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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 만에 열린 '동백림 사건' 재심… 고 윤이상 측 "위법수집 증거, 무죄"

입력
2024.10.24 15:43
수정
2024.10.2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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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 "조서·법정 진술 증거 사용 가능"
사건 기록 확보 필요, 두 달 뒤 속행

1985년 5월 21일 독일에서 촬영된 작곡가 윤이상의 생전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5년 5월 21일 독일에서 촬영된 작곡가 윤이상의 생전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정희 정권 당시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작곡가 고 윤이상(1917~1995)의 재심 첫 공판에서 과거 재판 증거의 효력을 두고 변호인과 검찰이 공방을 벌였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권순형)는 24일 윤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재심 첫 공판을 열었다. 1967년 사건 발생 후 57년 만이다. 재심 청구인인 윤씨 자녀는 참석하지 않았다.

윤씨 측은 애초 동백림 사건이 조작됐다는 점을 내세워 재심에선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씨 측 법률대리인은 "처음부터 위법한 사유에 의해 체포돼서 이뤄진 수사이기 때문에 압수물도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 보는 게 명확하다"며 "법정에서도 불법 감금된 상태에서 진술한 것이고, 추가 증거도 없는 상황인 만큼 법리적으로는 증거불충분에 따른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불법 구금 부분에 대해선 다투지 않겠다면서도, 과거 검사가 작성한 조서와 법정에서의 진술은 임의성이 있어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재심 개시 단계에서 대법원이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한 만큼 구금의 불법성을 다시 다투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불법구금을 사실로 인정하더라도 사안의 중대성과 절차적 위법이 중하지 않은 부분 등을 고려하면 본건 혐의는 유죄로 인정된다"고 말했다.

양측 주장을 청취한 재판부는 사건 기록 확보가 녹록지 않은 상황을 감안해 다음 기일을 두 달 뒤인 12월 19일에 열기로 했다. 재판부는 "오랜 기간 기록 소재를 확인하고자 노력했지만 육군검찰단에선 기록 검색이 되지 않는다는 회신을 받았다"며 "당초 공판기록과 증거기록이 제출돼야 할 것 같아 가능하면 신속하게 검찰 측에서 제출하거나 소재를 확인해달라"고 당부했다.

동백림 사건은 1967년 중앙정보부(옛 국가정보원)가 유럽에 있는 유학생과 교민 등 200여 명이 동베를린 북한대사관을 드나들며 간첩활동을 했다고 발표한 사건이다. 이 일로 서베를린에서 활동하던 윤씨는 국내로 이송돼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간첩 혐의는 무죄였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당시 독일연방공화국(서독) 정부의 항의로 박정희 정권은 2년 뒤 윤씨를 석방했다.

2006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는 박정희 정권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백림 사건을 대규모 간첩사건으로 확대·과장했다고 밝혔다. 당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67년 6월 17일 독일에 파견된 중정 직원 등은 거짓말로 윤씨를 한국대사관으로 유인했다. 조사 결과를 토대로 유족들은 2020년 5월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해 5월 법원은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이에 불복해 검찰이 항고했으나 올해 7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윤씨는 동백림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뒤 서독으로 돌아갔고, 2년 뒤 서독 국적을 취득했다. 이후 1995년 사망할 때까지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유해는 2018년 국내로 돌아와 고향(연고지)인 경남 통영시의 통영국제음악당에 안장됐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선 매년 윤이상국제콩쿠르(첼로-피아노-바이올린 돌아가며 열림)가 열리고 있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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