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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쇼가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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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지난 23일 충남 서천 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만난 것을 두고 ‘정치쇼’라는 비판이 거세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쇼’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으나 ‘정치쇼 자체가 문제’라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쇼다. 정치인들은 선거가 다가오면 국민을 위하는 척, 국가와 민생을 걱정하는 척, 정의로운 척한다. 표를 얻기 위해 자신의 행동과 신념을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유권자들도 이런 정치의 속성을 알고 있다.
재난 현장을 정치쇼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개인적으론 그 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다. 인명 구조나 화재 진압이 한창 진행 중인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재난 현장이야말로 정치쇼가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홍보용 사진·영상을 위한 것이라 해도) 슬픔에 빠진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하소연을 들어주는 정치인, (자기 권한 밖의) 피해 복구 지원을 약속하는 정치인, (구체적 계획 없이) 진상 규명과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는 정치인···. 이런 정치쇼라도 벌어져야 재난의 심각성이 널리 알려지고, 실질적인 지원과 문제 해결에 힘이 실린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서천시장 상인들도 이런 정치쇼를 기대하지 않았을까. “피해 복구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대통령의 든든한 말 한마디, 여당 비대위원장의 지원 방안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기대에 아침부터 끼니도 거른 채 이들을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날 서천시장에선 정치쇼의 기본 문법이 지켜지지 않았다. 평소 “국민만 보고 가겠다”던 대통령과 여당 실세는 망연자실한 상인들과 제대로 마주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경청하는 ‘따뜻한 지도자’의 역할도 이행하지 않았다.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갈등 봉합만을 보여준 정치쇼는, 그래서 실패한 쇼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떠오르는 인물이 원자바오 전 중국 총리다. 1998년 대홍수가 중국을 강타했을 때 농업담당 부총리였던 그는 양쯔강 둑을 지키기 위해 장화 차림으로 현장을 지휘했다. “재난이 있는 곳에 원자바오가 있다”는 말이 회자됐고, 이런 모습은 2003년 국무원 총리로 승진하는 원동력이 됐다.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때 현장으로 달려간 그가 가족 잃은 어린이를 끌어안고 “걱정하지 마라, 정부가 너를 꼭 돌봐줄 거야”라고 위로했던 장면은 중국 전체를 감동시켰다.
한쪽에선 원자바오를 정치쇼에 능한 ‘연기의 황제’라고 비아냥거렸고, 퇴임 후 부정축재 의혹이 불거져 명성에 금이 갔지만 재난 현장을 누빈 그의 리더십은 중요한 정치적 자산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 지도자들은 이런 쇼에 서툰 것 같다. 지난해 오송 지하차도 참사 당시 유럽 순방 중이던 윤 대통령이 귀국하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것과 관련해 대통령실이 내놓은 설명은 “지금 당장 서울로 뛰어간다고 해도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태원 참사 1주기에도 대통령과 정부 고위 인사들은 유가족들이 주최한 시민추모대회 대신 교회에 따로 모여 추도 예배에 참석했다. 시민추모대회는 정치집회 성격이 짙어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야당 주도로 통과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서도 정쟁화를 우려하며 대통령실이 거부권 행사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재난 때마다 책임론이 불거지고, 관련자 처벌과 사과를 요구받는 것이 정부 여당 입장에선 마뜩잖을 수 있겠다. 그러나 불편한 속내는 감춰두고, 슬픔이 응어리진 사람들 곁에서 그들의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습을 ‘보여주기’ 할 순 없을까. 거부권 행사 없이 특별법을 전격 공포하는 ‘정치쇼’는 어떨까. 그렇게라도 민심을 얻고 표를 얻어야 하는 게 정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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