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연금개혁 추진 무산될 조짐
여·야 총선 눈치에 연금특위 공전 야합
후세에 빚 떠넘기는 ‘표퓰리즘’ 또 반복
추석과 개천절, 한글날이 징검다리처럼 이어진 최근 2주간 시민들은 모처럼 일상의 긴장을 풀고 넉넉히 여유를 즐길 만한 황금연휴를 보냈다. 하지만 국민적 시선이 잠깐 느슨해진 이 틈을 타 정치권은 다시 한번 국가적 책임을 방기하는 듯한 개탄스러운 행태를 보였다. 여야가 이달 말 끝나게 돼 있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활동기간을 내년 5월까지로 슬쩍 연장키로 한 것이다.
연금특위 활동을 연장한다니, 연금개혁을 더 열심히 잘하기 위한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교묘한 정치적 수사일 뿐, 실질은 정반대가 될 공산이 크다.
국회에 여야 합의로 연금특위가 설치된 건 지난해 7월이다. 활동기간은 올해 4월까지로 잡혔다. 정부가 올해 10월까지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키로 했으므로, 그전까지 국회 논의의 가닥을 잡고, 정기국회에서 개혁법안 등 처리를 마무리한다는 나름의 포석인 셈이었다. 하지만 특위 위상이 당초 윤석열 대통령 공약인 대통령 직속에서 국회 특위로 변질되면서 첫걸음부터 김이 빠진 연금특위 활동은 결국 여야 간 정파 대립과 공전을 되풀이하며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지난 4월 특위 활동기한까지도 국회 특위 성과는 전무했다. 그러자 정부의 개혁안 제출 시점에 맞춰 10월까지로 활동기한을 1차 연장했다. 하지만 막상 10월이 되어 정부 개혁안인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이 국회에 제출될 시점이 닥쳤음에도 여전히 논의 진척이 전무하자, 특위 활동시한을 내년 5월까지로 또 연장키로 한 것이다.
여야는 “민간 전문가(재정계산위원회)들이 합의된 안을 준비한다면 국민 500명을 대상으로 공론화 조사를 벌이고, 공론화 위원회를 거쳐 입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요컨대 민간 재정계산위원회가 최종안을 제시하고 정부가 안을 수렴해 국회에 개혁안을 제출하면, 그때 가서 또다시 공론화 조사 및 공론화 위원회를 가동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기국회가 끝나고 공론화 조사니 뭐니 하다 보면 또다시 5개월 이상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21대 국회 임기도 끝나게 된다. 결국 일 안 하겠다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에도 정부 연금개혁안이 총선 전까지 논의가 되지 않아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었다.
국회 연금특위의 지지부진은 '이재명 문제' 등 여야 간 극한 대립이 이어진 정세의 영향도 컸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국민의힘은 연금재정 안정화에 개혁의 초점을 두는 반면, 민주당은 소득보장 강화를 강조하며 입장차를 좁히지 않아서다. 요컨대 한쪽은 연금기금 고갈 막자며 '더 걷고 덜 받자'는데 맞은편에서는 연금을 더 올려주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니, 여야가 쌍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길이 없지는 않았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입장 대립만 할 게 아니라, 재정안정-소득보장-공무원연금 등과의 형평성 제고 등 단계적 개혁을 점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또 쓴 약에 단맛을 입히듯, 보험료를 올리고 수급연령을 늦추는 대신 공무원 연금 등 3대 직역연금과의 형평성 제고방안을 함께 추진해 국민적 공감을 형성해 나가자는 제안도 나왔다. 하지만 여야는 지금까지 모색과 노력 대신 공염불만 되풀이해왔다. 최근 16년간 역대 정권은 연금개혁에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아예 손을 놨다. 자칫하면 윤석열 정부도 같은 길을 가게 될 공산이 점점 커지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그 나라 정치권은 총파업과 격렬한 시위, 정치적 몰락 위험까지 감내하면서 끝내 연금개혁에 적잖은 진전을 이뤄냈다. 반면, 우리 정치권은 입만 열면 국민을 떠들면서도, 청년과 미래세대에게 큰 빚을 넘기는 연금문제 해결조차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 어찌 한국 정치가 4류 소리를 안 듣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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