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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쓰러진 백만 농장동물.. 밀집 사육한 축산업자만 범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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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무더위로 모두를 힘들게 했던 여름이 드디어 서서히 저물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여름 전국에서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3,100명, 사망자는 30명에 이른다고 한다. 폭염 속에서 업무를 강행하던 노동자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며칠에 한 번씩 들려오기도 했다.
폭염에 죽은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보도에 따르면 돼지 6만1,000마리, 가금류 99만6,000마리 등 모두 105만7,000마리가 무더위로 폐사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정희용 의원실(국민의힘)에 따르면 2019년부터 최근 5년간 폭염으로 목숨을 잃은 농장동물은 724만732마리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 어마어마한 숫자는 ‘농어민들의 재산 피해’를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될 뿐이다. 어차피 도축되어 밥상에 오를 동물들이었다고 해도, 수백만 마리의 동물이 더위로 쪄죽는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했을지는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만일 개,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 생산업장에서 동물들이 온열질환으로 떼죽음을 당했다면 온 나라가 분노로 들끓었을 것이다.
죽은 동물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닭이다. 닭은 체온 자체가 41도로 포유류보다 높은 데다 몸이 깃털로 덮여 있고 땀샘이 발달하지 않아 체온 조절이 어렵다. 돼지 역시 땀샘이 발달되어 있지 않고, 지방층이 두꺼워 체내에서 발생하는 대사열을 체외로 방출시키는 능력이 낮아 고온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고온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동물의 소화 및 흡수 능력이 저하되고 사료 섭취량이 감소하며 결국 폐사에 이르게 된다. 33도 이상의 기온이 아니더라도 동물복지 수준이 낮은 공장식 축산 환경을 생각하면, 살인적인 더위에 동물 집단 폐사를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수많은 동물이 매년 여름 떼죽음을 당하데도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도 없이, 그저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록 생산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는 하지만, 해외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농장동물의 고열 스트레스와 환기, 온도 조절 시스템, 축사 설계 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우리나라 국립축산과학원도 2020년부터 ‘가축사육기상정보시스템’을 통해 한우, 젖소, 돼지, 가금류에 대해 고온기 가축 사양과 축사 관리법을 안내하고 있다. 돼지의 경우 머리 부분에 시원한 바람을 강제 송풍하거나, 얼린 페트병을 사용해 돼지의 몸에 차가운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점적식 쿨링법 등을 사용할 수 있다. 가금류에 대해서는 터널식 환기, 지붕 점적, 쿨링패드 설치 사용을 권장한다.
그러나 ‘경제동물’이라고 불릴 만큼 철저히 경제적 가치로 취급되는 축산업 현장에서 이러한 사양기술이 얼마나 적용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가령 돼지의 경우 축사 온도를 낮추는 데는 에어컨이 효과적이지만 설치와 유지에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고, 기후변화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에너지 집약적 시설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모순점도 생긴다.
가축사육기상정보시스템은 온도와 상대습도를 사용해 농장동물의 더위 정도를 지수화한 ‘가축더위지수’(THI)를 지역별로 공개하고 ‘양호, 주의, 경고, 위험, 폐사’ 등 5등급으로 나누고 대처법을 제시하고 있다. 돼지의 경우 THI가 74~83인 경우 ‘그늘막 제공, 선풍기 가동’, 84~93인 경우 ‘돈사 내 안개 분무, 급수기 추가 설치’, 94 이상일 경우에는 ‘특별 간호지역으로 이동, 냉수 급여, 목욕, 수의사 진료’등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폭염 속에서 농장 안에서 일하는 종사자의 건강과 안전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온열질환 증세를 보이는 동물들을 하나하나 살피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애초에 같은 지역이라고 해도 가축이 얼마나 덥게 느끼는지는 농장마다, 축종마다 다르기 때문에 지역별이 아닌 농가 수준에서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한 축산과학 전문가는 농가 단위에서 THI를 측정 가능하도록 하고 농장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실 찬물을 충분히 공급하는 등 기본적인 관리 방식 개선만 해도 열 스트레스 저감이 가능하지만 이조차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농가도 많다.
문제는 매년 이상기후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라는 것이다. 국내외에서 발간되는 보고서들은 모두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매년 여름 기록을 갱신하는 무더위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고, 고온이 아니더라도 폭우 등 기상 이변도 동물 폐사의 원인이 된다. 또한 사람 식탁에 오르는 음식값뿐 아니라 농장동물이 먹는 곡물 사료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이미 농가에서는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사료 가격이 올라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이쯤 되면 동물과 환경은 물론이고 축산업계 입장에서도, 소비자 입장에서도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상황인데도 정부는 장기적인 고민은 없어 보인다.
남종영 기후변화와 동물연구소 소장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공장식 축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는 축사시설 현대화사업 만으로는 기후위기로 인한 동물 피해를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적게 먹고 적게 기르는 방식으로 축산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아직은 구호에 그치고 있는 수준이다. 좀처럼 늘지 않는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 비율이 이를 증명한다. 정부의 노력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어웨어가 매년 실시하는 ‘농장동물 복지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농장동물의 복지가 중요하다는 응답 비율은 2021년 93.6%, 2022년 93.7%, 2023년 96.3%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축산환경 등 농장동물의 복지를 개선하는데 소비자로써 어느 정도의 추가 비용을 부담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는 대다수가 일반 축산물 가격의 20% 이하 정도 가능하다고 답했다. 국민 다수가 농장동물 복지를 개선하는데 동의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동물복지를 의미 있는 수준으로 개선할 수 있는 비용으로는 모자란 수준일 것이다. 물론 나날이 고공행진하는 물가에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닭이나 돼지의 삶을 위해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축산 체제를 유지하는데도 세금이 쓰이는 마당에, 사회적 비용을 나눠진다는 마음으로 소비를 줄이고 소비할 때는 동물복지인증 축산물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기후위기도, 농장동물 복지도 단번에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다단한 문제이지만, 당장 우리 코앞에 있는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더 늦기 전에 기후위기로 인한 농장동물 피해가 중요한 문제임을 인식하고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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