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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폭염이야 밭일 가지 마" '자녀경보' 만든 기상청 김연매 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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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늘 폭염이래요. 밭일 나가지 마시고 꼭 집에 계셔야 해요."
경남 창녕군, 밀양시의 농촌 지역에 거주 중인 노인들은 요즘 날이 더워질 때마다 자녀들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는다. 문자메시지를 받는 사람도 있다. 평소에도 기상청이 폭염예보를 하고 있지만, 스마트폰 조작이 익숙지 않은 노인들은 날씨 정보를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설령 재난문자를 받더라도 무심코 넘어가기 일쑤다.
그러나 자녀가 직접 걸어온 전화는 다르다. 아들, 딸의 당부에 엄마는 무더위 속 농사일을 포기한다. 자연스레 온열질환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질병관리청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온열질환자 10명 중 4명은 60세 이상이었다. 질환 발생 장소는 실외작업장(32.4%)과 논밭(14%) 등 순이었다.
이런 식으로 노인이 받는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자녀 경보'라고 부른다. 부산지방기상청이 2년 전부터 창녕군을 시작으로 확대 시행 중인 정책이다. 날씨가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 생활 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대응 요령을 제공하는 '영향 예보'의 일환이다.
기상청이 보호자에게 '내일 창녕의 낮 최고기온이 30도까지 오르니, 외출을 자제하고 물을 자주 드시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시라고 어르신들께 안내 부탁드려요'라고 안내 메시지를 보내면, 자녀가 이를 토대로 부모님에게 안부전화를 거는 구조다. 폭염의 정도(관심·주의·경고·위험)에 따라 안내 메시지 내용도 달라진다.
'자녀 경보' 서비스를 처음 제안한 부산기상청 예보과 소속 김연매 사무관은 "폭염은 '소리 없는 살인자'라고 불릴 정도로 고령층에 위험하지만 어르신들이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자녀들 얘기는 귀담아들으실 거란 생각에 예보 전달방식을 바꿔봤다"고 설명했다.
기상청은 2022년 경남 창원 대산면의 한 마을에서 노인 25명을 대상으로 '자녀 경보' 서비스를 처음 실시했다. 지난해 여름엔 경남 창녕군에도 '자녀 경보' 시스템을 도입했다. 창녕은 최근 10년간 연중 폭염일수가 평균 28.9일에 달해, 밀양(29.7일)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더위가 극심한 지역이다.
김 사무관을 비롯해 기상청 직원들은 지난해 직접 창녕군에 있는 마을을 방문, 발품을 팔며 어르신들을 만나 자녀 연락처를 확보했다. 김 사무관은 "어렵사리 보호자에 연락을 해도 전화를 끊어버리거나, '정부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이 아니냐'며 경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설득 끝에 정책 취지에 공감한 보호자들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김 사무관은 "'자녀 경보' 덕분에 부모님이 자녀 목소리를 자주 듣게 된 것도 순기능"이라고 말했다.
정책이 호평을 받으면서 올해는 밀양에서도 '자녀 경보'가 시행 중이다. 이달 기준 창녕과 밀양에서 '자녀 경보' 서비스를 받고 있는 노인은 각각 1,788명, 467명이다. 자녀 등 보호자 130명이 이들에게 폭염 안부전화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김 사무관은 "'자녀 경보' 서비스의 관건은 보호자 연락처 확보와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정보보호법상 기상청이 임의로 자녀에게 폭염 안내 메시지를 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보호자에게 일일이 전화로 허락을 구하기는 한계가 있어, 온라인 동의를 병행하고 있다.
기상청 직원들이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려가며 발굴한 정책은 정부 내에서도 주목받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2일 페이스북에서 '자녀 경보' 서비스를 소개하며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사람을 살리는 것은 결국 사람의 정성이고, 집념"이라고 평가했다. 한 총리는 김 사무관에게도 "수고 많으셨다"며 치하했다.
현재 '자녀 경보'가 도입된 지역에서는 온열질환자가 발생하지 않는 등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공직 생활 27년 차를 맞은 김 사무관은 "날씨 예보는 실내에 계시는 분들보다 건물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더 유용한 정보라는 사실을 체감한다"며 "앞으로도 현장 근로자들에게 와닿는 정책 개발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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