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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유죄 판결 후 정상 출근한 공무원… 장수군, 안일 대응 논란

입력
2024.11.04 17:04
수정
2024.11.04 17:48

동료女 강제추행 혐의로 7급 공무원 기소
1심서 징역 6개월·집행유예 1년 선고
피해자와 분리 조치 후 병가 내고 정상 출근
서초구청은 수사 개시되자 즉각 직위해제
"조직 내 성폭력, 보다 엄격한 기준 적용해야"

장수군청 전경. 장수군 제공

장수군청 전경. 장수군 제공

강제추행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북 장수군청 공무원이 정상 근무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장수군은 1년 넘게 가해자에게 아무런 처분을 내리지 않다가 1심 선고가 나자 뒤늦게 직위 해제 조치를 내려 안일한 대처를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4일 장수군 등에 따르면 전주지법 남원지원 형사1단독은 지난달 29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공무원 A(7급)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 강의 40시간 이수를 명했다. 국가공무원법상 성범죄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당연 퇴직 사유에 해당된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억울하다”며 혐의를 부인한 A씨는 1심 선고 당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A씨는 지난해 10월 11일 사무실에서 야간 근무를 하고 있던 20대 동료 여직원 B씨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불쾌감을 느낀 B씨는 A씨를 경찰에 신고했고, 재판까지 이어졌다. 군은 사건 발생 이틀 뒤 A씨와 B씨를 각각 다른 부서에 배치해 분리 조치했다. A씨는 이후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병가와 연차를 수시로 냈다.

현행 국가공무원법상 단체장은 △성범죄 등 비위 행위를 저질러 검찰 등 수사 기관에서 수사를 받거나 △형사 사건으로 기소된 경우에는 직위 해제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장수군은 검찰로부터 ‘A씨를 기소했다’는 통보를 받은 뒤 절차대로 전북도에 징계위원회를 열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도는 A씨가 혐의를 부인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어 1심 판결이 나온 후 판단키로 했다는 게 군 설명이다. 군은 A씨에 대한 직위 해제도 검토했지만, 장기간 병가를 내면서 사실상 흐지부지됐다.

결과적으로 A씨는 사건 발생 후 1년 넘게 아무런 제재나 업무상 불이익 없이 병가 또는 근무 기간 중 경찰·검찰 수사와 1심 재판까지 받았다.

이를 두고 장수군 안팎에선 “A씨에 대한 군 대응이 안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장수군 한 공무원은 “다른 지자체에선 성범죄와 관련해 수사 개시 통보만 받더라도 직위 해제 처분을 한다”며 “공무원 3대 비위 중 하나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는데 선제적인 조치가 매우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낸 황지영 젠더정의행동 GOMA 소장은 “규모가 작은 시·군에서는 여전히 피해자 보호보다 가해자 중심으로 사안을 처리한다”면서 “조직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최소한 대기발령 조처 등 여느 사건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서울시 서초구청은 성 비위에 연루된 공무원 3명에 대한 경찰의 수사 개시 통보 문서가 접수되자 이튿날 곧바로 해당 공무원들을 직위 해제했다.

군 관계자는 “A씨가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했고,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모니터링을 꾸준히 했다”며 “6급 이하 공무원의 품위 유지나 업무 수행 관련한 중징계 사안은 전북도에서 인사위원회를 열도록 돼 있어 조만간 절차대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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