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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교통 혁명이라고요? 광역버스 타지, GTX 왜 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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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달 25일 오전 9시쯤 서울역 인근에서 차를 몰아 올해 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 개통 예정지인 경기 파주 운정신도시로 향했다. 강변북로가 꽉 막혀 서울을 통과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려 도착까지 1시간쯤 걸렸다. 지하철·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타면 빠르면 50분, 길게는 1시간 반 정도 걸리지만, 올해 말 GTX 운정역이 개통하면 서울역까지 19분이면 도달한다.
#2. 지난달 26일 오후 4시 20분 경기 성남역에서 서울로 향하는 GTX를 탔더니 해당 객실 승객은 기자 포함 단 2명이었다. 앞서 동탄에서 성남으로 올라올 때도 상황은 같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엔 네티즌이 공유한 텅 빈 GTX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용객이 없어 적자가 심하면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반응이 많다.
GTX A노선이 개통한 지 8일이면 100일째를 맞는다. 2009년 GTX 개념이 처음 나온 뒤 실제 현실화까지 무려 15년이 걸렸다.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서울·수도권에 GTX 5개 노선을 추가로 깔고 이를 충청·강원도까지 연결해 진정한 '출퇴근 30분 시대'를 열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하지만 초반 뚜껑을 열어 보니 체감도가 미미하다는 박한 평가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일보가 GTX가 개통된 최남단 동탄역부터 개통 예정지인 최북단 운정역까지 차례로 찾아 살펴보니, '교통 혁명' 기대와 '갈 길 멀다'는 우려가 교차했다. '집값 급행열차' 기대감도 옅어진 상황이다.
GTX는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남북과 동서를 6개 노선으로 거미줄처럼 잇는 최초의 고속 대중교통이다. 평균 시속 100㎞(설계속도 200㎞)로 기존 지하철보다 3배가량 빠르다. 여기에 지하 깊은 곳(평균 60m)에 터널을 뚫어 노선을 직선화한 덕분에 GTX는 고속으로 최단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
현재 경기 북부와 수도권 남부를 잇는 A노선이 가장 먼저 개통했다. 경기 파주 운정신도시부터 경기 남부 화성 동탄신도시까지 총 82.1㎞, 11개 역을 지난다. 핵심 업무지역인 서울역과 삼성역이 포함돼 있다. A노선 어느 역이든 서울역과 삼성역까지 가는 데 20분이면 충분하다.
다만 완전 개통까지 4년 넘게 기다려야 한다. 3월 동탄~수서 구간(34.9㎞·4개 역)이 가장 먼저 개통했고, 올해 말(12월 28일 예상) 파주~서울역 구간(32.4㎞·5개 역)이 2단계 개통한다. 삼성역을 제외한 서울역~수서 구간(15㎞)은 2026년(9월 예상)에 뚫린다. 이에 내후년까지 운정∼서울역과 수서∼동탄 구간을 각각 분리 운행한다. 이어 삼성역을 정차하지 않고 운정~동탄을 연결하고, 삼성역이 문을 여는 2028년 전 구간이 완전 개통된다.
다음으로 C노선(양주 덕정~서울 삼성~수원)이 2028년, B노선(인천 송도~서울역~남양주 마석)은 2030년 개통 목표로 추진 중이다. 신규인 D노선(김포·인천~팔당·원주), E노선(인천~남양주), F노선(고양~수원~의정부)은 1단계 구간을 2035년 개통하는 게 목표다. 모두 계획대로 건설되면 수도권 전역은 물론 충청·강원까지 이동시간이 1시간 이내로 좁혀진다. 정부는 이에 따른 경제 효과를 135조 원으로 추산한다.
정작 GTX 접근성을 높이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게 현재 부분 개통한 A노선의 현실이다. 지난달 25일 찾은 경기 고양시 대곡역이 그렇다. 기존 3호선 외에 경의중앙선과 서해선이 다니는 대곡역엔 연말부터 GTX도 통과한다. 인근 부동산업계는 진정한 환승 허브(hub)로 지역 가치가 커질 것이라고 내다보지만 주변 인프라는 이런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
대곡역 주변은 거의 논밭과 공장이고 아파트는 1㎞ 떨어져 있다. 인근 아파트(능곡·화정·대장동)에서 대곡역으로 가는 마을버스는 2대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배차 간격이 길고 인근 지역을 넓게 돌아 운행하다 보니 서지 않는 곳도 많다. 이에 주민들은 10분 정도 걸어 대곡역으로 가는데, 인근이 논밭에 허허벌판이라 여성이나 어린 학생들은 오히려 시내를 끼고 있는 능곡역을 더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차량 접근성도 좋지 않다. 대곡역 진입로는 폭 12m의 2차선 도로가 유일하다. 이날도 주변 임시주차장이 꽉 차 길 주변에 주차한 차가 많아 차 한 대가 빠져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역 근처에 공영주차장을 짓고 있지만 좁은 도로는 그대로다. 인근 아파트에 사는 김민정씨는 "GTX가 개통하더라도 도로가 혼잡해 대곡역 근처에 차를 대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것"이라며 "종착역도 아직은 서울역이라 이동시간 등을 고려하면 능곡역에서 타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GTX 종착역이라 기대가 상당한 파주 운정신도시 주민들도 여러 의문을 표한다. 일단 GTX운정역은 기존 경의중앙선 운정역과 4㎞ 떨어진 운정신도시 3지구에 들어선다. 역 주변에 공사 중인 20여 개 아파트 단지와 상업 단지는 빨라야 내년 말부터 입주를 시작한다.
정작 기존 거주 단지인 1, 2지구에선 걸어서 GTX운정역까지 가기 어렵다. 급행버스(BRT)도 없고, 현재 버스 노선으로는 20분씩 가야 한다. 1, 2지구 주민 입장에선 기존 경의중앙선 운정역에서 승차해 대곡역으로 가서 다시 GTX로 환승하는 게 그나마 편한 방식이다. 주민 이기영씨는 "GTX 역사와의 낮은 접근성, 높은 요금, 아직 서울역까지만 부분 개통 등으로 이용객이 아주 많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결국 GTX 개통만으로 낙후된 교통 인프라를 단번에 개선할 수는 없다는 게 주민들 속내다. 지난 정부 때 발표한 3호선 종착역을 기존 대화역에서 운정 인근(금릉역)까지 연장하는 방안, 경기 안산과 여의도를 연결하는 신안산선 등이 차질 없이 진행돼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이들 노선의 개통 시기를 예측하기 어렵다.
3월 말 GTX가 개통된 동탄~수서 구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난달 26일 출근시간대인 오전 8시 14분 동탄역에서 GTX를 타고 수서역에 도착할 때까지 전 객실에 있는 승객 수를 헤아려 보니 180명이었다. 출퇴근시간을 제외하면 이용자는 찾아보기가 더 어렵다. 오후 4시 성남역에서 지하 46m 아래의 승강장에 이르기까지 단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다. 여성이라면 다소 불안감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사정은 실제 정부 통계로도 확인된다. 개통 이후 지난달 25일까지 일평균 이용객은 7,800여 명으로 국토교통부가 예상한 2만1,523명의 36% 수준이다. 핵심 업무지구인 삼성역이나 서울역까지 접근할 수 없는 게 저조한 이용률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경기 남부에서 서울 강남으로 출근하려면 집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동탄역까지 가서 GTX를 타고 다시 수서역에서 환승해야 한다. 행정구역상 수서역도 강남권이긴 하지만, 중심 지역으로 꼽히는 2호선 라인 교대나 선릉까지 가려면 12~20분이 더 걸린다. 더구나 수서~동탄 구간은 SRT와 선로를 공유하는 바람에 배차 간격이 꽤 길다. 출퇴근시간엔 14분, 평시엔 20분, 밤엔 30여 분이라 한 번 차를 놓치면 도착까지 하염없이 늦어진다. 다만 단독 선로를 쓰는 운정~서울 GTX는 배차 간격이 6~10분으로 훨씬 짧다.
이 때문에 현재로선 집 근처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편하게 앉아 한 번에 강남, 광화문으로 가는 게 오히려 더 나을 수 있다. 경기 용인시 구성역 근처에서 만난 30대 회사원은 "수인분당선을 타고 판교나 분당으로 출근하는 지인들은 GTX-A노선 개통에 큰 관심이 없다"며 "서울로 출근하더라도 삼성역이 개통돼야 쓸모가 있겠다"고 말했다.
미흡한 대중교통 환승도 아쉬운 부분이다. 성남역은 5개 출구 가운데 5번 출구 앞에만 작은 버스 정류장이 설치돼 있다. 1번 출구는 아파트 단지 뒤쪽 외진 길에 있고, 2·3번 출구는 공원 안에 있다. 특히 판교 사무 단지 방향인 2번 출구 앞은 좁은 2차선 도로라 환승을 위해 차를 가져오는 것도 쉽지 않다.
국토부는 GTX 성남역에서 신분당선 판교역이나 수인분당선 이매역으로 가면 환승 가능하다고 홍보했지만, 기자가 직접 걸어 보니 9분 25초가 걸렸다. 택시 운전사 이재용(63)씨는 "역을 잘못 만들었다"고 혀를 찼다. 접근할 도로가 하나뿐이라 택시 승객 호출을 받아도 가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GTX A노선 효과가 가시화하려면 삼성역 조기 개통과 GTX 연계교통 강화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진작부터 나왔다. 감사원이 2021년 발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역 승하차 수요는 삼성~동탄 수요의 30% 이상, 전체 A노선 수요의 14%를 차지한다고 돼 있다.
"삼성역이 제때 건설되지 않아 노선이 단절되면 수도권 장거리 통근자에게 교통 편리성을 제공한다는 당초 사업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게 감사원 지적이었다. 박준표 포애드원 본부장도 "가장 핵심인 삼성역이 뚫리지 않는 이상 GTX가 생활 판도를 바꾸긴 어렵다"고 했다.
정부는 2028년 삼성역 개통을 거듭 강조하지만, 최근 공사비 급등 등 변수가 많아 100% 장담하긴 어렵다.
GTX 연계교통 대책이 각 지방자치단체 소관이라 지자체별 준비 사항이나 수준이 다르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단순히 환승 체계만 개선할 게 아니라 GTX 역세권 개발도 함께 이뤄져야 하는데, 지자체가 이를 모두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시각도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삼성역은 2호선 환승 방식으로 임시 개통 일정을 앞당기려고 하고 현재 지자체와 연계교통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이호 한국교통연구원 철도교통연구본부 본부장은 "시간이 지나면 GTX로 인해 집값이 낮은 수도권 외곽으로 가는 인구가 늘어나는 등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지금은 적응기인 데다 삼성역 개통 전이라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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