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임명을 재가했다. 국회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장관급 인사를 임명한 건 이날 같이 임명된 김용현 국방부 장관까지 29명째가 됐다. 안 위원장의 임명 강행이 특히 걱정스러운 건 굽히지 않는 소신이 본인이 이끌고 가야 할 인권위의 가치와 정면충돌하고 있어서다.
안 위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보여준 모습은 단지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는 정도를 넘어 반인권적이기까지 했다. 그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공산주의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고, 에이즈나 항문암 같은 질병 확산을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이런저런 부작용을 우려로 법 제정에 신중한 태도를 보일 수는 있다 쳐도, ‘공산주의 혁명’ ‘에이즈’ 등의 극단적 주장을 펴는 건 황당하기 짝이 없다. 독실한 기독교인일지라도 성소수자 등에 대한 강한 혐오를 여과 없이 노출한 건 용납하기 어렵다. 게다가 차별금지법은 인권위가 2006년부터 줄곧 제정을 시도해온 법 아닌가. ‘진화론의 가능성은 제로(0)’라던 기존 주장의 되풀이 또한 장관이 되겠다는 인사가 청문회에서 할 소리는 아니었다.
공안검사 출신인 안 위원장은 법률가로서도 소수자 인권 보호와는 거리가 멀었다. 헌법재판관 재직 당시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 도입 등에 반대하는 입장에 섰다. 오죽했으면 보수 진영에서까지 꼭 이런 인물을 인권위원장 자리에 앉혀야 하느냐는 지적이 빗발쳤겠는가.
그렇잖아도 인권위는 현 정부 들어 역주행을 거듭해왔다. 지난해 10월 임명된 이충상 상임위원은 “게이(동성애자)들은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고, 이태원 참사를 두고는 “피해자들이 부주의한 탓”이라고 막말을 했다. 역시 현 정부에서 임명된 김용원 상임위원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을 “기레기”, 인권시민단체를 “인권장사치”라 했다. 그나마 전임 송두환 위원장이 제동을 걸어왔는데, 이제 안 위원장까지 가세하면 폭주에 더욱 가속이 붙지 않을까 걱정이다.
구속력 없는 권고 기능밖에 없는 인권위가 지금껏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도덕적 권위 덕분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인권을 외면하는 인권위에 그런 권위가 설 리 없다. 국민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매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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