. "여러 곳에 산재해 접근하기 어려운 방대한 자료에 연구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려면 목록화하고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했죠. 개인적으로 엄두가 안 나는 작업이었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뛰어들 수 있었어요."
1,500명이 넘는 선교사가 남긴 편지를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며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선교사들이 남긴 희귀 자료도 여럿 발견했다. 최초의 여성 의료 선교사로 파송된 애니 앨러스(1860~1938)가 소속인 미국의 북장로교에 보낸 편지에는 최초의 근대 병원인 제중원에서 근무하며 여성을 위한 부인과를 담당했던 근무 일지, 명성황후의 시의가 돼 처음으로 왕후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진찰한 일화 등이 상세히 담겨 있었다. 전남 순천에 안력산(安力山) 병원을 세우고 미국으로 돌아가 후원자로 활동한 알렉산더(1876~1929)에게 당시 전남에서 사역 활동을 하던 미국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이 보낸 편지도 대거 발견됐다.
지난한 작업 결과를 토대로 쓴 박사논문 '내한 선교사 편지와 디지털 아카이브'는 동명의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한 박사는 그 작업을 이어 연세대 기독교문화연구소 소속 연구자들과 함께 선교사들의 친필 편지를 발굴해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5년 기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해방 전까지 1,500여 명의 선교사가 남긴 기록 중에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일부에 불과해요. 100년 전 한국의 모습을 생생하게 증언해 줄 귀한 1차 자료들이 아직도 미국 땅에 묻혀 있어요. 발굴 작업이 이어져야 하는 이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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