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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집 딸 강정인이 저주에 걸려 닭강정이 된다...문학동네 최초의 '저학년 동화' 대상작

입력
2024.10.29 10: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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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아 작가의 동화 '해든 분식'
제1회 문학동네초승달문학상 대상
단일 장르로 취급됐던 어린이책을 세분화
초승달(저학년), 반달(중학년), 보름달(고학년)로

초등학교 저학년 대상 동화 '해든 분식'으로 제1회 문학동네초승달문학상 대상을 받은 동지아 작가. 본인 제공

초등학교 저학년 대상 동화 '해든 분식'으로 제1회 문학동네초승달문학상 대상을 받은 동지아 작가. 본인 제공

#. '우리 반은 해든반이고, 아이들은 햇살이에요.'

지난해 초등학교 2학년 딸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보내온 첫 번째 가정통신문은 이렇게 시작하는 장문의 편지였다.

#. "엄마, 엄마! 우리 반에 강정인이라는 애가 있는데, 별명이 닭강정이다?"

'아, 닭강정인 닭강정?' 딸의 재잘거림 속에서 '이 재미있는 걸 나만 혼자 알 수 없지' 싶어 마음속에 담아 뒀다.

제1회 문학동네초승달문학상 대상을 받은 동화 '해든 분식'의 탄생 비화다. "제가 웃긴 거는 널리 알려야 하고, 감사함은 반드시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거든요. 선생님의 애정 어린 시선에 감사해서 뭐든 해야 될 것 같아서 말이죠. 그럼 이야기를 쓰자 했던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거니까." '해든 분식'을 쓴 동지아(40·필명) 작가의 말이다. '해든 분식'은 초등학교 1·3학년인 두 딸을 둔 엄마이기도 한 그의 첫 번째 책이다. 문학동네가 새로 만든 동화 공모전의 첫 번째 대상 수상작으로 화려한 데뷔를 한 셈.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동화작가의 꿈을 키웠던 동지아 작가는 올해 꼭 초등 3학년이 된 첫째 딸로부터 이야기의 모티프를 얻었다. 본인 제공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동화작가의 꿈을 키웠던 동지아 작가는 올해 꼭 초등 3학년이 된 첫째 딸로부터 이야기의 모티프를 얻었다. 본인 제공


초등학생 딸이 모티프… "담임샘께 감사해서"

'해든 분식'은 분식집 둘째 딸 강정인이 비 오는 날 자신이 건 저주에 되레 걸려 닭강정으로 변신한다는 내용의 기상천외한 동화다. 동 작가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어느 날 자다가 새벽 5시쯤 갑자기 눈이 번쩍 떠져서 30분 만에 이 스토리를 메모하고 다시 잠들었다"고 했다. 공들여 쓰던 작품은 사실 따로 있었다. 그는 "('해든 분식'은) '너무 재밌다'는 인상으로 마음속에 남아있던 것들로 머리에 번개 치듯 타이밍이 맞아 썼다"며 "쓰는 행위가 너무 힘들어서 힘 빼고 쉬어가자는 생각으로 붙잡고 두 달 반 만에 완성했다"고 덧붙였다.

마침 문학동네에서 초승달문학상 공고를 냈다. 지난해 8월이다. 1999년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이 시작된 이후 25년 만에 저학년 동화('초승달문학')만을 떼어내 제정한 새로운 공모전이었다. "작품 두 편을 공모전에 보내고 기억에서 지웠어요. 상을 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요. 연말에 워크숍을 빙자한 가족 여행을 가서 남편, 딸들과 '내 원고에는 무슨 문제가 있는지' 토론을 할 계획을 세웠죠." 지난해 12월 말 강화도 한 펜션에서 그는 문학동네로부터 당선 전화를 받았다. '해든 분식'이 수상작이라고 해서 또 한 번 놀랐다.


동지아 작가가 '해든 분식'에 사인을 하고 있다. 문학동네 제공

동지아 작가가 '해든 분식'에 사인을 하고 있다. 문학동네 제공


"나도 재미있는 걸 쓰고 싶어"… 기상천외한 이야기

출판업계에 종사하던 동 작가가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몰두한 건 2년 전부터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직장을 그만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키웠던 꿈에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는 심경석의 '학교는 밤마다 이상해', 신동일의 '요술친구 깨묵이의 별난 모험' 같은 책을 읽으면서 "너무 재미있다, 나도 이런 걸 쓰고 싶다"고 되뇌었다.

'해든 분식'은 "쫀득쫀득, 고소하고 달콤한 닭강정맛"(심사평) 나는 동화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아동문학 일러스트 대가인 윤정주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책을 두 번, 세 번도 읽게 하는 요소다. "이 상을 받았다는 것보다 (섭외가 어려운) 윤 작가님이 그림을 그렸다는 데 다들 놀라시더라고요. 제 작품에 하나의 자부심이 있다면 처음 읽었을 때와 다시 읽었을 때 숨은 그림찾기 하듯 달리 발견할 수 있는 재미가 있다는 거예요. 여기저기 숨겨놨습니다."


해든 분식·동지아 글·윤정주 그림·문학동네 발행·88쪽·1만1,000원

해든 분식·동지아 글·윤정주 그림·문학동네 발행·88쪽·1만1,000원


문학동네가 '저학년 동화'와 '고학년 동화' 분리한 이유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은 '작가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상'으로 꼽힌다. 1990년대 비룡소를 시작으로 창비, 사계절 출판사 등에서 여러 어린이문학상이 생긴 이래 한국 아동문학은 질적·양적 성장을 이뤘다. '어린이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장르의 발전을 수용하기 어려워지면서 초등 저학년과 고학년 대상 동화를 분리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아동 발달 과정에 따라 어린이책을 초승달(저학년)·반달(중학년)·보름달(고학년) 문고로 나누던 문학동네가 이번에 초승달문학상을 만든 이유다.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4회부터 쭉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유영진 아동문학평론가는 "옛이야기를 모태로 하는 환상 속 동화(저학년)와 소설의 논리와 미학에 기반한 아동소설(고학년)은 결이 많이 다른데 동화로 통칭됐다"며 "이 둘을 한 저울에 달면 상대적으로 고학년 동화가 더 괜찮아보이는 일종의 착시 현상도 있어 분리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긴긴밤'과 '5번 레인'이 대상을 공동 수상한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은 대표적인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었다고. 저학년 대상 동화 출품작들이 빛을 못 봤던 탓이다.

'해든 분식'처럼 "세계에 대한 믿음과 안정감을 주는 동화"는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어린이들에게 중요하다. 유 평론가는 "아이들을 과소평가 말라"면서 "특히 질문이 남는 동화가 진짜 좋은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해석되지 않은 나머지가 나중에 자기 삶을 바꾼다'는 얘기다. "이게 뭐지 의문이 남으면 5년, 10년 후 다시 솟아오르거든요. 훗날 비슷한 경험을 했을 때 '아, 이거였구나' 하면서요. 동화의 힘이 발휘되는 거죠."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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