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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먹은 갈치조림, 5g당 플라스틱 27개도 함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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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피 흘리는 바다거북, 배 속에 찬 쓰레기 탓에 죽은 향유고래. 먼바다 해양 생물들의 비극은 뉴스를 통해 잘 알려졌죠. 우리 바다와 우리 몸은 안전할까요? 한국일보는 3개월간 쓰레기로 가득 찬 바다를 찾아다녔습니다. 동해와 서해, 남해와 제주에서 어부와 해녀 63명을 만나 엉망이 된 현장 얘기를 들었고, 우리 바다와 통하는 중국, 일본, 필리핀, 미국 하와이를 현지 취재했습니다. 지옥이 된 바다. 그 가해자와 피해자를 추적했습니다.
여기 군침 도는 한 상이 차려졌다(사진). 오징어볶음과 조기구이, 갈치조림, 우럭회, 그리고 꽃게탕. 전 세계에서 수산물을 가장 많이 먹는 나라로 꼽히는 한국인(1인당 기준)이 식당이나 집에서 자주 찾는 친숙한 요리들이다.
그런데 먹음직스러운 이 해산물들은 과연 건강할까. 북중미 바다에서 서식하는 크릴새우나 청어 등 해외 수산물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뉴스가 종종 들려오지만, 우리 먹거리와는 무관한 이야기로 치부됐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한반도 연근해에 사는 어류와 갑각류의 체내 플라스틱 축적 실태를 직접 검증해봤다. 우리 국민이 좋아하는 해산물 속에 미세 플라스틱(5㎜ 미만인 플라스틱 입자)이 쌓여 있지는 않은지 살펴본 것이다. 동∙서∙남해에서 잡힌 다섯 가지 자연산 수산물을 시험 대상으로 했으며, △은갈치(남해산) △우럭(남해산) △오징어(동해산) △참조기(서해산) △꽃게(서해산)를 수산시장 두 곳에서 직접 구입했다. 시험은 한국분석과학연구소(KIAST)가 한국일보 의뢰로 지난 7월 진행했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모든 시료(해산물)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연구진은 각 생선의 살과 내장, 아가미 부위를 조금씩 뜯어내 5g의 시료를 만든 뒤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은갈치·오징어에서는 미세 플라스틱 27개(5g당 기준)가 나왔다. 우럭과 참조기에선 13개, 꽃게에선 7개가 발견됐다.
우리가 평소에 많이 사용하는 플라스틱이 고기 배 속에서도 많이 나왔다. 우선, 검출된 전체 미세 플라스틱의 절반(48%)가량이 폴리프로필렌(PP)이었다. 가볍고 열에 강한 플라스틱 소재로 기능성 의류나 식품 용기, 자동차 범퍼 등을 만들 때 쓰인다. 폴리에틸렌(PE·24%)과 폴리스티렌(PS· 18%)이 다음으로 많이 검출됐다. PE는 샴푸병이나 두부 포장 용기 등을 만들 때 흔히 사용되고, PS는 일회용컵이나 즉석밥 용기 등 식품 포장 때 쓰인다. 밧줄과 어망 등의 어구도 주로 PP와 PE로 제작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전체 플라스틱 종류 41종 가운데 PE(24%), PP(16%), PS(5%)의 사용 비율이 절반 가까이 된다.
시험 결과가 말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 바다는 가늠할 수 없는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로 오염됐고, 이를 먹지 않은 고기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시험을 총괄한 정재학 KIAST 소장은 ”모든 시료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100% 검출됐다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미세 플라스틱을 먹은 물고기가 밥상 위에 오르고, 이를 섭취한 우리 몸에도 플라스틱이 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미세 플라스틱을 얼마나 먹어야 인체에 해로운지 판단하는 기준과 관련해선 아직 국제적으로 합의된 게 없다.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했다고 해서 유해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단계라는 뜻이다. 하지만 생선 등 음식물을 섭취하거나 공기 내 흡입을 통해 플라스틱 조각이 체내에 쌓이면 각종 질환의 발병 가능성을 높이고 태아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점점 쌓이고 있는 점은 눈여겨 봐야 한다.
우리 어장에 플라스틱을 풀어놓은 자는 누구일까. 범인을 쫓기 위해 장마철마다 쓰레기 대란을 겪는 서해의 충남 서천군으로 향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서천 갯벌’
7월 11일, 서천군 비인 해변의 백사장 옆으로 대형 기념비가 서 있었다. 서해안을 따라 72.5㎞ 뻗은 서천 갯벌은 2021년 전북 고창, 전남 신안∙보성∙순천 갯벌과 함께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자연유산이 됐다. 넓적부리도요 등 세계적 희귀 철새가 머무는 쉼터. 그러나 이곳은 여름 장마철만 되면 내륙에서 떠내려온 쓰레기로 엉망이 된다. 기자가 찾아간 그날도 모래사장에는 농약 페트병과 라면∙커피 믹스 봉지, 모텔 이름이 적힌 라이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대형 구조물 등 플라스틱 쓰레기가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직전 이틀간 서천에는 287㎜의 폭우가 쏟아졌다. 한 해 평균적으로 내리는 강수량(1,697.8㎜)의 6분의 1이 이틀 만에 퍼부었다.
차를 타고 남쪽으로 30분쯤 달리면 나오는 서천 장항항의 풍경도 다를 바 없었다. 항구에 정박된 선박 주변 바다에는 각종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갈대와 페트병, 플라스틱 김치통과 비닐봉지 등 쓰레기가 찐득한 펄처럼 선박 주변을 덮어버렸다. 출항은 엄두도 낼 수 없다. 무리해서 배를 움직이려다 쓰레기를 빨아들여 엔진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먼 바다에는 스티로폼과 방충망, 아이스박스, 그물 등이 뭉친 20~30㎡ 크기의 ‘쓰레기 섬’이 떠다녔다. 장항항 인근 수협 건물 앞에는 10년간 떠내려온 쓰레기를 쌓아놓은 ‘쓰레기 산’도 있다. 여러 번 치웠지만, 여전히 수북했다.
“금강이 문제여.”
느릿한 충청도 말투의 신창 어촌계장 박태화(57)씨가 사무실을 찾아온 기자를 향해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
금강 상류에서 서해로 흘러나오는 쓰레기는 정말 말도 못 해요. 농민들이 베어서 버린 죽은 갈대가 많고, 페트병 같은 플라스틱 제품도 넘쳐 나요.
다른 어민들의 증언도 비슷했다. 비인 해변 근처에 사는 박재만(80)씨는 “이 바다로 쓸려오는 쓰레기의 70%는 금강 하구를 통해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내륙에서 떠내려온 것이라는 얘기다. 학자들은 어촌을 폭격하다시피 한 이 쓰레기들이 천재지변에 가깝다고 해 '재해성 쓰레기'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긴 강(394㎞)인 금강은 굽이치는 물살 모양으로 충청권 전역을 훑고 서천과 전북 군산 사이 하구를 통해 바다로 빠진다. 지역 어민과 서천군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충북 옥천군의 대청호부터 시작된 강줄기는 대전과 세종, 충남 공주∙부여∙논산 등을 거치며 도시와 농촌의 온갖 쓰레기를 쓸어 담는다. '쓰레기 강'이 된 것이다.
윗물의 정점인 대청호는 올 장마 때도 2만 ㎥에 달하는 부유 폐기물로 뒤덮였다. 한 층에 30평(약 99㎡) 너비의 집이 2개씩 있는 36층짜리 아파트 건물이 호수에 떠 있는 셈이다. 페트병, 플라스틱용기, 스티로폼, 폐가전 등이 뒤섞여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는 “농민들이 논밭에 방치하거나 외진 사면에 몰래 버린 쓰레기, 그리고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가 물난리가 나면서 쓸려 내려온다"고 추정했다.
대청호에서 쓰레기를 싣고 나온 금강 줄기는 이후 180만 명이 사는 대전과 세종을 지난다. 이때 도심 쓰레기가 강물에 합류한다. 시민들이 강변에 무심코 버린 마스크와 물티슈, 페트병, 비닐봉지 등이 바람에 날려 들어온다. 또 집중호우를 감당 못 한 대청댐이 수문을 열고 방류량을 초당 1,800톤까지 늘리면 하천이 범람해 주변 쓰레기를 모조리 긁어모아 하류로 보낸다.
도심에선 미세 플라스틱도 나온다. 시민들도 나쁜 뜻이 있어 버리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을 할 때 자신도 모르게 배출된다. 우리가 입는 의류의 약 60%는 PP 등 플라스틱 가공 합성섬유로 만든다. 이 옷들을 세탁기로 돌리면 마찰 과정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분리돼 나와 하수로 빠져나간다. 바다로 유입되는 미세 플라스틱의 35%는 이 세탁 하수에 실려 온 것이다. 취재팀의 미세 플라스틱 검출 시험 때도 다섯 가지 수산물에서 가장 흔히 검출된 플라스틱 종류(전체 검출량의 48%)는 기능성 의류 등을 만들 때 쓰는 PP였다.
우리가 재활용함에 넣은 폐기물도 바다를 오염시킬 수 있다. 분리수거한 플라스틱의 12.8%는 다시 쓰지 못하고 매립한다. 오염 등의 이유로 재활용이 어려운 데다 소각시설도 과부하가 걸려 태울 수 없다면 다른 방도가 없다. 땅에 묻은 쓰레기가 썩어 흘러내리는 침출수는 플라스틱을 잘게 쪼개어 이를 바다까지 운반한다. 도심을 달리는 자동차 타이어가 마모돼 나오는 분진 역시 미세 플라스틱이다. 이 또한 비에 쓸려 바다로 향한다.
도심을 빠져나온 금강이 논과 밭을 지나면 농업 쓰레기를 만난다. 농사지을 때 쓰는 비닐과 비료 포대, 농약병 등은 모두 잘 썩지 않는 플라스틱 재질이다. 지난달 12일 찾은 충남 부여군 장암면 석동리에는 금강으로 유입되는 작은 하천인 금천이 있다. 이 하천 역시 마을의 비닐 쓰레기를 싣고 큰 강으로 빠진다. 주민 이모(76)씨는 검지를 펴서 동네 쓰레기의 주범을 지목했다.
저기 금천 상류 홍산면부터 남면 쪽까지 수박, 취나물, 왕대추 등을 짓는 비닐하우스가 어마무시하게 많아요. 거기서 비닐들이 다 떠내려오는 거지.
400㎞ 가까이를 흘러온 금강이 하구를 지나 서천과 군산 앞바다에 도착하면 싣고 온 쓰레기를 쏟아낸다. 사실 이는 금강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 등 전국 주요 강하구는 장마철마다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 경남도청이 하천·하구 쓰레기 정화사업으로 연평균 5,247톤을 수거하지만, 홍수가 나면 낙동강 하구 지역인 경남 거제나 부산 앞바다는 난장으로 변한다. 이렇게 육상에서 떠내려 온 쓰레기가 국내 해양 쓰레기의 65%를 차지한다. 나머지 35%는 폐그물 등 어업·항만에서 발생한 폐기물들이다.
해양으로 흘러든 쓰레기들은 물고기 밥이 된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아 건져낼 수도 없는 미세 플라스틱이 치명적이다. 예컨대 ①최하위 피식자인 동물성 플랑크톤이 미세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해 먹으면 체내에 쌓인다. 먹이사슬에 따라 ②어린 물고기(치어)나 홍합·전복 등 패류, 꽃게와 같은 갑각류가 플랑크톤을 통해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한다. ③갈치나 대구 등 잡식성 어종들이 하위 피식자들을 잡아먹으면 체내에 미세 플라스틱이 쌓인다. 상위 포식자일수록 미세 플라스틱 축적량은 급증한다. 그리고 먹이사슬 가장 위에 있는 인간은 식탁에서 그 생선을 마주한다.
해마다 해양 쓰레기 실태를 적나라하게 목격한 바닷가 사람들이 이제 해산물 먹기가 찜찜하다는 말까지 한다. 서해 주민 김모(51)씨가 증언했다.
“이 마을은 숭어가 많이 잡혀서 어부들한테 가끔 한 마리씩 받아 먹었거든? 근데 이제 안 먹어. 더러운 물에 사는 걸 내 눈으로 봤는데 어떻게 먹겠어요. 아마 우리집 개한테 줘도 안 먹을 거에요.”
플라스틱의 인체 위해성 연구는 걸음마 단계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미세 플라스틱의 인체 위해성을 아직 판단할 수 없다는 게 세계보건기구(WHO)의 공식 입장"이라면서 "우리 정부의 입장도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동욱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만약 미세 플라스틱이 몸에 좋냐, 나쁘냐고 묻는다면 나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우리가 건강에 문제 될 정도로 미세 플라스틱에 노출되고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는 단서를 달았다. 예컨대 한국일보가 시험한 다섯 종류의 해산물을 먹었을 때 인체에 얼마나 많은 미세 플라스틱이 유입되는지 정확히 확인하긴 어렵다. 보통 내장을 제거한 뒤 씻어 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학계의 경고가 커지고 있다는 게 사실이다. 최근 이탈리아 연구진은 혈관에서 미세 플라스틱 입자가 발견된 환자군이 일반 환자군에 비해 뇌졸중, 심장병, 사망 위험이 4.5배 높다고 발표했다. 미세 플라스틱은 피를 타고 돌며 체내 모든 곳으로 갈 수 있다. 뇌는 물론 태반까지 통과하고 모유에서도 검출된다. 내 몸에 쌓인 미세 플라스틱이 대물림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선제적 대응 시점을 놓쳤던 미세먼지와 같은 과오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990년대 미세먼지 유해성을 알리는 연구진들의 경고가 잇따랐지만 국내외에 공식적으로 기준이 마련된 건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였다. 시민들이 미세먼지 문제를 인식하는 데까지는 그러고도 10년이 더 걸렸다. 이미 미세먼지로 건강 악화를 체감한 뒤였다. 미세 플라스틱 환경오염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심원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많이 쓰는 만큼 플라스틱 오염은 급증할 겁니다. 그러면 우리 몸에 계속 쌓이겠죠. 머지않아 ‘미세 플라스틱이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 된다면 큰일 나는 거죠. 그땐 되돌릴 수 없으니까요.
■한국일보 특별취재팀
팀장 : 유대근 기자(엑설런스랩)
취재 : 진달래·원다라·이서현 기자(엑설런스랩), 조영빈(베이징)·허경주(하노이) 특파원, 한채연 인턴기자
사진 : 이한호·최주연·정다빈 기자
영상 : 박고은·김용식·박채원 PD, 제선영 작가, 이란희 인턴PD
※<제보받습니다> 한국일보는 해양 쓰레기 문제를 집중 취재해 보도해 나갈 예정입니다. 해양 쓰레기 예산의 잘못된 사용(예산 유용, 용역 기관 선정 과정의 문제 등)이나 심각한 쓰레기 투기 관행, 정책 결정 과정의 난맥상과 실효성 없는 정책, 그 외에 각종 부조리 등을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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