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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용 한국인 귀국선 침몰, 한일 함께 진상 규명해야

입력
2024.09.07 00:10
19면
1945년 광복 직후 고국에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귀국선 우키시마호에 오른 재일 한국인들. 우키시마호 순난자 추도 실행위원회 자료

1945년 광복 직후 고국에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귀국선 우키시마호에 오른 재일 한국인들. 우키시마호 순난자 추도 실행위원회 자료

외교부가 1945년 광복 직후 부산으로 항해 중 침몰한 우키시마마루호의 한국인 탑승자 명단 중 일부를 확보했다. 그동안 “자료가 없다”고 버티던 일본 후생노동성은 79년 만에 관련 자료 75건 중 승선 조선인 명부와 조난자 명부 등 19건을 전달했다. 당시 한국인이 얼마나 타고 있었고 배는 왜 갑자기 가라앉게 됐는지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와 유가족의 한을 풀 단초가 마련됐다. 정부는 강제로 끌려갔다 꿈에 부푼 고향길에 올랐지만 80년 가까이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 바다에 묻혀 있는 이들의 ‘완전한 귀국’을 위해 모든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우키시마마루호는 일본이 패전 후 징용 한국인을 송환하기 위해 띄운 귀국선이었다. 8월 22일 혼슈 북쪽 끝 아오모리현 오미나토 해군항에서 출항한 4,730톤급 배엔 항만과 철도, 참호 건설 등에 강제 동원됐던 수천 명의 한국인이 올라 탔다. 이후 배는 당초 목적지인 부산으로 곧장 가지 않고 해안선을 항해 중 8월 24일 교토 마이즈루항 앞바다에서 침몰됐다. 일본은 이 사고로 3,735명의 탑승자 중 한국인 524명과 일본 해군 25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배’라는 소문에 실제 탑승자는 8,000명이 넘고 사망자도 최소 3,000명이라는 게 생존자와 유족들의 증언이다.
일본은 미군의 해저 기뢰를 건드린 게 사고 원인이란 입장이나 전쟁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오미나토해군공작부가 자폭을 감행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9년 후 인양된 배의 철판이 안에서 밖으로 휘어져 있었다는 지적도 풀려야 할 의문이다. 모든 의혹은 그동안 자료 공개를 거부해온 일본이 초래한 측면이 큰 만큼 진실을 밝히는 데 적극 협조해야 마땅하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가 이달 말 퇴임하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마지막 방한 직전 진전을 이룬 건 주목된다. 지도자가 바뀌어도 한일 협력은 지속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먼저 양국 모두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정상회담이 고별 인사가 아니라 우키시마마루호 진상규명 등 새 한일 관계의 출발이 되길 바란다. 내년은 한일기본조약 6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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