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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서 줄 서 칼국수 먹은 샘 스미스... '꼬마김밥' 빠진 '캡틴 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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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거리는 산낙지를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덥석 집어 입에 넣은 뒤 오물오물 씹어 먹었다. 서툰 젓가락질로 미끈거리는 산낙지를 번번이 놓쳐 찌푸려졌던 미간은 순식간에 확 펴졌고 그의 입가엔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식감과 맛에 깜짝 놀란 눈치였다.
"음~" 하며 양옆 지인들을 둘러본 뒤 사내는 산낙지를 집은 손가락에 붙어 있던 김가루까지 쪽 빨아먹었다. 비속어까지 섞어가며 "움직이는데 정말 맛있다"고 감탄했던 그의 오른손은 다시 참기름과 김가루에 버무려져 칼로 잘게 다져진 '낙지탕탕이' 접시로 향했다.
'심희수'가 광장시장에 간 사연
'마음(心)을 기쁘게(喜) 하는 빼어난(秀) 목소리'를 지녔다는 뜻에서 한국 팬들로부터 '심희수'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영국 가수 샘 스미스는 2018년 첫 내한 공연 때 들른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산낙지를 맛본 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좋았다"는 후기까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겼다.
광장시장에서 맛본 한국 음식이 못내 그리웠던 걸까. 그로부터 5년이 지나 이달 중순 두 번째 내한 공연 직후 스미스는 다시 광장시장을 찾았다. 그가 이번에 찾은 곳은 '고향칼국수'. 20일 시장에서 만난 가게 직원에 따르면, 스미스는 19일 이곳을 찾아 칼국수를 김치만두와 함께 먹었다. 줄을 서 기다린 뒤 폭이 좁은 일(一)자형 긴 의자에 세계적인 팝스타가 여러 사람과 함께 앉아 밥을 먹은 이곳은 넷플릭스 세계 음식 다큐멘터리 '길 위의 셰프들' 서울 편(2019)에 소개돼 유명해진 노포였다. '길 위의 셰프들'에서 한 외국인 음식 전문 기자는 이곳의 칼국수를 "육수에선 진한 풍미가 나고 집에 온 기분이 든다"고 평했다. 해외 음반직배사 한 관계자는 "지난해 내한 공연한 한 가수도 강남 숙소에서 택시를 잡아 광장시장을 찾아갔다"며 "물어보니 매니저가 '길 위의 셰프들'을 봐 같이 간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공연서 광장시장 상찬까지
광장시장은 스미스뿐 아니라 요즘 해외 스타들이 한국에 왔을 때 즐겨 찾는 'K맛집' 1번지로 인기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아바타'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 출연해 국내에서도 친숙한 미국 배우 조이 살다나는 지난해 광장시장을 찾아 막걸리에 낙지탕탕이를 먹었고, '캡틴 마블'의 주역인 브리 라슨은 2019년 이곳에서 '꼬마김밥' 등을 먹고 가 국내에서 화제를 모았다. 여러 차례 내한한 덴마크 팝 밴드 루카스 그레이엄은 공연에서 광장시장 상찬을 늘어놓기까지 하는 '광장시장 마니아'로 익히 알려져 있다.
10여 년 동안 해외 가수 내한 공연 기획에 참여하고 있는 A씨는 "예전엔 해외 스타들 대부분이 한국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을 때라 라이더(Hospitality Rider·숙식 등 요구사항이 담긴 문서)를 보내면 그 내용에 맞춰 국내 공연 기획사들이 관광 코스를 짜고 그 추천을 받아 움직였지만 이젠 많이 달라졌다"며 "광장시장 등 한국 관광 명소에 대한 정보를 이미 알아 가수 본인이 직접 원하는 곳을 찾아가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남대문도 아닌 왜 광장시장일까
1905년 설립된 국내 최초 상설 시장으로 100년이 넘는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광장시장은 애초 옷감 장터로 유명했다. 1960, 70년대 전성기를 누린 장터는 주변에 동대문종합시장 등 대형시장과 쇼핑몰이 줄줄이 들어서면서 1990년대부터 침체기를 겪었다. 사람들은 남대문시장으로 더 몰렸다.
그랬던 장터는 2000년대 후반 들어 먹거리 특화 전통시장으로 거듭나며 활로를 찾았다. 녹두빈대떡부터 수수부꾸미, 꼬마김밥, 육회, 칼국수, 만두 등 값싸게 먹을 수 있는 서민 음식들이 광장시장을 대표하는 먹거리였다. 이 음식들을 지지고 볶아 잔칫집 분위기를 냈던 광장시장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조명받고 '서울에서 가야 할 가장 중요한 곳'(론리플래닛·2022)으로 주목받으면서 외국인 서울 관광 명소로 급부상했다. 1,0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거느린 해외 스타들이 SNS에 올린 광장시장 체험기는 외국인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으는 미끼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일 광장시장에서 만난 말레이시아인 재스민(30)은 "스미스가 산낙지를 먹는 영상을 보고 궁금해 한국에 온 김에 먹으러 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산낙지 먹방 보고 궁금해서"
20, 21일 이틀에 걸쳐 찾아가 본 광장시장은 외국인으로 북적였다. 21일 오후 1시 30분쯤 샘 스미스가 먹고 간 칼국수 집엔 가게를 둥그렇게 에워싼 대기 줄이 25m 정도 늘어섰고, 금발이거나 히잡을 쓴 외국인이 그 행렬의 3분의 1 이상이었다. 대부분 유튜브와 넷플릭스, SNS를 통해 광장시장 영상이나 사진을 찾아보고 호기심에 들른 손님이었다.
캐나다에서 온 펠리페 셀린(29)은 "유튜브에서 광장시장 영상을 보고 먹으러 왔다"며 "빈대떡과 만두, 꼬마김밥을 먹었고 시장이 매우 깨끗해 놀랐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루시 알리찌(31)는 "구글에 서울을 검색했을 때 많이 나오는 장소가 광장시장이었고 넷플릭스(프로그램)에서도 이 시장이 나오는 것을 보고 찾아왔다"며 "파전과 만두를 먹었는데 물가가 싸 좋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외에서 입소문이 난 덕에 광장시장엔 코로나 팬데믹 이전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부쩍 증가했다.
서울시관광협회에 따르면 올해 1~9월 광장시장을 찾은 외국인 수는 약 9만2,950명으로 2018년 같은 기간(7만749명) 대비 약 30% 늘었다.
"외국인이 없으면 장사가 안 되는 실정"이라고 광장시장 상인들은 입을 모은다. 미슐랭 가이드가 선정한 한 육회 맛집의 한 직원은 "1, 2년 만에 다시 와 손편지와 선물을 주고 가신 일본인 손님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김밥 집의 한 직원은 "매해 유럽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한 분 있다"고 말했다.
광장시장에 외국인이 몰리면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확 쪼그라들었던 인근 지역 상권도 덩달아 기지개를 켜는 분위기다. 한국관광 데이터랩에서 올해 1~9월 광장시장이 있는 서울 종로구 식음료업 가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외국인이 지출(카드)한 금액은 518억 원으로 2018년 같은 기간(204억 원)에 비교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MZ 인기카페까지 들어선 전통시장
약과와 양갱 등 할머니세대의 취향을 선호하는 밀레니얼세대 즉 '할매니얼'의 등장으로 광장시장엔 요즘 2030세대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1970년대 지어진 금속 부품 공장(성수), 100년 한옥(안국)을 개조한 카페를 만들어 젊은 층에 입소문 난 카페 어니언은 지난해 광장시장 남문 초입에 새 가게를 열어 화제를 모았다. 친구와 광장시장을 찾은 대학생 김지민(22)씨는 "인스타그램에서 광장시장이 요즘 워낙 화제라 육회를 먹으러 왔다"며 "매화수를 슬러시로 만들어주는 퓨전 음식을 먹어 신기하기도 하고 모처럼 시장 구경도 해 여러모로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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