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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조원 D램 기술 중국에 홀라당… 삼전 전 상무, 中정부 돈으로 공장까지 지었다

입력
2024.09.10 15:00
수정
2024.09.1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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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나노급 D램 기술 유출 사건 전모]
중국 청두시와 합작해 현지에 업체 창업
국내 인재 싹쓸이해 기술 빼고 토사구팽
삼성이 2조원 투자한 기술... 피해 수조원

산업 기술 유출 삽화. 그래픽=신동준 기자

산업 기술 유출 삽화. 그래픽=신동준 기자

개발 비용만 수조 원이 들어간 삼성전자의 핵심 반도체 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려, 1년 만에 복제품까지 만들어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수년 전만 해도 최첨단 기술이었던 2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영업비밀을 빼낸 이들을 잡고 보니, 삼성전자 및 하이닉스 반도체(현 SK하이닉스)에서 임원을 지낸 반도체 전문가와 삼성전자 전 수석연구원이었다. 특히 삼성전자 상무 출신 주범 최모(66)씨는 중국 지방정부와 합작해 공장을 세우는 등, 국내 반도체 첨단 기술을 작정하고 빼돌려 실제 반도체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임원, 수석연구원이 적극 가담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뉴스1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뉴스1

10일 서울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을 중국에 넘긴 전 임원 출신 2명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삼성전자의 20나노급 D램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온도와 압력 등 600여 단계 공정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이번 사건은 ①국내 반도체 양대 회사에서 공히 임원을 지낸 반도체 권위자가 ②외국 정부와 결탁해 ③외국에 회사까지 차린 뒤 ④한국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기술을 사실상 통째로 넘겼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최씨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반도체에서 각각 상무와 부사장을 지낸 뒤, 싱가포르에서 반도체 컨설팅업체를 세웠다. 중국에 반도체 제조업체를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무산되자, 그는 2020년 청두시 정부에서 투자를 받아 청두가오전 하이테크놀로지(CHJS)라는 제조업체를 만들었다. 청두시가 4,600억 원 이상을 출자하고, 최씨는 인력·기술을 제공하는 합작 형태였다.

이 과정에서 최씨는 설립 초기부터 자신의 인맥과 명성을 이용, 국내 반도체 핵심 인력들에게 접촉했고 지속적으로 영입했다. 삼성전자에서 D램 메모리 수석연구원을 지낸 오모(60)씨도 이 중 하나였다. 오씨는 국가핵심기술인 삼성전자의 20나노급 D램 반도체 핵심 공정을 중국 회사에 넘기고, 공정설계실장으로 일하며 범행에 적극 가담했다. 현재는 삼성전자가 이미 12나노 D램을 양산 중이지만, 여전히 삼성전자의 매출 2조4,000억 원(2022년)이 20나노 공정에서 나온다. 삼성전자가 20나노 공정 개발이 들인 돈은 2조 원에 달한다

중국으로 건너간 인력들은 중국 업체에 기술을 넘긴 다음엔 토사구팽을 당했다. 청두가오전은 국내에서 뽑아간 기술자들을 2, 3년만 활용한 뒤 장기 휴직 처리하는 등 사실상 해고 처리했다고 한다.

삼성전자의 D램 공정 미세화 발전사. 그래픽=신동준 기자

삼성전자의 D램 공정 미세화 발전사. 그래픽=신동준 기자


중국 업체 1년 만에 웨이퍼 제작 성공

경찰은 이들이 사실상 국내 D램 반도체 기술을 통째로 넘긴 수준이라고 봤다. 최씨 등이 기술을 댄 청두가오전은 2021년 1월 반도체 D램 연구 및 제조공장 건설에 착수해 같은 해 12월에 준공했다. 그리고 불과 1년 3개월 만인 2022년 4월에 시범 웨이퍼(반도체 원판) 생산 수준까지 진입했다. 시범 웨이퍼는 자사의 기술이 실제 반도체로 기능할 수 있는지 측정해보는 기초 개발제품이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세대의 D램 반도체를 개발하기까지 최소 4, 5년이 걸리지만, 중국은 훔친 기술로 1년 만에 다음 세대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청두가오전은 지난해 6월 20나노급 D램 개발에 성공한 후 양산 단계 직전까지 갔으나, 경찰 수사가 시작되며 공장 운영이 중단됐다. 유출 기술로 만든 반도체 상용화는 다행히 막았으나, 이미 빠져나간 기술이 다른 업체에서 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찰 관계자는 "개발 비용을 따져봤을 때 피해 기술의 경제적 가치는 약 4조3,000억 원에 이르며, 경제 효과를 감안하면 실제 피해 금액은 이보다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과 별도로 최씨는 이미 지난해 6월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2018년 대만기업 폭스콘으로부터 약 8조 원을 투자받은 뒤, 삼성전자 화성공장 설계도를 바탕으로 '복제 공장'을 중국 시안에 세우려 한 혐의(산업기술보호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를 받고 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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