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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어류가 아니다... 美 주도 국제질서도 권위주의 패권과 달라"

입력
2024.09.19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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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힘과 규칙: 국제질서에 대한 두 가지 관점' 저자
"자유주의 국제질서 쇠퇴, 세계 불안정 극대화할 것"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11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11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올해 세계의 가장 큰 사건은 11월 5일(한국시간) 열릴 미국 대통령 선거다. 전문가들은 '미국을 더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귀환하면 이른바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무너지고 미국, 중국, 러시아가 경쟁하는 다극 질서가 올 것으로 전망한다.

좋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강대국이 아니다. 우리에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나. 정치 데이터 분석가인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최근 '힘과 규칙: 국제질서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이라는 책을 낸 이유다.

박 교수를 11일 서울대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고래가 어류가 될 수 없듯,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권위주의 국제질서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아무리 '동맹 청구서'를 들이밀더라도 그것이 중국과 러시아 등이 제시하고 있는 질서보다 진보한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고래는 포유류라는 명제 속에는 과학의 진보가 숨어 있다"며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규칙 중심으로 강대국도 스스로 자기 손을 옭아매 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이 타당하다는 계몽주의자들의 믿음이 조금씩 실현된 사회적 진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동맹청구서'를 받아들이는 이유

'힘과 규칙: 국제질서에 대한 두 가지 관점'·박종희 저자·사회평론아카데미·248쪽· 22,900원

'힘과 규칙: 국제질서에 대한 두 가지 관점'·박종희 저자·사회평론아카데미·248쪽· 22,900원

냉전 이후 국제사회는 미국이 주도한 '자유주의 질서'를 따라 움직였다. 유엔(국제연합·UN), 국제무역기구(WTO) 등과 같은 분쟁 해결절차가 대표적이다.

미국이 만든 질서가 늘 공평하거나 정당한 건 아니었다. WTO의 결정을 무시하는 슈퍼 301조만 봐도 미국은 강대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불평등한 특혜를 누렸다. 박 교수는 "국제질서는 '힘'과 '규칙'이라는 두 가지 핵심 개념을 통해 만들어 진다"며 " 이 두 개념은 물과 기름의 관계가 아니다. 힘이 있어야 규칙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대국은 질서 유지를 위해 힘을 쓰는 대가를 주변 국가들에 요구해왔고, 구조적으로 완벽한 국제질서가 존재하기 어려운 이유기도 하다"고 부연했다.

문제는 미국이 최근 스스로 만든 질서를 부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현상'이 대표적이다. 박 교수는 "미국의 특권을 계속 배제하면서 궁지에 몰면 내부에선 질서유지비용을 포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미국의 이탈을 막고, 다른 강대국의 현상변경을 억제하기 위해 한국과 같은 제3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3국은 질서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교란할 힘은 있다. 바꿔 말하면, 우리에게는 좋은 규칙을 만들 국가들을 도울 힘이 있다는 의미"라면서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이 프랑스와 독일을 화해시키고 설득해 유럽연합(EU)을 결성한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력권 질서의 부활? 세계 불안정 극도로 심해질 것"

박종희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가 11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연구실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박종희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가 11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연구실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그렇다면 '신형대국관계'를 내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상은 국제사회에 무엇을 의미할까. 박 교수는 '세력권 질서'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세력권 질서는 강대국의 힘이 투과된 세력권은 폭력배가 영역을 구축하듯 그 지역 안에서는 안정이 유지되지만 위계적이다. 반면 다른 강대국이 통제하는 영역과는 배타적으로 서로 경계를 지어 큰 전쟁을 피하려고 한다"면서 "전체적으로 평화로운 것 같지만 세력권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폭력배가 요구하는 질서를 따르지 않으면 누구도 구해줄 수가 없는 세상에서 살게 된다"고 말했다. 강대국의 '세력권'을 인정하는 순간, 우크라이나를 겨냥한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을 비판할 근거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세력권 질서와 본질적으로 다른, '고래는 어류가 될 수 없는' 이유다.

박 교수는 시 주석의 인류운명공동체론에 대해서도 "미국처럼 국가들의 자발적 동참을 이끌어내려면 신뢰할 만한 약속 이행이 있어야 한다"며 "최근 중국이 주변 국가 관계를 맺으면서 상대국이 따라야겠다고 믿게 할 만한 규정을 만든 것이 있나"고 반문했다. 이어 "우리가 미국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대내적으론 삼권분립과 언론의 자유를 통해 절차적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했고 국제기구들에 똑같은 규칙을 적용했다는 것"이라며 "중국의 힘이 멋대로 투사되지 않을 것이란 제도적 보장이 있어야 주변국이 신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의 저서 '힘과 규칙: 국제질서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은 상반된 개념인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세력권 질서를 구체적인 사례와 힘과 규칙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소개한다. 아울러 오늘날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경쟁 강대국의 부상과 미국 내부 반발의 미묘한 관계를 정량적 자료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책의 수정사항 및 구체적인 데이터 자료는 박 교수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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