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키워서 대학 보낸다는 것도 정말 옛말이지. 지금은 암송아지를 공짜로 준다고 해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구먼. 우유 팔아봤자 남는 건 눈물뿐인데 뭐하러 가져가겄어.”
7일 찾은 충북 청주시 옥산면 환희리(歡喜里). ‘큰 기쁨’이란 뜻을 가진 이곳에서 37년째 소를 키워온 ‘민주목장’ 주인 정헌모(62)씨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빚이 10억 원인데 빵꾸(펑크)가 자꾸만 커져. 8월 하순에만 외상으로 116만 원을 당겨 썼으니···.” 인출 목록이 빼곡한 마이너스통장 3개의 잔고를 바라보는 정씨의 눈빛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역력했다. 그 너머로 젖소 160마리와 육우(고깃소) 60마리가 한가롭게 사료를 먹고 있었다.
오후 5시가 되자 젖소들이 젖을 짜는 착유소로 줄지어 이동했다. 착유는 이때와 오전 6시, 하루에 두 번 이뤄진다. 8개 구역으로 나눈 착유소에 젖소가 한 마리씩 자리를 잡자, 정씨가 젖꼭지를 소독한 뒤 조심스레 유축기와 연결된 유두컵을 씌웠다. '촥촥' 소리와 함께 하얀 물줄기처럼 젖이 쏟아졌다. 착유를 마친 젖소들은 착유소에서 나오자마자 물통에 얼굴을 박고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이들은 매일 두당 30㎏의 원유를 생산한다. 민주목장에서 납품하는 원유는 하루 평균 2.5톤 안팎. 살균용 냉각탱크에 모아둔 원유는 이곳과 계약한 유업체를 거쳐 흰 우유나 분유‧치즈 등으로 만들어진다.
매일 새벽 5시부터 일어나 매달 약 75톤의 원유를 공급하지만 정작 정씨가 손에 쥐는 돈은 거의 없다. “우린 유업체와 계약한 물량만큼 돈을 미리 받아. 거기서 사료 값과 예방접종 비용, 인건비 등을 충당하는데 사료 가격이 좀 많이 올랐어야지. 이러다가 시설투자 비용은 고사하고 이자 내기도 힘들겄어.”
농장 시설 개선 명목 등으로 그가 빌려 쓴 돈은 10억 원 안팎이다. 바람이 잘 통하도록 천장을 높이 세우고 차광제를 발랐다. 시원한 바람이 불도록 천장에 물을 흩뿌리는 기계도 설치했다. 선풍기는 24시간 내내 틀고, 물 섭취량을 늘리기 위한 소금은 비싼 천일염을 가져다 썼다. 정씨는 “소가 잘 먹고, 깨끗한 곳에서 잘 쉬어야 질 좋은 우유가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노력이 목장 운영마저 위협하고 있으니 참 씁쓸하다”고 말했다. 치솟은 사료 가격 부담을 줄이려고 인근의 논밭을 사서 조사료(풀사료) 일부를 직접 재배하고 있지만, 그의 통장 잔고는 여전히 마이너스에 머물러 있다.
급등한 생산비를 견디지 못해 폐업한 농가도 한둘이 아니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낙농가구 수는 2022년 4,600가구로 전년보다 133가구가 줄었다. 젖소 한 마리당 순수익(152만9,000원)이 같은 기간 37.2% 감소한 탓이다. 전체 낙농가의 40%인 소규모 농가(50마리 미만 사육)의 순수익은 연간 약 1,000원에 불과하다. 전년보다 109만3,000원(99.9%)이나 급감했다. “일이 고돼도 남는 게 있으면 버틸 텐데 그게 없잖어. 문 닫는 거 말고 무슨 수가 있나.”
대규모 목장을 운영하는 정씨는 “나도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쏟아냈다. 우유 소비가 줄면서 유업체들이 각 농가에 할당한 원유 생산량(쿼터)을 줄이고 있고, 올해부턴 가공유시장에서 수입산 우유와 경쟁하기 위해 ‘용도별 가격 차등제’마저 도입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씨는 계약 물량의 88.6%만 음용유 가격(L당 1,084원)을 받을 수 있다. 4.5%는 가공유 가격(L당 887원), 나머지는 L당 100원에 팔아야 한다. “아들(32)이 지난해 12월에 더 이상 못 하겠다고 했을 때 마음이 정말 철렁 내려앉았구먼. 자그마할 때부터 소 키우는 걸 봤던 애라 야가 못 하고 하면 이젠 정말 끝이여.”
흰색 트럭을 끌고 농장을 나와 청주 시내로 향하던 그가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카페를 가리키며 입을 뗐다. “저갸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이 5,000원, 6,000원 하지? 내가 짠 우유가 진짜 맛있고 몸에도 좋은디 값은 반의 반도 못 받는겨. 이러다 정말 우리 낙농가 다 죽게 생겼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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