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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최고 헬스케어 스타트업' 키운 정세주 눔 창업자 "또 다른 혁신 위해 CEO 물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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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20대 초반,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은 한 청년의 삶을 뿌리째 바꿨다. 누구보다 건강할 줄 알았던 의사 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고 세상을 등진 뒤 그는 새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서툰 영어, 가진 돈은 수백만 원이 전부였지만 도전하고 싶었다. 2005년 대학을 중퇴한 25세 청년은 그렇게 혈혈단신 뉴욕 땅을 밟았다. 미국에서 그는 노바디(nobody·보잘것없는 사람)였지만 그렇기에 잃을 것도 없었다. 자신감이 없을 이유가 없었다.
그로부터 18년째. 이제 그가 섬바디(somebody·어엿한 사람)란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가 2008년 만든 헬스케어 플랫폼은 미국에서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미국 내 인지도 58%)이 더 많은 서비스로 자랐다. 전 세계 약 5,000만 명이 그 플랫폼을 쓴다. 연 매출은 5억 달러(약 6,650억 원)에 이른다.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을 일컫는 유니콘엔 진작 등극(2021년 기준 37억 달러)했고, 기업공개(IPO)를 했을 때 기업가치가 한국계 창업자가 세운 스타트업 중 최대 규모가 될 것이 확실시된다. 소비자들이 자신의 습관을 바꿔 질병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건강 관리 서비스 스타트업 '눔'(Noom)의 정세주 의장 얘기다.
정 의장은 7월 약 17년 동안 맡아 온 눔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제프 쿡 신임 CEO에게 넘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의 퇴임 소식은 미국 대표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1면에 실렸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정 의장은 "또 다른 혁신을 이어가기 위해 물러나기로 했다"고 했다. 그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 나선 건 CEO 퇴임 후 처음이다.
정 의장은 이미 지난해부터 새 CEO를 찾았다. "회사가 커지면서 중압감이 달라지더라"라는 그는 "혁신가의 딜레마(Innovator's Dilemma) 우려가 커진 것"이라고 했다. 혁신가의 딜레마는 시장 선도 기업도 혁신을 이어가지 못하면 추월당할 수밖에 없다는 개념이다. 정 의장은 "오래된 회사들을 밀어내며 이 자리에 왔는데 지금은 눔을 좇는 스타트업들이 많아졌다"며 "눔도 밀려나지 않기 위해선 또 다른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이사회 의장으로서 인수합병(M&A) 등에 집중하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기대를 모으는 눔의 IPO에 대해선 "우리 직원들도 많이 물어보는데 서두르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기업공개는 자금을 모으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에 당연히 계획 중"이라면서도 "단 한 번의 기회라 시장이 가장 호의적일 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 상반기까지 얼어붙었던 IPO 시장이 최근 영국 반도체 업체 Arm의 상장 등으로 풀릴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봄이 오려면 시간이 더 걸리리란 게 그의 생각이다. 다만 오히려 시장이 호의적이지 않을 때가 기초 체력을 튼튼하게 다질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는 그는 "시장은 언젠가 열릴 것이고 그때가 되면 어떤 회사가 보릿고개를 잘 버텨왔는지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기술 기반 플랫폼으로서는 드물게 실리콘밸리가 아닌 뉴욕에서 회사를 일군 정 의장은 "뉴욕은 다음 트렌드를 보여주는 시범 무대"라며 "뉴욕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는 업체는 세계 시장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민자에게 미국은 불편한 게 많은 나라"라며 "불편한 게 많다는 건 그만큼 해결할 문제가 많은 기회의 땅이라는 뜻"이라고 과감한 도전을 권했다. "창업가는 영어를 파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를 파는 것"이라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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