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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사적 내 친일파 무덤이…민영휘 일가 '파묘' 시킨 6년 추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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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일가족의 묘가 국가 사적에 자리 잡고 있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김남균(53) 충북인뉴스 기자는 최근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영휘(1852~1935) 일가의 재산과 묘지를 추적한 책 ‘파묘(충북인뉴스 발행)’를 펴낸 소회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는 국가 사적인 청주 상당산성 내 민씨 일가의 토지를 6년여간 추적해왔다. 그 과정에서 민씨 일가의 숨겨진 땅과 함께 가족묘지를 확인해 세상에 알렸다. 보도 이후 대부분의 무덤은 파묘돼 홀연히 사라졌다. '파묘'에는 이런 과정이 소상히 담겨 있다.
민영휘는 한·일 병합에 기여한 공로로 일제로부터 자작 직위와 은사금(일왕의 하사금)을 받은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다. 그는 관직에 있을 때 수탈한 재산으로 일제강점기 최고 갑부가 됐다. 전국 곳곳에 5,000만㎡가 넘는 땅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기자가 민영휘 일가 재산 추적에 나선 것은 2018년부터다. 3·1운동 100주년(2019년) 기념 기획기사로, 지역에 남아 있는 친일 잔재를 연재하던 무렵이다. 그는 친일 인사의 공덕비나 건축물 등이 향토 문화재로 둔갑한 사례를 집중 취재했다. 그러다 청주의 명소인 상당산성 내에 민영휘의 둘째 부인인 안유풍의 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민대식) 묘와 차남(민천식)부부 묘가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국가 사적 안에 친일파 묘가 왜 남아 있을까”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그는 상당산성 내 토지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등기부등본을 하나하나 떼봤더니 상당수의 필지가 ‘조선신탁주식회사’ 명의로 돼 있었다. 조선신탁주식회사는 민영휘가 조선총독부와 함께 설립한 금융회사다. 일부 필지는 민영휘 개인 회사인 ‘개성’ 명의로 드러났다. “민씨 일가의 차명 토지라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죠. 2005년 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 특별법으로 친일파의 땅이 모두 국고로 환수된 줄 알았는데,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미심쩍은 땅은 파고 또 팠다. 결국 그의 보도로 드러난 조선신탁주식회사 소유 8필지는 2022년 12월 국가로 귀속됐다. 공시지가로 약 7억 원, 시가로 20억 원 상당의 토지였다. 민영휘 재산을 추적하는 일은 시간과 인내력과의 싸움이었다. 혼자서 충북도 내 5개 시군 땅 20만 필지를 샅샅이 조사했다. 시간만 나면 시·군청을 찾아 장부를 열람, 기록하고 자료를 축적했다.
친일파 무덤도 두고 볼 수 없었다. 안유풍의 무덤은 크기부터 남달랐다. 봉분 높이가 2m나 되고 원숭이 모양 석물 2점과 일본 양식의 석등, 상석 등이 배치돼 있었다. 자식들의 묘도 비슷했다. 김 기자는 인근 산지를 뒤져 민영휘 손주 묘 등 총 9기의 민씨 일가 무덤을 발견했다. 민씨 일가 토지가 국고로 귀속된 뒤에도 무덤은 그대로였다. 김 기자는 ‘상당산성은 민영휘 일가의 가족묘지였다’는 기사와 함께 사적 내 친일파 무덤에 뒷짐 지고 있는 청주시를 비판하는 기사를 잇따라 보도했다. 그랬더니 민씨 일가의 무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총 9기 가운데 안유풍 묘를 비롯한 7기가 파묘됐다. 지금은 민천식 부부 묘 2기만 남아있다. 김 기자는 “기사가 나간 뒤 무덤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언제 어디로 묘를 이장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고 했다.
김 기자는 요즘 민씨 일가 무덤을 지키던 묘지기의 집에 주목하고 있다. 강원 춘천의 민영휘 무덤 앞에 있는 묘지기 집(민성기 가옥)이 지방문화재로 등재된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는 “친일 잔재가 문화재로 둔갑하는 걸 한두 번 본 게 아니다”라며 “더 늦기 전에 상당산성 내 묘지기 집은 친일파 재산 환수 기념관이나 기록관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국민의 관심도 촉구했다. “역사를 올바로 기억하고 밝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다른 눈 밝은 이들에 의해 친일 잔재 기록이 더 넓고 깊게 채워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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