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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할아버지 돌아가신 곳이라도 알고 싶다" '간토대지진' 슬픔 101년 지나도 여전

입력
2024.09.02 19: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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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01년
일본서 '유족 목소리 듣는 모임' 발족
"한일 기록 통해 희생자 퍼즐 맞춰야"
도쿄도는 "희생자 수 파악 안 해"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조권승씨 유족 조광환(가운데)씨가 2일 일본 도쿄 히비야도서관문화관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피해자 유족의 목소리를 듣는 모임' 발족 행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도쿄=류호 특파원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조권승씨 유족 조광환(가운데)씨가 2일 일본 도쿄 히비야도서관문화관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피해자 유족의 목소리를 듣는 모임' 발족 행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도쿄=류호 특파원

"큰할아버지가 어디에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라도 알고 싶습니다."

경남 거창군에 사는 조광환(64)씨의 큰할아버지 조권승씨는 일본 간토대지진 발생 이튿날인 1923년 9월 2일 30세 젊은 나이에 도쿄에서 일본인에게 살해당했다. 조씨의 가족들은 큰할아버지의 넋을 달래고자 매년 제사 때 일본 쪽을 향해 묵념한다고 했다.

그러나 조씨가 큰할아버지에 대해 아는 정보는 돌아가신 날짜와 장소가 도쿄라는 것이 전부다. 그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자료도 제대로 찾을 수 없어 고민이 많다"며 "간토대지진이 이대로 세월에 묻힐까 너무 두렵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씨는 큰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인 2일 도쿄 히비야도서관문화관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피해자 유족의 목소리를 듣는 모임' 발족 행사에 참석했다. 일본 연구자, 시민단체, 재일동포가 중심이 돼 간토대지진 학살의 진실을 파헤치고 기록하는 모임이다.

유족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기록해 온 오충공 감독은 한국과 일본 연구자·시민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호소했다.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지 101년이 됐지만 아직 우리가 할 일이 많습니다. 한국에 있는 유족들의 이야기와 일본에 남겨진 기록을 찾아 희생자들의 퍼즐을 맞춰야 합니다."

한국인 무용가 김순자(오른쪽)씨가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101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하얀 한복을 입고 진혼무를 추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한국인 무용가 김순자(오른쪽)씨가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101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하얀 한복을 입고 진혼무를 추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이들은 유족들이 남몰래 품고 살아야 하는 불안도 보듬으려 한다. 오 감독은 "유족 중 한 분이 아버지가 간토대지진 학살 희생자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오히려 다행이라고 했다"며 "일본에서 나쁜 짓을 해 돌아가신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그 불안을 지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은 학살 희생자 수조차 집계하지 않는 것이 일본의 현실이다. 일본 도쿄신문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01년을 맞아 도쿄도 등 간토 지역 지자체 7곳을 대상으로 희생자 수 집계 여부를 조사한 결과 도쿄도, 이바라키현, 도치기현은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도쿄도는 사망자 수 관련 국가 기록도 무시했다. 도쿄도 관계자는 도쿄신문에 "어디까지나 국가가 파악한 내용으로 도쿄도는 조사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간토대지진 학살을 취재해 온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는 "정부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조사하지 않는 것은) 본말전도이고 지자체가 조사해 정부에 보고할 의무가 있다"며 "역사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간토대지진은 도쿄를 중심으로 한 간토 지방에서 1923년 9월 1일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당시 10만여 명이 사망하며 지역이 혼란에 빠지자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런데 일본 사회에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다닌다' 같은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조선인들이 학살됐다. 살해된 조선인은 약 6,000명으로 추산된다.


도쿄= 류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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