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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물' 들어오는데 노 저으려면 '번역'이 관건...한국 문학은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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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한강. 이제는 “한국 문학이 스스로 주변부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세계인과 함께 쓰고 읽힐”(이광호 문학평론가) 시간이다. 한강이 세계 문학의 중심에 진입한 건 작품성과 더불어 그의 언어를 세계인의 언어로 풀어낸 번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수상이 한강 개인의 신드롬으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번역 저변 확대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 문학의 번역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문학번역원)과 교보생명이 운영하는 대산문화재단을 통해 주로 이뤄진다. 그간 문학번역원은 약 2,170건, 대산문화재단은 약 400건의 한국 문학 번역·출간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세상에 나온 한강의 ‘채식주의자’ 영문판과 ‘작별하지 않는다’ 프랑스어판은 각각 영국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2016년)과 프랑스 메디치상·에밀기메 아시아 문학상(2023년)을 받으며 노벨문학상 수상의 발판이 됐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13일 “(두 기관의) 번역 지원 시스템이 (한강의 성취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문학번역원은 샘플 번역부터 작가 해외 초청 행사까지 예산을 고르게 지원한다”면서 “우리 문학을 알리기 위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외국 작가뿐 아니라 외국 편집자들도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문체부 주도로 한강을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려 해외 문화교류 행사 지원에서 배제한 와중에도 그의 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꾸준히 진행됐다. 지금까지 한강의 작품은 28개 언어로 번역됐고, 책의 종 수로는 82권이다. 우찬제 문학평론가는 “이전에는 (번역이) 원로 문인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세계 문학 독자의 수요와 취향에 따라 ‘한강 세대 작가들’을 선보이게 됐다”고 전했다. 독자들이 한강을 원했기에 정치적 바람에 흔들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올해 한국 최초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은 김혜순 시인의 시집 ‘날개 환상통’도 이런 번역 지원에 힘입었다. “한강 작가만이 아니라 이제 한국 문학이 세계 번역 시장에 나가고 있다”는 것이 우미영 한양대 인문과학대학 교수의 말이다. 2016년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을 계기로 세계의 이목이 쏠리면서 한국 문학의 연간 번역 권수는 200종을 넘어섰다. 수요가 이미 입증됐다는 얘기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이런 분위기는 달아오를 전망이다. 그러나 번역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올해 문학번역원에 책정한 정부 예산은 전년 대비 14%(사업비 기준) 삭감된 상태다. 번역출판 지원 사업 예산 역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18여 억 원으로 제자리걸음을 하다가 올해 20억 원으로 찔끔 올랐다. ‘물이 들어와도 노 젓기가 어려운' 수준이다. 강동호 문학평론가는 “문학번역원의 시스템은 잘 구축돼 있다”며 “앞으로의 지원 예산 편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문 번역가 양성과 아울러 해외 문학시장과의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장 대표는 “외국의 문학을 수용하는 단계는 3단계 정도로 나뉜다”고 했다. 국가 지원으로 번역·출판되는 단계를 지나 외국 편집자들이 자발적으로 한국 작품을 찾는 두 번째 단계, 마지막으로는 문학을 학술적으로 비평하고 연구하는 평가자 수용의 단계다. 그는 “한국 문학이 3단계까지 넘어가지 못하면 (한강 작가가 만든 열기가) 일시적 붐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학번역원이 추진하는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 필요성도 제기된다. 현재 문학번역원의 번역아카데미에서 배운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대학 학위가 주어지지 않는 만큼, 정부가 인증하는 관련 기관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곽효환 전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이들에게 학위를 줘야 고국으로 돌아가 한국 문학, 한국 문화 기관 종사자로 인정받으며 한국 문학을 알리는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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