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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서장 유죄, 구청장 무죄... '대책 세울 의무' 있었느냐가 운명 갈랐다

입력
2024.10.01 04:30
수정
2024.10.01 05:26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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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재 전 용산서장, 경비 책임자 첫 ‘유죄’
“경찰의 치안 임무 위반... 대비·대응 미비”
박희영 무죄... "구청 쪽엔 주의 의무 없다"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를 받는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30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금고 3년형을 선고받은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를 받는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30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금고 3년형을 선고받은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15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에 부실하게 대응해 피해를 키웠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이 1심에서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사고 발생 2년여 만으로 참사 당시 현장 경찰 대응을 지휘한 책임자 과실이 인정된 건 처음이다. 반면, 같은 혐의로 기소된 박희영 용산구청장에겐 무죄가 선고됐다. 판결이 엇갈린 지점은 참사 예측 및 대응이 '이들의 업무상 주의 의무에 해당되는지'였다. 경찰은 인파 사고 예측이 가능했고, 경비 대책을 세우고 현장을 지휘할 의무가 있지만 구청은 그렇지 않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경찰 '유죄'... "참사 전후 과실 인정"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금고 3년형을 선고받은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금고 3년형을 선고받은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배성중)는 30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 국회증언감정법상 위증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서장에게 금고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2014년 세월호 이후 우리나라 최대 참사이자 삼풍백화점 이후 서울 도심 최대 인명사고"라며 "이태원 참사는 인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경찰에겐 축제 혼잡 상황에 대비한 치안 유지라는 구체적 임무가 부여된다"며 "정보보고와 용산서의 과거 핼러윈 치안대책, 사고 전날 인파 유입 상황, 지리적 특성을 종합하면 경사진 좁은 골목에 보행자 생명과 신체에 위험이 가해질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고 질타했다. 이어 "(이 전 서장은) 인파 집중을 예방 및 통제, 관리하는 별도 경비 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정보 수집이 필요했음에도 단 한 명의 정보관도 배치하지 않았다"며 업무상 과실이 성립된다고 봤다. 다만 기동대를 투입했어야 할 주의 의무는 과실로 보기 어렵다며 범죄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다.

송병주 당시 용산서 112치안종합상황실장에게도 "안일한 판단으로 차도로 쏟아져 나오는 보행자들을 인도로 밀어 올리라 지시해 밀집도를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금고 2년이 선고됐다. 박인혁 전 용산서 112치안종합상황실 팀장도 신고를 상부나 현장 근무자들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구청 '무죄'... "구체적 주의 의무 없어"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를 받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를 받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1시간 뒤 재판에선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박 구청장을 비롯해 유승재 전 부구청장, 최원준 전 안전재난과장, 문인환 전 안전건설교통국장 등 용산구청 관계자 4명에겐 전원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당시 재난안전법령엔 다중군집으로 인한 압사 사고가 재난 유형으로 분리돼 있지 않았고,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2022년 수립 지침에도 이러한 내용은 없었다"며 "주최자 없는 행사에 대해선 별도 안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없어 업무상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용산구의 재난 대응 체계가 다른 자치구에 비해 특별히 부족하지 않은 점도 고려됐다. 또 용산서에서 이미 200명 이상 이태원에 배치해 질서 유지에 집중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상황이라 (구청이) 협조요청을 따로 하지 않은 점, 구청 폐쇄회로(CC)TV 관제센터 외주업체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린 주체가 용산서에 파견된 경찰관이라는 점도 무죄 판결 근거가 됐다.

이 전 서장과 박 구청장에게 공통 적용된 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는 직접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 전 서장은 부실 대응 은폐를 위해 자신의 현장 도착 시각을 조작하도록 지시한 혐의, 박 구청장은 사전 대책 수립 여부가 문제가 되자 참사 직후 은폐를 위해 허위 사실이 담긴 보도자료를 배포한 혐의를 받았다.

유족 '오열'... "구청 책임 왜 없나"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를 받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30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유가족들이 슬퍼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를 받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30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유가족들이 슬퍼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재판을 마친 이 전 서장은 "법원 결정을 존중한다"며 유족들을 향해 "죄송하고 또 죄송스럽다"고 했다. 박 구청장은 묵묵부답으로 법원을 빠져나갔다. 유가족들은 박 구청장의 무죄 선고에 고성을 지르고 오열했다. 선고 직후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박 구청장에 대해 검찰의 즉각 항소를 촉구하며 "피고인(용산구청)들은 참사 2주 전 백만 명이 몰렸다는 이태원 지구촌 축제에 1,000명 넘는 공무원을 동원하는 등 축제 개최 경험이 있다"며 "이번 참사에서도 (경찰에) 경비 요청을 했다면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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