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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숨기려 매니저가 사후 음주운전... 탈법왕 '김호중 일당'의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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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운전 안 했습니다."
"술잔은 입에 댔지만 마시진 않았습니다."
"소주 열 잔 정도 마셨지만 음주 사고는 아닙니다."
증거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살라미'를 썰어내듯 하나씩 거짓 해명을 여론 앞에 던져주던 김호중이 결국 "죄송하다"는 한마디 말을 남긴 채 검찰에 송치됐다. 사건 발생 3주 만이다. 그간 김호중과 소속사는 '음주 뺑소니' 수사를 받으며 거짓말로 일관하고 사건을 은폐했다. 사법 시스템을 무시하려는 태도 탓에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김호중과 소속사는 쏟아져 나온 증거와 경찰의 고강도 수사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조작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마지막 항변도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건을 무마하는 과정에서 매니저 역시 술을 마신 채로 차량을 몬 사실이 확인됐는데, 김호중과 소속사가 범죄를 다른 범죄로 덮으려 했던 부도덕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31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상과 도주치상,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및 사고후 미조치, 범인도피교사 등 혐의로 김호중을 검찰에 구속송치했다. 이날 오전 8시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강남서를 나온 김호중은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사건 은폐를 위해 매니저에게 대리 자수를 지시(범인도피교사)한 생각엔터테인먼트 이광득 대표, 차량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폐기(범인도피교사·증거인멸 등)한 본부장 A씨도 함께 검찰에 넘겨졌다. 술을 마시고 차량을 회사까지 운전한(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뒤 김호중을 대신해 경찰에 허위 자수(범인도피)한 매니저 B씨도 불구속 송치됐다.
그간 김호중 측은 경찰을 철저히 기만하려 했다. 9일 오후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반대 차선 택시를 치고 달아난 이후 거듭된 출석 요청에도 김호중은 17시간이 지난 뒤에야 경찰서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전에는 이미 이 대표의 지시하에 옷을 바꿔 입은 매니저 B씨가 "내가 운전했다"고 허위 자수했고, 본부장 A씨는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씹어 삼켰다. 하지만 경찰은 차량 소유주가 김호중이라는 사실에 입각해 지속적으로 추궁해 김호중의 자백을 받아냈다.
이걸로 거짓말은 끝나지 않았다. 김호중은 "운전은 했지만 술은 마시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7시간 만에 이뤄진 음주측정 결과에서 '음성'이 나온 게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행적을 분석한 경찰이 사고 전 그가 유흥주점을 들렀음을 확인했지만, 그는 "콘서트를 앞두고 있어 음주는 안 했다", "술잔에 입만 댔다", "차(茶)만 마셨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수사에 대응하기 위해 대검 차장검사 출신 거물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는 정치인스러운 면도 보였다.
그러나 숱한 증거들이 거짓 진술을 무너트리기 시작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사고 전 술을 마신 것으로 판단된다'는 감정 결과가 신호탄이었다. 경찰은 주점 직원들에게서 "술을 마시는 걸 봤다"는 취지의 진술도 확보했다. 김호중이 주점에서 나온 뒤 400m 거리 집을 가기 위해 대리운전을 불렀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김호중은 그 후에도 "술 열 잔만 마셨다"고 진술하며 혐의를 피하려 발버둥 쳤으나, 그들의 대범한 시도는 쏟아진 증거와 수사기관의 강력한 수사 의지 앞에 계획이 무너지고 말았다.
오히려 계속된 거짓 진술이 수사기관을 자극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통상 구속까지 안 가는 운전자 바꿔치기 범죄에 경찰·검찰은 추가 증거 인멸 가능성 등을 강력 주장하며 24일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당시 음주운전·범인도피교사 혐의에 대한 수사도 어느 정도 진척된 상황이었지만, 경찰은 확실한 혐의들로만 구속영장신청서를 채우는 꼼꼼함을 보였다. 경찰 관계자는 "조직적 사건 은폐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기존의 바꿔치기 범죄와 차원이 달랐다"며 "김호중 측이 언론을 통해 사건조작을 시도했다는 점도 법원이 충분히 고려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구속 이후에도 고삐를 풀지 않았다. 경찰은 주변인 진술을 추가 청취했고, 위드마크(음주운전 직후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하지 못했을 때, 농도를 역으로 계산해 추정하는 것)로 김호중의 사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를 추정해 음주운전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직전 주문한 술의 양을 사람 수로 나누는 방식이 아닌, 김호중이라는 개인이 어떤 술을, 얼마만큼 마셨는지 특정하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은폐 과정에 관여 안 했다는 그의 마지막 해명도 무위로 돌아갔다. 매니저에게 "대신 자수해달라"고 말한 녹취를 확보한 게 결정적이었다. 그 덕에 경찰은 범인도피방조 혐의를 보다 형량이 센 범인도피교사로 변경할 수 있었다.
사고를 은폐하던 중, 매니저 B씨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사고차량을 운전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음주운전 범죄를 숨기려고 음주운전을 또 한 셈인데, 애초에 김호중 일당에게 '음주운전=범법행위'라는 인식이 없다는 걸 추정케 하는 대목이다.
교통사고 전문 정경일 변호사는 "법원에 가서도 지금처럼 하면 실형이 나올 수 있다"며 "음주운전, 바꿔치기 범죄를 회피하는 전형적인 행태를 철저하게 수사함으로써 교훈을 줬다"고 평가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가끔 실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역시 경찰은 경찰"이라며 "전관변호사를 동원하고 온갖 조작 행태가 있었음에도 흔들림 없이 수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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