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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규율 위반 재소자에 '징벌 보고서' 손도장 강제는 위법"

입력
2024.11.11 11:33
수정
2024.11.1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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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한 진술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

서울 송파구 옛 성동구치소 내 독방. 기사 내용과 직접적 연관 없음. 뉴시스

서울 송파구 옛 성동구치소 내 독방. 기사 내용과 직접적 연관 없음. 뉴시스

교도소 수용자가 소란을 피워 징벌 대상이 되었더라도, 교정당국이 해당 수용자의 규율 위반 보고서에 지장 찍기를 강요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수용자의 무인(지장 날인) 거부도 헌법이 보장하는 진술거부권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취지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수용자 A씨가 대구교도소장을 상대로 제기한 징벌처분취소 소송에서 지난달 25일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2022년 4월 다른 재소자와 이불을 개는 문제로 실랑이를 하다 교도관에게 적발됐다. 경미한 규율 위반의 경우 조사 및 징벌 대신 그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작성하고 경고하는 것으로 대신하는데, 교도소 측은 이에 따라 보고서를 만든 뒤 A씨에게 지장을 찍으라고 지시했다.

A씨는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고함을 지르며 무인을 하지 않겠다고 저항했다. 결국 교도소 측은 다른 수용자와 다툼(1번 처분사유)에 더해, 지시 불이행 및 직무 방해를 각각 2번, 3번 처분사유로 하여 금치 20일 처분을 내렸다. 금치는 형집행법상 가장 무거운 징벌로, 수용자를 독방에 가두는 조치다.

A씨의 불복으로 이어진 행정소송에서 쟁점은 교도관의 날인 지시가 적당한지로 좁혀졌다. 형집행법상 교도관이 수용자에게 적발 보고서에 대한 무인·서명을 요구할 수 있다는 규정은 명문화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A씨도 "보고서 내용을 인정할 수 없어 무인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A씨와 다른 수용자 간 다툼은 징계 대상으로 봤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교도관의 지장 날인 강제는 헌법상 진술거부권을 침해하는 것이어서 자기부죄금지원칙(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에 따라 A씨는 이를 거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즉, 2·3번 사유는 성립하지 않는단 것이었다.

1심 재판부는 "진술거부권은 형사절차뿐 아니라 어디서나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것"이라면서 "이 사건 적발 보고서는 향후 징벌 대상이 되거나 형사책임과도 연결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수용자는 교도관의 무인 지시를 거부할 헌법상 권리가 있다"고 짚었다.

결과적으로 1번 사유만으로 금치 징벌을 내리는 셈이 되니, 처분 자체를 취소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항소심에서 교도소 측은 "지장을 찍고 싶지 않으면 조사를 받으면 되는 것인데도 A씨는 계속 소란을 피웠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 역시 "무인 지시 자체가 적법하지 않다"고 물리쳤다. 대법원도 앞선 판단을 수긍하고 교도소 측 상고를 기각했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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