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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불륜을 대하는 두 시각… '일부일처제'로 포장된 사회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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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한국일보를 포함한 몇몇 한국 언론이 베를린 시장의 연애 소식을 전한 바 있다. 카이 베그너 시장은 보수당인 기독민주당 출신으로서는 22년 만에 베를린 시장이 된 인물이다. 그의 연애가 전 세계 주요 언론의 뉴스가 된 이유는 상대방이 베를린 시정부 교육장관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연애 소식이 공식화되기 직전, 두 아이를 함께 키웠던 전 파트너와의 결별 소식이 전해진 참이었다. 전 파트너와 헤어지기 전부터 새로운 연인을 만난 게 아니냐는 궁금증이 생길 만큼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독일 언론과 대중은 그런 건 타인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사생활’로 보았다. 독일 언론과 정당들이 문제 삼은 것은 ‘권한 남용’과 ‘이해관계 충돌’이었다. 연인이 된 후 시장이 교육장관을 임명했다면 권한 남용이라는 것이고, 시장이 연인에 대한 사적 감정을 배제하고 여러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중재하기 쉽지 않을 것이기에 이해관계 충돌에 대한 지적이 나온 것이다. ‘사내연애’ 자체를 두고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미칠 공적 영향에 대해서는 토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한국 정서로는 수도의 시장이 결혼하지 않은 파트너와 전 부인과의 관계에서 낳은 아이들을 함께 키웠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데, 그 와중에 새로운 연인을 만나 결별과 만남을 이어가는 과정이 그 자체로는 ‘사생활’로 용인된다니, 상상하기 어려운 ‘경지’다. 독일도 사람 사는 곳이라 뒷담화 문화가 없지 않지만 공인인 정치인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사생활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며 위신을 깎아내리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가끔 이 같은 서유럽 정치인들의 ‘자유분방한’ 사적관계가 들려올 때면 한국 사회가 성적으로 너무 ‘보수적’이라는 한탄을 곁들여 꼭 듣게 된다. 과연 그럴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성(性)에 대해 갖는 태도는 보수적이 아니라 이중적이다. 앞에서는 점잖은 척하다가 뒤에서는 점잖은 척했던 스트레스를 분출이라도 하듯 온갖 종류의 기행(?)을 감행하고, 남성의 성적 욕구, 관계, 모험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여성의 그것은, 심지어 그것이 폭력 피해의 결과라 하더라도 공적 평판을 일거에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N번방 사건’과 ‘벗방(벗는 방송) 사건’을 보라.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을 지속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피해자들의 신상정보를 가지고 가족이나 주위 아는 사람들에게 이를 알리겠다고 한 협박이 ‘먹혔기’ 때문이다. 이 협박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즉 여성이 성적으로 연루된 상황이 그녀의 인간성 전체에 대한 의심과 비난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피해자들이 주위 사람들을 믿고 도움을 청하고 받을 수 있다면, N번방 사건과 벗방 사건 같은 일들은 일어나기 어렵다.
서유럽이라고 해서 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서유럽에서 시작된 자본주의는 초기에 임금노동자로서의 남성 노동자와 무임노동자로서의 주부(housewife)를 한 쌍으로 한 이성애 핵가족 없이 가능하지 않았다. 주부의 무임노동이 바로 지금은 ‘가사노동’이라고 부르게 된, 남성 임금노동자가 매일매일 일터로 갈 수 있도록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모든 활동이다. 여기에는 흔히 생각하는 식사 준비, 세탁, 청소뿐 아니라 집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활동과 감정 및 돌봄 노동 그리고 성관계가 포함된다. 근대 초 서유럽 법이 거의 예외 없이 아내를 남편의 소유물(property)로 규정했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아내의 성은 당연히 남편의 소유물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했던 근대 초기 영국에서 결혼 전 여성의 ‘성적 순결’과 아내의 성적 정숙함이 강조되었던 이른바 ‘빅토리안 규범’은 그 대표적인 예다.
이런 상황은 1960, 70년대에 벌어진 페미니즘 운동과 성혁명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성혁명이나 ‘성해방’이라고 하면 섹스를 할 기회의 증가 정도로 오해하는데 핵심은 자신의 몸과 성을 타인에 의해 규정당하지 않을 권리다. 그래서 기존에 이미 ‘해방’되어 있었던 이성애 남성의 성이 아니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의 몸과 성의 해방이 주요 어젠다로 등장했던 것이다. 이는 기존의 남성 중심적 이성애 관계와 가족을 포함한 친밀성의 구조 전반을 변화시켰다.
반면 한국의 여성운동은 ‘제대로 된’ 일부일처제 즉 이성애제도를 확립하는 데 힘을 기울여왔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1953년 제정되었고 2015년 위헌 판결로 이제는 사라진 간통죄다. 한국 여성계는 간통죄 제정을 환영했고 1990년대 이후 폐지 논의가 불거질 때마다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조선 시대 양반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양반의 수적 증가를 막고자 도입한 처와 첩의 위계적 구분은(‘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의 사례가 보여주듯 첩의 자식은 서자로 관직에 나갈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에도 축첩제로 유지되었다. 1953년 간통죄가 제정되었을 때 여성운동계의 열렬한 환영은 축첩제의 현실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가득 찬 것이었다. 일부일처제는 드러난 법에서의 규정이었을 뿐, 혼외 관계에서 낳은 자식을 아버지의 호적에 입적시킬 수 있었던 호주제는 실제로는 남성 중심의 중혼과 축첩을 허용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 여성운동으로서는 남성 중심적 이성애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로서의 성혁명이 아니라 일부일처제의 확립이 오히려 과제였던 셈이다. 물론 현실에서 간통죄는 남성들이 혼외 관계를 가진 아내들을 처벌하는 용도로 주로 활용했다.
그래서일까. 일부일처제에 대한 신경증적 반응을 여성주의 정치를 지향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일이 지금도 종종 벌어진다. 최근 고(故) 이선균씨 사건에 대한 일련의 대중적 반응도 이에 해당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공영방송이 당사자 검찰 소환 조사의 주요 이유와 무관한 내용을 담은 녹취를 대중에게 여과 없이 전달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문제제기보다는 이를 ‘기혼자의 올바르지 못 한 사생활’로 추정하면서 많은 이가 ‘분노’한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이를 페미니즘적으로 올바른 태도라고 정당화하는 감정은 또 무엇인가. 한국의 어떤 여성들과 남성들에게는 이성애제도의 중심성에 대한 성찰 이전에 겉으로는 일부일처제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일부다처제인 현실이 문제다.
그러나 또 많은 한국 여성은 혼외 관계 이전에 결혼이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기록적으로 낮은 혼인율과 출산율은 한국 사회에서 성역할 결합으로서의 결혼이 더 이상 주요한 친밀성 제도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지표다.
이런 변화는 혼외 관계를 그린 드라마의 변화에서도 살필 수 있다. 몇 년 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부부의 세계'는 남편의 ‘불륜’에 분노하고 절망하는 여자 주인공을 그렸다. 의사라는 전문직도 자신보다 나이 어린 여성과 남편의 혼외 관계에서 이 여성이 받은 고통을 상쇄시키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반면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남편의 불륜을 목격하고 그 자리에서 사망한 여자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미래) 남편을 불륜 상대와 결혼시키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그린다. 쓰레기 남편을 자신을 괴롭혀 온 여성에게 떠넘기기 위한 갖가지 ‘신박’한 전략이 묘사되면서, 성역할로 환원되는 경험을 해 온 여성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내 남자를 빼앗겼다는 억울함보다 기꺼이 내 남자를 넘기겠다는 홀가분함. 이건 남성들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자세다. 남성들은 여성과의 관계보다 남성 집단 내 위치와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여성을 기꺼이 ‘공유’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첫사랑 여성을 친구에게 ‘빼앗긴’ 남성이 아련한 눈빛으로 ‘잘 부탁한다’고 말하는 장면은 흔하디 흔하다.
혼외 관계에 대한 신경증적 반응, 신상정보로 여성을 협박해 성착취하는 거대한 산업, 빼앗긴 김에 내 남자 가져가라는 여성 재현의 공존이라니. 일부일처제 한국 사회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속도와 세대와 젠더 간 간극이 아득할 따름이다. 성폭력과 성착취, 사적 관계로 공적 이익을 취하는 행위와 시민 개인 사생활의 자유를 구분하는 토론을 시작해 이 아득한 상황을 윤리적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인 이한 작가와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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