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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노 쇼'

입력
2024.02.19 17: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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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득하기 어려운 독일 국빈 방문 연기
임박한 불참, 무계획적이고 일방적 인상
이런 식의 국정 운영으론 믿음 못 얻어

지난달 22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생활규제 개혁을 주제로 열린 민생토론회가 준비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불참은 행사 시작 30분 전 공지됐다.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생활규제 개혁을 주제로 열린 민생토론회가 준비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불참은 행사 시작 30분 전 공지됐다. 연합뉴스


외국 수반의 국빈 방문(State Visit)에는 초청 국가의 최고 의전이 따른다. 공항 영접에서부터 예포, 만찬까지 극진한 대우는 물론이고 비용 부담까지 상대국에서 최고의 예를 다하는 게 외교 관례다. 미국이나 영국 등 강대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빈 방문 초청이 기껏해야 1년에 두어 차례 이루어지는 것도 국가적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이라 국빈 방문은 의제나 예우, 일정 등에 대해 장기간 상호 협의를 해야 하고 대개 1년 전부터 계획하고, 준비하는 게 통상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주로 예정된 독일 국빈 방문과 덴마크 공식 방문을 지난 14일 연기했다. 18일 출국임을 감안하면 나흘 전이다. 여러 요인을 고려했다는 짧은 설명이지만 뚜렷한 연기 이유를 언론에 밝히지 않았다. 얼마나 우리 사정을 간곡하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는지 알 수 없지만 국빈 방문 초청국인 독일이 불쾌할 만한 갑작스러운 연기 통보다. 심각한 외교 결례다. 노무현, 박근혜 대통령 시절 등 10년에 한 번꼴로 이루어진 독일 국빈 방문이다. 천재지변 등 급박한 국내외 사정이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국빈 방문 연기라 상식적으론 납득하기 어렵다. 이러니 추측과 뒷말 또한 무성할 수밖에 없다. 국빈 방문 성격상 대통령 부부 동반이라 여론이 들끓고 있는 김건희 여사에게 초점이 모아질 경우 50일 남은 총선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추측이다. 북한의 도발 위협 또한 거론되고 있지만 물리적 충돌을 빚지 않는 긴장국면에서 신빙성이 다소 떨어지는 정황이다.

물론 해외의 외교수반이나 역대 우리 대통령의 해외순방이 국내외 사태로 연기, 취소되는 사례가 있지만 뚜렷한 위기나 재난이 없는데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국빈 방문 취소 사례는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독일은 우리의 오랜 우방일 뿐만 아니라 유럽의 맹주로서 갖는 정치 경제 군사적 영향력에 비춰 갑작스러운 국빈 방문 연기가 미칠 부정적 영향을 가늠하기 어렵다. 140년 수교 역사의 한독 관계나 우리의 신뢰도에 적지 않은 손상도 가게 됐다. 유럽 순방에 동행할 예정이던 우리 경제계나 문화 사회 인사들도 일정을 비워 뒀을 터인데 정부가 사과의 예를 다했는지 모를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안타까운 건 총선이든 북한 도발이든 이미 노출되고, 예상 가능한 사안이라 충분한 시간 여유를 갖고 국빈 방문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순방에 임박해서 결정이 내려졌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일정 변경이 무계획적이고 일방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건 심각하게 여겨야 할 사안이다. 지난달 22일 생활규제개혁을 주제로 한 민생토론회도 행사에 임박해 대통령의 불참이 공지됐다. 대통령실은 감기몸살을 이유로 들었는데 이 또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참석자에게 사전에 통보해야 했다. 민생토론회에 대한 대통령의 ‘애착’에 비춰 마스크를 쓰더라도 참석했다면 선거 개입 시비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일이지만, 행사 시작 30분 전 공지된 감기몸살 이유의 불참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의 충돌 여파라는 관측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이 정권의 체계 없는 일 처리를 거론하자면 최근 인사 역시 그러하다. 탕평 같은 원론은 접어두더라도 총선용으로 3개월 만에 교체한 산업자원부 장관, 또 5개월 만에 권익위원장에서 방통위원장으로 자리바꿈 한 사례로 보면 조직 안정을 해치는 이런 식의 땜질 인사는 중소기업도 하지 않는다. 하물며 국정 운영에 이런 일이 빈번하게 생기면 국민이 대통령이나 정부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정진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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