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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불쌍해서? ‘T형 인간’이 말하는 ‘동물복지 농장’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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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청년은 ‘떠밀리듯’ 양돈장으로 들어갔다고 2004년 5월을 떠올린다. 동물자원학과를 지원한 것도, 세부전공으로 양돈을 선택한 이유에도 거창한 포부는 없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가 처음 양돈장에서 마주한 광경을 묘사하는 장면들은 객관적이고 건조한 표현들로 일관돼 있었다.
물론 표현에 감정이 덜 실렸다 해서 ‘돼지가 이렇게 사육되어도 좋은 것일까?’라는 의문 자체조차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발단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으려면 청년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필요했다.
지난달 16일, 서울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윤진현 전남대 동물자원부 교수의 성향은 그가 낸 저서 ‘돼지 복지’(2024, 한겨레출판) 속 이성적인 문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화 내내 그는 ‘농장동물 복지’의 필요성에 대해 ‘농장 돼지의 고통스러운 삶’을 강조하는 감정적 설득보다는 과학적 근거를 설명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그의 설명을 듣던 도중 사소한 궁금증이 동했다. “혹시 MBTI가 T라는 얘기를 듣지는 않으시나요?” 질문이 나오자마자 인터뷰에 동석한 출판사 관계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윤 교수도 웃으며 “학생들도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고, 촬영차 만난 방송작가들도 ‘조금만 F처럼 말해달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고 멋쩍게 웃었다.
Q. 책 서문에는 동물복지 전공을 설명할 때마다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한국의 인식이 담겨 있다. 그렇게 쓴 이유가 있을까?
"대중에게 이 책으로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다. 학생들을 교육하거나, 생산자들의 생각을 바꾸는 일도 필요하지만,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동물복지 축산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앞으로 변화의 기미가 보일 것 같아서였다."
Q. 농장동물의 복지가 중요한 이유에 대해 책에서는 한국과 유럽연합(EU) 간 자유무역협정(FTA)가 대표적 이유로 언급된다. 단순히 동물뿐 아니라, 사람의 삶 전반에도 영향을 준다는 예시처럼 들렸다.
"그렇다. 한-EU FTA 협상 당시 주요 의제 중 하나가 축산 분야에서는 동물복지였다. 그 말은, 동물복지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축산물은 거래하지 않는다는 EU의 뜻이 담겨 있고, 더 나아가 아예 거래 자체를 피하겠다는 뜻이다.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무역을 하고 싶다면, 동물복지 축산으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다."
Q. 동물복지에 대해 말하면, 누군가는 그 자체가 위선이라며 비난한다. 그들을 설득하는 게 대중을 향한 발화의 시작일 텐데..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다. ‘동물복지’라는 말을 하자마자 ‘그러면 동물을 먹지 말라는 말이냐’라는 반문도 받는다. 그러나 동물복지적 관점은 그런 게 아니다. 인간이 목적을 위해서 동물을 키우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기에 동물에 대한 책임감을 더 갖고 불필요한 고통과 스트레스를 최소화해주는 환경을 마련해 주자는 것이다."
Q. 또 다른 반대편에서는 동물을 도구로 대한다는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이 의도와 목적으로 동물을 이용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반려동물조차도 그 동물이 반려인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직시해야 할 현실이다. 그렇다면 목적을 이루는 과정은 어때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책임을 어떻게 다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성찰해야 인류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Q. 대중을 향한 설득만큼이나 실제 돼지를 돌보는 농장주들도 설득해야 할 대상이다.
"농장 생산자들이 동물복지를 어렵게 받아들이는 이유 중 하나는 ‘생산성’이다. 동물복지는 비용이 드는 거고, 생산성은 떨어지는데 ‘내가 왜 굳이 손해 보면서 사업을 하느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Q. 그렇다면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EU와의 무역을 농장주가 신경 써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그보다 EU가 왜 동물복지 축산으로 넘어갔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EU는 과거에 해오던 것처럼 관행적으로 농장을 운영하면 결국 지속 불가능하다는 걸 안 거다. 동물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면역이 떨어지고, 질병에 취약해진다. 게다가 그 많은 객체를 좁은 공간에서 여럿 키우면 결국 질병 숙주가 많다는 걸 의미한다. 질병 전파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항생제로만 대응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사실 국내 양돈농가도 시도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한 돼지 농가는 아예 덴마크의 농장을 그대로 본떠 국내에 이식했다. 종돈부터, 바닥재, 펜스 등 모든 걸 그대로 가져와 국내에서 활용했다. 첫해에는 나름 성공적인 듯 보였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생산성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Q. 유럽 방식을 본떴는데도 생산성이 떨어진 이유가 무엇이었나?
"결국 관리 기술, 사람의 문제였다. 돼지를 돌보는 사람의 기술이 과거 방식에 머무른 탓이 컸다."
Q. 그렇다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그때의 시행착오는 동물복지 농장을 구현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건 숙련된 기술을 갖춘 ‘사람’의 문제라는 걸 알게 해줬다. 지금 그 농장은 유럽 농장과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동물복지 농장으로 안착했다."
유럽이 완전무결하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간혹 유럽의 농장동물 소식을 전해 들을 때마다 일반 독자들은 궁금해하는 점이 있다. 국내에서는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등으로 수많은 돼지가 살처분되는 데 비해 유럽에서 전염병 발병 소식은 상대적으로 덜 들린다. 그 이유도 동물복지형 농장 운영과 연관돼 있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전염병과 동물복지는 연관성이 없어요. 전염병은 결국 병원체가 들어와 감염이 되는 건데, 동물복지형 농장이라고 병원체가 피해 갈 리 없으니까요. 그보다는 농장 간 거리가 먼 게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어요. 농가 대부분도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사실상 ‘천연 방어복’을 입은 것과 마찬가지죠. 외부인 방문도 거의 없어요.
윤진현 교수, 동그람이와의 인터뷰에서
Q. 말을 들어보니 국내 축산농가와 환경이 매우 다른 것 같다.
"그게 한국의 축산농가가 가진 어려운 현실이기도 하다. 유럽은 농장 간 거리가 넓고, 땅을 넓게 활용할 수 있다. 가축 분뇨를 비료화해 경작지에서 농작물을 만들어 그걸 사료로 활용하기도 한다. 반면 국내 농가는 땅은 좁은데 분뇨가 많이 나오니 이걸 어떻게 처리할 수가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귀농한 가구에서 양돈농가에서 악취가 난다고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가축분뇨법상 분뇨를 처리하는 방법도 매우 엄격해서 농장주들은 여러모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전남 보성군에서는 악취 민원에 시달리던 한 양돈업자가 세상을 등지는 선택도 했다.
Q. 생산자들도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아주 없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이다. 자신이 키우는 동물이 스트레스를 주면서 키우고 싶은 사람은 없다. 심지어 스트레스 없이 키우는 게 더 건강한 방법이라는 것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문제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국내에서 농장동물 사육 여건이 유럽에 비해 결코 좋지 않다. 게다가 동물복지형 축산을 위해서는 바꿔야 할 게 많은데, 생업을 뒤로하고 시간을 들여 동물복지형 농장 전환을 마음먹기도 쉽진 않다."
Q. 그렇다면 무역 때문에 동물복지 인증제를 도입한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숨을 쉬며) 뭔가 하고 있기는 하다. 다만, 그 방향이 문제다. 국내에서 동물복지 농장을 구현하려면 관리 기술, 운영 방법 등의 분야에서 연구를 더 해야 하는데, 현행 동물복지 5개년 계획에는 그 계획이 전혀 없다. 그저 규제만 더할 뿐이다. 그 규제도 우리 현실에는 맞지도 않다."
Q. 어떤 부분에서 맞지 않다고 보나?
"현행 정책과 규제는 모두 유럽의 것을 그대로 가져온 수준에 불과하다. ‘외국에서는 이렇게 했으니 우리도 하자’는 거다. 대표적인 예가 ‘깔짚’이다. 돼지의 습성을 고려해 바닥에 짚을 깔아준다는 건데, 청결을 위해 주기적으로 교체해 줘야 한다. 그럼 그 깔짚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유럽이야 농장 부지가 넓으니 쌓아두고 있지만, 우리는 그럴 형편이 될 농가가 얼마나 될까."
Q. 듣고 보면 국내 동물복지 축산의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힘들지 않은가?
"그래도 변화의 기미는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아서 힘들지는 않다. 현재 양돈농가는 세대교체 중이다. 현재의 농장주가 1세대라면, 그 농장을 이어받을 2세대 농장주들은 생각이 좀 다르다. 지금 방식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걸 잘 안다. 나름 대학원이나 유학 등으로 공부를 한 분들이라 객관적인 데이터를 갖고 운영에 참고하려 한다. 물론 기본 인식 자체는 보수적이지만, 해외 사례를 접하고 접목해서 농장 운영을 바꿔보려는 의지가 있다."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그의 말은 끊이지 않았다. 마치 작심한 듯 하고 싶은 얘기들을 다 풀어내고 있는 듯 보였다. 그만큼 동물복지 담론에서 농장동물이 소외된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동물복지 농장이 국내에서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뒤, 연구자로서 그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얼마나 먼 미래가 될지 모르겠지만, 원헬스(One Health)를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 특히 축산농가에서 병원체 등 악성 물질이 원헬스 순환고리에 들어오지 못하는 방역체계 구축 방안 연구를 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결국은 동물의 복지와 생명을 지키는 일은, 우리도 지속 가능한 삶을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윤진현 교수, 동그람이와의 인터뷰에서
마지막까지 ‘이유’를 설명하는 그는 진정 ‘T형 교수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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