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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처벌법’은 안 만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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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흑을 백으로 바꿀 수 있다”(박은정 전 부장검사)거나, “조물주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양승태 전 대법원장)고 한다. 대한민국 검찰 얘기다. 본인 입맛에 맞는 표현이겠으나, 마음만 먹으면 먼지떨이식 수사로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처벌할 막강 권력을 쥐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 못 할 팩트다.
공직자 배우자가 이런저런 청탁과 함께 고가 선물을 받았다. 제아무리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흑을 백으로 바꾸는 검찰이라도 현행 김영란법(청탁금지법)으로 배우자를 처벌할 방법은 없다. 법이 참 희한해서 그렇다. 배우자의 금품수수를 금지(제8조4항)하는데, 제재 규정은 없다. 배우자가 금품을 받은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은 공직자만 처벌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검찰’이다. 작심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기소했을 것이다. 청탁과의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을 엮으면 알선수재를 적용했을 수 있다. 대법원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에 대해 ‘알선과 수수한 금품 사이에 전체적∙포괄적으로 대가관계가 있으면 족하다’(2015년)고 판시한다. 그도 아니면 뇌물수수 혹은 변호사법을 들이댔을 수도 있다.
일반 공직자 배우자가 아니다. 공직자는 대통령이고, 배우자는 영부인이다. 지지율이 20%까지 추락했다지만 아직 임기 반환점을 돌지도 않은 살아 있는 권력이다. 더구나 ‘검찰 정권’이다. 선배 대통령의 배우자를 처벌하겠다고 기를 쓰고 달려들 만큼 순진무구하지 않다. 수사팀은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청탁금지법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 검토를 했다. 처벌이 가능한 공직자(대통령)는 수사 근처에도 가지 않았고, 알선수재 등은 애당초 검토 대상에도 없었을 것이다. 명품백을 건넨 최재영씨에 대한 수사심의위원회가 직무 관련성을 인정했으니 난감해지긴 했겠으나, 결론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기소를 남용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게 검찰 기소독점권의 진짜 무기란 말이 새삼 실감 난다.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는 ‘법 왜곡죄’를 두고 말이 많지만, 범죄 혐의를 발견하고도 수사를 않거나 기소 않는 경우 검사를 제재하는 법은 필요하지 않겠나. 의도의 불순함을 배제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면 ‘밈’처럼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자조 섞인 한탄, ‘‘현직 대통령 배우자가 고가의 명품 가방을 받아도 자유로운 나라”를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애석하게도 그럴 것 같다. 이원석 전 검찰총장은 “이번 기회에 공직자 배우자에 대해서도 법률상 미비한 점을 보완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본인 할 도리는 안 하고 법 탓을 하는 게 얄밉기는 해도 틀린 지적은 아니다. 하나 '대한민국 검찰'만큼 막강한 게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공직자 배우자도 처벌할 수 있는 이런저런 법안을 내긴 했지만, 본심도 아니고 의지도 없을 거라 본다.
김영란법 제정 당시를 떠올려 보시라. 당초 정부 원안에는 없던 예외 조항이 국회 상임위 최종안에 포함됐다. ‘선출직 공직자가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는 행위'(제5조2항)다. 국회의원은 공익 목적이라 우기면 다 빠져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배우자 처벌 규정을 만들어도 마찬가지겠으나, 특권에 눈곱만큼의 생채기를 내는 것도 원치 않을 것이다.
고인이 된 '영원한 재야' 장기표가 말년에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에 적극적이었음에도 거둔 성과는 없다. 여야가 ‘김건희 특검법’을 두고는 사활을 걸고 다투면서도, '배우자 처벌법'엔 한마음 한뜻으로 눈을 감을 거라고 본다. 그러니 배우자가 금품 수수 사실을 공직자에게 알리지만 않고 잘 설득시켜 청탁을 이행한다면 누구도 다치지 않을 수 있다는 좋은 ‘꿀팁’만 남게 됐다. 이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길 기대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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