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을 대상으로 합성물을 제작해 텔레그램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포하는 성범죄가 무차별 확산되고 있다. 대학생, 군인을 넘어 초중고생까지 덮쳤다. 텔레그램에는 각종 딥페이크 공유 단체방이 수백 개에 달하고, ‘OO중’ ‘OO고’ 등 특정 학교 이름이 들어간 단체방도 상당수라고 한다. 충격적인 사실에 공분과 함께 '나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
딥페이크는 인공지능(AI) 심층 학습을 뜻하는 딥러닝(deep learning)과 가짜(fake)를 합한 조어다. 이들은 SNS 등에서 내려받은 얼굴 사진에 음란물의 나체 사진 등을 합성해 성범죄물로 만들어 텔레그램 단체방 등에서 공유한다. 학교나 지역을 중심으로 모인 참가자들이 서로 같이 아는 지인의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제작해 공유하는 식이다. 현역 군인들이 여성 동료 군인들의 사진을 합성해 만든 성착취물을 공유한 정황까지 나왔다.
정부와 수사당국의 대응은 굼뜨기만 하다. 지금껏 텔레그램 서버가 국외에 있어 피의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핑계만 대며 미적대왔다. 앞서 발생한 서울대와 인하대 성착취물 사건에서는 피해자와 시민활동가가 직접 추적에 나선 끝에 피의자를 특정했다. 이번에도 공포감에 휩싸인 이용자들이 자력구제에 나서고 있다. 개인이 직접 제보를 받아 만든 '딥페이크 피해 학교 목록'이 나돌고, SNS 프로필 사진을 내리자는 등의 대응 수칙도 올라온다. 개인들이 피의자 색출에 나서고 사적 응징에 나서는 건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 아닌가.
어제서야 윤석열 대통령이 강력 대응을 지시하는 등 정부와 정치권이 뒤늦게 요란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제라도 심각성을 인식했다니 다행이다. 법을 강화해야 하고, 특히 불법 합성물을 제작했더라도 고의로 유포할 목적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면 처벌되지 않는 현행법은 반드시 손봐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위장수사를 폭넓게 허용하는 법안, AI 생성물에 워터마크 등 표식을 의무화하는 법안 등도 적극 검토하기 바란다.
무엇보다 수사기관과 당국의 의지가 중요하다. 법과 제도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범죄의 뿌리까지 파헤쳐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가 빠른 속도로 무한 확대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초기 대응이 필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피해자들이 공포에 떨며 인격 살인을 당하고 있는 현실을 엄중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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