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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표 '마냐네라' 부활, 너무 큰 기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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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어떤 나라 대통령은 오전 7시 전후 기자회견을 연다. 주말 빼고 매일 한다. 현안을 브리핑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다. 30~40분도 하고, 어느 날은 1시간도 넘게 한다. 3시간 35분 5초 동안 한 적도 있다.
멕시코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70) 대통령은 이런 기자회견을 6년 가까이 했다. 공식 기자회견에 '이른 아침'이란 뜻의 '마냐네라'란 말랑한 이름이 붙었다. 횟수로 따지면 올해 10월 퇴임까지 대략 1,400회가량의 기자회견을 하게 된다. 멕시코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마냐네라를 생중계하는 대통령 공식 유튜브 채널에 요 며칠 들어가 봤다. 한국 시간으로 밤 10시 반(멕시코 현지시간 오전 7시 반)쯤 되니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아니모(Animo·힘냅시다)!"라 외치며 대통령궁 내 회견장에 들어선다. 대통령의 긴 이름이 채널명인 이 유튜브의 구독자 수는 436만 명에 달한다.
기자회견을 악용한 적도 많다. 업적 과시, 반대 진영 공격은 오브라도르의 특기다.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욕도 먹었다. 자신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쓴 기자들의 휴대폰 번호와 급여 등을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것이 대표적이다. 2020년 코로나19 유행 초기 기자회견 때 멕시코를 코로나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거냐는 질문에 지갑에서 부적을 꺼내 보인 황당한 일화도 유명하다.
그래도 매일 아침마다 "아니모!"다. 임기 말 대통령이 60%대 지지율을 얻는 배경이다. 자신의 정치 후계자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최근 멕시코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에 뽑힌 것도 오브라도르 후광 덕이 크다. 소통 의지 하나만큼은 "경이로울 정도"(영국 이코노미스트)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비슷한 걸 한 적이 있다.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이다. 정치는 가정법을 싫어하지만, 가정해 본다. MBC 기자와 대통령실의 감정 싸움으로 반년 만에 자취를 감추지 않았더라면? 이 정부의 '상징'이 됐을 이벤트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도어스테핑을 끌고 갔더라면?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은 것은 1년 5개월 만에 처음' 같은 상황이 뉴스가 되는 일은 없었을 거다. 이런 뉴스, 솔직히 국제 망신이다.
소통을 안 한다고 하도 욕을 먹다 보니, 청계천도 가고 시장도 갔다. 영일만 석유·가스전 매장 가능성이란 간 떨리는 내용으로 첫 국정 브리핑도 했다. 총선 패배, 낮은 지지율, 이유야 어떻든 나름의 소통 행보다. 최근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70%에 달했는데, '소통 미흡'을 이유로 꼽는 답변이 많았다. '윤통은 불통'을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함이 이 정부에도 없진 않다.
언론과 사이 안 좋기로 유명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까칠한 질문을 하는 기자들과 대놓고 설전을 벌였다. 그래도 수시로 마이크를 잡았다. 사정 없이 날리던 '트윗' 때문이기도 했지만, '트럼프를 싫어하는 기자들은 많아도 그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는 기자들은 없다'는 말이 오갔다.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웬만한 임기 말 대통령 수준인 21%로 밀렸다. 생각을 알 수 없던 대통령은 기로에 서 있다. 윤석열표 '마냐네라'의 부활, 너무 큰 기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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