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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 지원금 받으러 시청·병원·정부 '뺑뺑이'… "국가 시스템 때문 더 억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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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도 피해 보상을 받는데 아픈 사람은 보상받기가 참 힘드네요…."
10일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에서 만난 원창만(59)씨는 흉터가 남은 다리를 매만지며 말끝을 흐렸다. 지난해 7월 15일 경북 북부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원씨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집을 나섰다가 순식간에 토사가 그의 목까지 뒤덮었고 원씨 아버지 생일을 맞아 모인 가족들이 다같이 흙을 퍼낸 뒤 구급대원을 불러 겨우 구조됐다. 무릎 골절에 인대가 파열되고 심한 타박상을 입은 원씨는 안동병원에 22일간 입원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원씨에겐 여전히 산사태의 상흔이 남아 있었다. 그는 다리에 남은 흉터를 보여주며 "아직도 왼쪽 다리는 욱신거리고 아프다"고 한숨을 쉬었다. 1년간 공들인 사과 농사도 다친 다리로 직접 약을 치지 못해 돈을 들여 사람을 썼다. 그마저도 사과가 제대로 영글지 않아 헐값에 조합에 넘겼다. 그는 "요즘도 비만 오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거나 떠밀리는 꿈을 꾼다"고 털어놨다.
원씨를 더욱 힘들게 한 건 피해 보상까지 너무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현실이었다. 그는 병원비 지원을 받으려 수개월간 정부와 지자체, 병원을 오가는 이른바 '뺑뺑이'를 해야 했다.
원씨는 200만 원의 병원비 청구서를 들고 가장 먼저 영주시에 지원 여부를 문의했다. 그러나 영주시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신체장해등급이 필요하다고 했다. 장해는 부상이 치유됐으나 정신, 육체적 훼손으로 노동 능력이 상실되거나 감소한 상태를 말한다. 실명 수준인 1등급부터 팔과 다리 등 노출된 피부에 흉터가 남는 정도인 14등급까지 나뉜다.
원씨는 장해 진단서를 끊기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로부터 "산업재해법에 대해 잘 몰라 진단서에 적어 줄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지난해 영주시는 정부가 선포한 특별재난지역에 포함됐지만 장해 등급이 없는 탓에 재난지원금도 못 받았다. 영주시 관계자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지원금이 국비로 더 지원되는 개념이지 대상이 확대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가입한 시민안전보험 역시 영주시의 경우 사망자만 보장 대상이라 원씨에겐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민원을 제기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부상자가 받을 지원책이 없냐"고 묻자 행정안전부 소관이라고 했다. 원씨는 "의료 서비스 지원을 할 수 있다는 행안부 답변을 들고 영주시와 풍기읍에 따지니 그제야 방법을 논해 보겠다고 하더라"고 혀를 찼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사고를 당한 지 석 달 가까이 지나서 국민 성금으로 모인 기금과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 민간의 도움을 통해 병원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지원금 수령이 너무 까다롭다는 하소연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씨는 "피해자가 난리를 쳐야만 지원해주는 거냐"며 "수해지역 피해자 중 노인이 많은데 이렇게 어려우면 누가 보상받을 수 있겠냐"고 꼬집었다. 원씨의 경우 침수 피해로 무너진 집도 자신의 돈 2,000만 원을 들여 고쳤다. 풍수해로 주택이 파손·소실된 경우 피해 면적에 따라 지급하는 지원금 규모가 작년부터 2,000만~3,600만 원으로 올랐지만 원씨의 경우 파손이 아닌 침수 피해만 인정돼 300만 원을 받은 게 전부였다. 그는 "피해를 본 것도 억울하지만, 국가 시스템이 더 억울하다"며 "앞으로 수해 피해가 계속될 텐데 피해자들이 좀 더 쉽고 간결하게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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