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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엔 콜드플레이·스위프트 노래할 곳 없다…팝스타 부르기 민망해진 'K팝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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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중 차량 진입 금지'.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잠실올림픽주경기장 앞엔 이런 문구가 적힌 안내판이 여러 개 세워져 있었다. 88서울올림픽 개막식과 20세기를 대표하는 팝스타였던 고(故) 마이클 잭슨,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 내한 공연 등 굵직한 스포츠·문화 행사로 추억이 깃든 주경기장이 문을 닫았다. 1984년 완공 후 40여 년이 지나 주요 시설 노후화로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진입 금지 안내판엔 4일부터 공사가 시작됐다고 표기돼 있었다. 주경기장은 빨라야 3년 뒤인 2026년 12월에나 다시 문을 연다. 주경기장뿐 아니라 그 옆에 바로 붙어 있는 보조경기장도 이전신축 공사로 이달부터 쓸 수 없다. 주경기장은 5만 명을, 보조경기장은 2만여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서울에 몇 안 되는 대형 야외 공연장이다.
K팝 성지? 세계 거물급 가수 공연 '사각지대'
대규모 공연의 성지였던 주경기장과 보조경기장이 잇따라 문을 닫자 공연계에 비상이 걸렸다. 서울에서 마땅한 대형 공연장을 찾지 못해 세계적인 팝스타의 내한 공연 계획이 불발됐고, 아예 경기도로 공연장을 찾아 떠나는 '탈(脫)서울'도 시작됐다.
주경기장 등 장기 휴관의 여파는 '체급'이 작은 공연 시설로 공연이 몰리는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2만여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고척돔에 대관 신청이 몰리고, 1만여 명을 들일 수 있는 체조경기장(현 KSPO돔)에 길게는 2주에 걸친 '장기 공연'이 이뤄지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서울에 3만5,000명 이상을 들일 수 있는 공연장은 주경기장과 상암월드컵경기장 두 곳뿐이다. FC서울의 홈구장인 상암경기장은 잔디 보호를 위해 2017년 그룹 빅뱅 멤버 지드래곤 후 K팝뿐 아니라 해외 가수의 단독 공연은 단 한 차례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서울의 부족한 대형 공연 시설 인프라 문제가 주경기장 공사로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K팝 성지'로 불리는 문화강국의 그늘이다.
'탈서울' 할 수밖에
미국 빌보드에서 8주 연속 1위를 차지한 히트곡 '록스타'(2018) 등으로 국내 20, 30대에 유명한 미국 팝스타 포스트 말론은 23일 첫 내한 공연을 서울이 아닌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연다. 공연 예매 오픈과 동시에 3만 석을 매진시킨 해외 유명 가수가 서울이 아닌 곳에서 공연을 한 것은 이례적. 말론의 내한 공연을 주최한 라이브네이션코리아 관계자는 "잠실 주경기장과 보조경기장 공사 등으로 서울에서 공연장을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말론의 공연이 열리는 주에 2만~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척돔 사용은 아예 불가능하다. 이곳은 21~27일 프로야구 경기와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국가대표 선수들 훈련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다.
주경기장 장기 휴관 후 한국은 해외 거물급 가수 공연의 사각지대가 된 모양새다. 공연을 여는 미국 지역마다 식당과 숙소의 수요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자 '스위프트노믹스(Switfnomics)'란 신조어까지 등장한 테일러 스위프트와 영국 유명 록밴드 콜드플레이가 올해 시작한 월드 투어 일정에도 한국은 모두 빠졌다.
이웃 나라 일본엔 콜드플레이(11월·2회)와 스위프트(내년 2월·4회)가 모두 들른다. 2017년 내한해 잠실주경기장을 구름 관중으로 꽉 채운 콜드플레이는 "세월호 희생자를 위해 기도하자"며 묵념했고, 그룹 방탄소년단과 함께 만든 노래로 2021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K팝 아이돌그룹과 함께 밟았다. 한국과 인연이 깊은 콜드플레이를 비롯해 스위프트는 5만여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스타디움급으로 월드투어 무대를 꾸린다. 주경기장 휴관으로 이 규모를 소화할 수 있는 공연장이 서울에서 사실상 사라져 해외 거물급 가수들 내한 공연 추진이 어렵다는 게 공연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말이다. 해외 가수 내한 공연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콜드플레이의 경우 한국 공연 논의가 이뤄졌으나 공연장 문제로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민간이 K팝과 영화, 드라마를 통해 'K소프트파워'를 해외로 널리 전파하고 있지만 정작 그 안엔 공연장 시설 기반이 취약해 세계 주류 공연 시장에서 한국이 '섬'이 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공연 기획사 관계자는 "국내엔 스타디움급 실내 공연장이 한 곳도 없어 쌀쌀해지면 대형 공연 개최가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반대로 일본은 도쿄돔과 후쿠오카돔 등이 모두 지붕 개폐형이라 겨울에도 대규모 공연이 날씨 제약 없이 열린다. 한국에선 쌀쌀한 기온으로 공연 비수기로 여겨지는 11~2월에 일본에서 콜드플레이와 스위프트의 공연이 줄줄이 열리는 배경이다.
'K팝 관광' 특수 커지는데
주경기장과 보조경기장 장기 휴관 후 체조경기장은 장기 대관의 각축장이 됐다. 김동률은 10월 7~9일과 13~15일에, 임영웅은 같은 달 27~29일과 11월 3~5일 등 2주에 걸쳐 이 경기장에서 공연한다. 체조경기장에서 공연이 2주에 걸쳐 진행되는 것은 그간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3년에 걸친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공연 수요가 부쩍 커진 상황에서 야구와 축구 등 스포츠 행사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서울에서 사용할 수 있는 1만여 석의 공연장이 이곳뿐이라 대관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고척돔도 12월 5일부터 2024년 3월 7일까지 공사 예정이다. 서울 창동에 지어지고 있는 공연장(2만 석 규모)은 4년 뒤에나 문을 연다.
이렇게 국내 공연장 인프라가 취약하다 보니 K팝 공연 시장 확대를 위해서도 3만 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실내 공연장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6월 17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10주년 행사엔 12만 명의 외국인이 몰렸고, 주변 호텔 등은 특수를 누렸다. 한국관광공사의 한류관광시장조사연구 보고서(2019)에 따르면, K팝에 이끌려 한국을 찾은 외국인의 1인당 평균 지출액은 1,007달러(약 134만 원)다. K팝이 관광으로 이어져 내수 시장을 끌어올리는 데 발판이 되는 만큼, 국내로 K팝 공연을 보러 한국을 찾는 해외 관객을 더 끌어모으기 위해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대규모 실내 공연장 인프라 확대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러 K팝 공연을 기획한 연출가는 "1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보다 인구도 두 배 많고 공연 소비층도 두꺼운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 공연 시장 성장과 시설 확대는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아니다"며 "K팝 공연을 보러 국내로 들어오는 해외 팬들이 확실히 많아졌고, 계절과 스포츠 행사 제약 없이 공연을 열 수 있는 대형 실내 공연장에 대한 필요를 점점 더 크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한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고척돔은 공연할 때 잔디 보호 설비를 위해 억대의 비용이 들고 3층 객석의 경우 경사가 가팔라 노약자 관객 관리에 대한 부담이 커 대관을 꺼리게 된다"며 "필리핀에 5만 명을 들일 수 있는 실내 공연장(필리핀 아레나)을 가보고 너무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국내에도 다양한 세대의 관객이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공연을 볼 수 있는 대형 실내 공연장이 확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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