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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로또뿐이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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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후배 A는 매주 로또를 산다. 당첨만 되면 회사부터 그만두겠다는 계획이다. 친구 B도 로또 추첨 방송이 나오는 토요일 오후 8시 35분만 기다린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은 1등 당첨밖에 없다고 믿는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A나 B가 점점 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복권 판매액은 3조6,16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 증가했다. 일부 매체에서 판매액을 4조3,000억 원, 증가율을 26%로 보도한 건 착오다. 어쨌든 올해 복권 판매액은 처음으로 연간 7조 원도 넘을 전망이다.
□ 사실 복권은 사면 살수록 손해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은 814만 분의 1이다. 그럼에도 복권을 사는 건 그만큼 사는 게 힘들어졌다는 반증이다. 월급만 빼고 다 오른 물가는 내려가는 법이 없다. 대출 이자와 학원비 부담에 쓸 돈도 없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다고 한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남은 건 빚뿐이다. 한강변 신축 아파트값이 60억 원을 찍는 등 양극화의 골이 깊어지며 상대적인 박탈감은 더 커졌다. 결국 ‘혹시’ 하는 마음으로 복권에 기대 헛꿈을 꾼다. 아무리 돌아봐도 로또 당첨 외엔 해결책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 복권 당첨금을 올리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현재 로또 1등 당첨자는 매주 평균 12명, 1인당 1등 당첨금은 21억 원 안팎이다. 물가가 많이 오른 만큼 당첨금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적잖다. 실제로 1969년 주택복권이 처음 나왔을 때 1등 당첨금(300만 원)은 당시 집 한 채를 거뜬히 사고도 남았다. 지금은 로또 1등 당첨자도 세금 빼면 강남 아파트 사는 게 쉽지 않다.
□ 그러나 당첨금이 커지면 복권을 사는 이는 더 늘어날 것이다. 당첨 확률은 줄어들고 복권값만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나서 사행심을 부추기는 게 과연 옳은 방향인지 의문이다. 그보다는 성실하게 산 사람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고 빈익빈 부익부를 해소하기 위해 힘쓰는 게 더 중요하다. 인생역전의 꿈을 땀과 노력이 아닌 요행에 기댈 수밖에 없는 나라, ‘희망은 로또뿐’인 사회로 갈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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