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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아프리카 르완다인이 외쳤다... "한국산 동물의약품 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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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아프리카라고?"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는 흔히 영화 '호텔 르완다'(2006)로 연상되는 대학살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아프리카의 싱가포르'로 발돋움하고 있다. 깨끗한 거리, 화려한 건물에선 불과 30년 전 식민지배 분열통치 여진으로 발생한 내전에 80만 명, 인구 10분의 1이 스러진 국가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도심을 벗어나자 르완다의 민낯이 나타났다. 키갈리에서 40㎞를 달려 축산농가를 찾아가는 길, 얼기설기 지은 판자촌을 지나 울퉁불퉁한 붉은 흙길이 이어졌다. "여기가 아프리카였지." 농림축산식품부가 꾸린 아프리카 시장개척단과 함께 4일(현지시간) 방문한 현지 산란계장에선 동물용의약품이 미비한 아프리카 축산업의 현주소를 마주할 수 있었다.
'1,000개의 언덕'이란 별명답게 굽이진 오르막길 끝에 힐탑, 플래티넘 농장이 자리했다. 풀어놓고 기르는 평사 사육장에 산란계 수천 마리가 모이를 쪼고 있었다. 언뜻 건강해 보이지만 온전히 길러내기엔 시련이 많다. 벨기에에서 병아리가 수입되는 과정부터 이미 쇠약해져 교배는 언감생심, 전염병이 돌면 손쓸 틈 없이 폐사하기 일쑤다.
가장 골머리를 앓게 하는 건 저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다. 산란계 5,000마리를 키우는 힐탑 농장주 알리 비봉게(41)는 "지난해 2월 AI로 산란계 700마리가 죽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루아침에 농장 10분의 1 규모 닭을 폐사할 수밖에 없었다. 저병원성 AI는 한국에선 싸고 질 좋은 다양한 자체 백신이 개발됐고, 공급이 충분히 이뤄져 피해가 현저히 낮아진 질병이다.
문제는 돈이 있어도 백신이 부족해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비봉게는 "르완다에서 가장 큰 수입업체에 요청해도 유럽에서 백신을 가져오는 데 3, 4개월이 걸린다"며 한숨을 쉬었다. 플래티넘 농장주 바토니 플로렌스(47)도 "2021년 백신이 없어 AI로 수백 마리를 폐사했다"며 "질병에 걸리면 항생제, 영양제를 투여해 기운을 차리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르완다 정부는 백신 접종 시기, 종류를 안내할 따름이다. 동물 질병 관리는 주로 민간에 위임됐다. 전염병이 의심돼도 우간다 등 거리가 먼 연구소에 검체를 보내야 정밀 검진을 받을 수 있는데, 몇 달 뒤 결과가 나올 때쯤엔 이미 피해가 막심하다. 비봉게는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한탄했다.
마을·농장 수의사가 증상을 토대로 내준 간이 진단에 맞춰 농장주가 약을 사는 식이고, 한국에선 유해성이 커 금지된 성분이 포함된 약품도 쓰인다. 그마저도 제때 구하기 어렵다. 한국 기업 제품을 살피던 플로렌스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백신은커녕 비타민C도 없다"며 "꼭 한국 의약품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다.
현지 농장주들의 한탄과 요청이 농식품부와 한국동물약품협회, 국내 업체들이 이곳 르완다에 모인 이유다. 축산업 성장이 빠르지만 동물의약품 공급이 부족한 동아프리카 불모지 개척에 뜻을 모았다. 포화 상태인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에서 경쟁력을 발휘해 '수출 4억 달러'를 달성한다는 포부다. 한국 동물의약품 수출은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2021·2022년 잠시 3억 달러를 넘겼다 지난해 2억5,000달러 규모로 위축돼 판로 다변화가 절실하다.
그 첫걸음을 1~3일 키갈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4 VIV 아프리카 박람회' 전시에서 뗐다. 올해 4회째인 이 박람회는 사하라 이남 가금류·산란계 산업의 세계적 공급업체가 모이는 무역 허브다. 35개국 150개 이상 업체가 참여, 60개국 1,732명 이상 관람객이 방문하는 등 아프리카 축산시장 통로로 자리 잡았다. 한국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나탈리 테일러 VIV 총괄은 "한국 참여는 매우 고무적인 일로 그 자체가 아프리카 축산업의 잠재력을 증명한다"고 했다.
협회와 녹십자수의약품(가나다순)·대성미생물연구소·메디안디노스틱·우진비앤지·코미팜 등 5개 업체가 차린 한국관엔 하루 수백 명씩 관람객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바이어들은 "왜 아프리카에서 한국 동물의약품을 찾을 수 없나", "어떻게 구매할 수 있냐" 등 긍정적 반응 일색이었다. 이글벳 등의 한국 제품을 써봤다는 수입업체 관계자는 "유럽산과 비교해도 질적 경쟁력이 있다"며 "가격도 유럽이 100%, 중국이 50%라면 한국은 70% 정도라 합리적"이라고 평했다.
특히 높은 기술력이 주목받았다. 코미팜은 4년간 연구해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백신 개발을 코앞에 뒀다. 앞서 베트남 개발 백신은 부작용이 컸기에 성공하면 사실상 세계 최초다. 코미팜 백신을 맞은 돼지는 감염된 돼지와 동거해도 안전했고, 백신 접종 돼지 혈액을 미접종 돼지에 투입해도 감염되지 않았다. 접종 돼지 태아에게까지 면역 항체가 전달됐다. 최종 야외 농장 시험에 대한 정부 승인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 탄자니아 바이어는 "과학계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게임 체인저"라며 "다른 곳과 계약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진단키트 제조업체 메디안디노스틱 전시관도 북새통을 이뤘다. 진단 시스템이 미비한 아프리카에 가축 질병 진단키트가 보급되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을 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수입·제조업체 관계자는 구제역 진단키트를 보곤 "실험실, 연구비를 다 대줄 테니 (남아공에) 와서 만들어 줄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한국 구제역 방역 프로그램 설명을 들은 그는 자국 정부에 제안, 계약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번 전시로 시장개척단에 참여한 5개 업체는 17개국 48개사 바이어와 진지한 상담을 나눴다. 계약 성사 시 549만 달러 수준의 실적이 예상된다.
3일 열린 '한국-르완다 축산업계 이해관계자 간담회'에도 르완다·케냐·탄자니아·우간다 등에서 약 30명이 참석해 큰 관심을 보였다. 정병곤 동물약품협회장은 "한국은 반세기 만에 큰 경제 성장을 이뤘고 축산·제약산업도 세계적 수준"이라며 "아프리카 역시 최근 급격한 경제 성장에 축산업이 발전하고 있어 좋은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클로드 시리무무 르완다 양돈협회장은 "필요한 만큼 조달받지 못하는 백신, 축산 기술 역량 강화 등 문제 해결 방안을 같이 모색하자"고 환대했다.
이런 수요에도 한국 동물의약품의 아프리카 수출은 지난해 175억 원에 그쳤다. 동아프리카 중엔 케냐(33억 원), 탄자니아(14억 원), 우간다(12억 원), 에티오피아(2억 원) 등에 화학제 일부를 공급하는 정도다. 까다로운 온도 관리가 필요한 백신은 동아프리카 수출 실적이 전무하다. 역으로 개별 기업의 자력 진출이 쉽지 않았을 뿐, 수출 잠재력이 높은 시장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래서 정부가 나섰다. 농식품부 시장개척단은 동물의약품 수출 역량 증진이 기대되는 국가에 국내 제조업체를 동반 파견해 시장을 조사, 인적 자산을 구축해왔다. 2014년 남아메리카 칠레, 페루를 시작으로 13개국 시장을 개척했다. 시장개척단이 활로를 튼 국가의 최근 5년 수출액은 약 1,586억 원에 이른다. 르완다를 전진기지로 삼은 이번 동아프리카 파견이 이뤄낼 성과에 눈길이 쏠린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국가별 맞춤형 수출시장 개척 기회를 만들고 기업 활동을 뒷받침하겠다는 각오다. 이상만 농식품부 농식품혁신정책관은 "아프리카 축산업은 발전 초기 단계라 민간 수출이 쉽지 않아 시장개척단 파견 형태의 민관 협업을 통한 현지 정보망 구축이 더욱 중요하다"며 "한국 동물용의약품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수출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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