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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 협곡의 소금밭... 고된 노동과 마방의 질퍽한 숨결이 살아있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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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년이나 지속된 빙하기가 끝났다. 불과 1만 년 전이다. 지구가 따뜻해지자 빙하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은 흔적이 있다. 샹그릴라를 벗어나 더친(德欽)으로 들어서니 백마설산(白馬雪山)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해발 5,640m 주봉은 여전히 빙하기를 살고 있다. 구름이 줄줄이 봉우리를 넘나들고 일년 내내 눈 쌓인 풍광이 마치 말이 질주한다고 생각했다.
전망대 앞에 잠시 멈춘다. ‘쌍U형곡(雙U型谷)’이란 설명이 있다. 빙하가 움직이며 침식작용으로 협곡이 두 곳 생겼다. 해발고도가 높아 산봉우리는 여름에도 설산이다. 11만 년 전 생성된 장관이라 생각하니 다시 보게 된다. 인적 드문 산이라 보기 드문 맹수나 조류가 많다고 한다. 희귀종인 검은들창코원숭이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진기한 야생동물인 꿩, 사향노루, 표범도 우글거린다 한다. 상상만으로 멋진데 다가가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산을 넘어가는 고개를 야커우(垭口)라 한다. 4,292m 고도 표시가 아찔하다. 저지대에 익숙해 그런지 숫자만 봐도 고산병이 오는 듯하다. 심장이 조이고 호흡이 가쁘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데도 다리가 무겁다. 심호흡을 크게 하며 산소를 삼킨다. 오색 타르초가 바람에 빠르게 휘날리고 있다. 만국기가 펄럭이는 모습과 닮았다. 길 건너편에 음료수 파는 소매부(小賣部)가 있다. 창문에 걸터앉은 소녀는 무심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사면 사고 말면 말라는 자세다.
먹구름 사이로 살짝살짝 드러나는 설산은 차창으로 봐도 감탄이다. 30분 동안 꼬부랑길을 달려 매리설산(梅里雪山) 전망대에 도착한다. 중국 10대 명산이며 티베트의 성산 중 하나다. 현지 발음은 ‘메이리’다. 우리말도 중국말도 구슬 구르듯 예쁘게 들린다. 티베트어로는 '맨리'라 발음하는데 약산(藥山)이란 뜻이다. 해발 약 3,500m 지점의 햇살이 직사광선 같다. 티베트 불탑 초르텐 13개가 한 줄로 서서 온몸으로 빛을 받아들이고 있다. 영빈13탑(迎宾十三塔)이다.
매리설산은 약 150km가 넘는 산맥이다. 6,000m 전후의 봉우리가 13개라 태자13봉이라 부른다. 초르텐은 ‘태자를 영접’하는 의미다. 화창한 날씨에도 봉우리가 모두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늘은 시릴 정도로 파란데 구름이 방해꾼이다. 주봉은 ‘설산의 신’이라 불리는 카와카르포(卡瓦格博)로 6,740m다. 카메라로 가까이 다가가니 살며시 용안을 보여준다. 주봉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는데 사진을 찾아보니 맞는 듯하다. 구름이 눈인지, 눈이 구름인지 모르게 한 몸이다. 2003년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삼강병류(三江並流) 일대를 선정했다. 단연 최고의 경관이 아닐 수 없다.
나뭇가지를 꺾어 천을 둘둘 감은 룽따가 보인다. 깃대에 묶은 모양도 있다. 모두 하늘을 향하고 있다. ‘룽(ལུང་)’은 기(氣)를 가득 담은 바람을 뜻하고 ‘따(རྟ་)’는 말(馬)이다. 붉고 파랗고 노랗고 푸르고 하얀 깃발이다. 바람처럼 달리는 말이 떠오른다. 느리게 가는 마방의 행렬과 비교해도 어울린다. 기나긴 일정에서 룽따를 만나면 잠시 숨을 돌리고 무사와 안전을 빌기도 했다. 회색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룽따가 선명하다. 파란 하늘을 감춘 구름을 뚫고 솟아날 기세다. 화사하게 번지는 보색의 대비에 슬그머니 마음이 감동하는 까닭은 뭘까.
칭짱고원(青藏高原)의 대들보인 탕구라산(唐古拉山)에서 3개의 강이 발원한다. 모두 수천 km를 흘러 남쪽 바다로 흘러간다. 오른쪽인 동쪽부터 금사강(金沙江), 난창강(澜沧江), 노강(怒江)이다. 나란히 흐르는 구간이 있어 병류라 부른다. 214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달리는데 강이 자꾸 따라온다. 난창강이다. 1시간 30분가량 흐르니 강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홍성교(紅星橋)라니 참 멋도 없다. 차에서 내려 황토를 품고 폭풍처럼 떠내려가는 물줄기를 바라본다. 지금은 차가 다니지 않는 오래된 다리와 마방이 지났을 옛길도 보인다.
차와 말의 교환가치를 성사시킨 차마고도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티베트 고원에는 야크의 젖으로 만든 버터, 쑤여우(酥油)가 많이 생산된다. 오래 보관이 가능한 푸얼차(普洱茶)가 공급되기 시작했다. 윈난이 보유한 훌륭한 비타민이었다. 마방은 운반하기 좋게 푸얼차를 둥글게 만들었다. 병차(餅茶)라 한다.
리장에서 본 푸얼차 포장지에 적힌 무게는 357g이다. 몇 달씩 걸리는 차 운반을 위해 지혜를 짜냈다. 말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30㎏으로 균형을 맞췄다. 60kg을 견딜 정도는 됐다. 두 뭉치씩 양쪽으로 실었다. 한 뭉치는 15kg이다. 7개를 하나의 묶음으로 하니 42개가 한 뭉치다. 한 묶음이 2.5kg이고 7로 나누면 하나의 무게가 나온다. 0.35714286kg이다. 뒷자리는 버렸다.
이제 푸얼차 168개의 무게를 견디며 묵묵히 걷던 말은 사라졌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을 건너고 목숨 걸고 협곡도 넘어야 했던 길이다. 어떤 속도로 다녔는지 상상이 된다. 한 차례의 행군으로 최상의 이익을 도모한 마방의 무게가 자꾸 입에 맴돈다.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푸얼차의 표준은 차마고도가 만든 피이고 땀이다. 쑤여우와 합체한 차는 소금까지 섞어 티베트의 음료가 됐다. 하루에도 10잔 이상 마시는 생명수다. 이제 국도를 시속 80km 정도로 달린다. 대형 차량이 마주 오면 약간 두렵기조차 하다.
1시간을 더 달려 드디어 티베트의 보물에 당도한다. 쑤여우차에는 소금도 한몫 단단히 한다. ‘천년 염전’으로 유명한 옌징(盐井) 검문소 앞에 섰다. 여기부터 행정구역은 시짱(西藏), 티베트다. 2008년 이후 외국인의 진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특별한 허가증을 받아야 통과가 가능하다. 어렵게 들어간다 생각하니 흥분된다. ‘드디어 차마고도’라는 실감이 배가된다. 검문을 기다리는 동안 어둠이 몰려들었다.
티베트로 들어섰는데 나시민속촌(納西民俗村) 입간판이 보인다. 염전과 관련된 역사가 숨어있다. 11세기에 티베트 민족과 나시족 사이에 염전 쟁탈전이 있었다. 티베트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시족 통치자의 아들인 여우라를 생포한다. 여우라는 충성심을 보여 신하가 됐으며 염전을 관리하게 됐다. 이후 운영권을 하사 받았다. 나시족 후손이 지금껏 염전을 꾸리며 살고 있다. 난창강 줄기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하룻밤을 보낸다.
천년 역사를 지닌 소금 생산지 옌징의 아침이 밝았다. 차마고도 다큐멘터리가 감명 깊었던 까닭일까. 고산 증세처럼 심장 박동이 커진다. 서둘러 염전으로 향한다. 차와 소금을 싣고 가는 말과 말을 이끄는 사람을 조각해 놓았다. 이동이 곧 혈투였다. 끌고, 밀고 가는 차마고도는 절체절명이었다. 쑤여우차에 활기를 불어넣는 소금, 그 생명의 현장이 바로 여기다.
입구에서 염전까지는 걸어서 30분이 걸린다. 비포장 산길인데 평탄하다. 앞뒤로 산이 가로막고 있어 고요한 길이다. 앞산은 누렇고 붉은 토양이 영역을 다투고 초록의 풀과 나무가 듬성듬성 보인다. 흔치 않은 색깔의 조화다. 황토를 담은 강이 유유히 흐른다. 느긋하게 은은한 자연을 감상하며 서서히 내려간다. 멀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강을 건너는 다리 두 개도 시야에 들어온다.
가까이 갈수록 염전의 윤곽이 자세하게 등장한다. 산이나 강의 색감과 비슷해 염전이 자연인지 인공인지 헷갈린다. 지렛대로 쌓고 다듬은 염전이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황토가 밭을 휩쓸고 강으로 쏟아진 느낌이다. 천천히 내려가 다리를 건넌다. 생각보다 굉장히 빠른 물줄기다. 다리를 건너니 자다촌(加達村)이다. 주민들이 쪼르르 나와 앉아 외부 방문객을 구경한다. 다정한 미소로 서로 인사를 나눈다.
옌징 염전은 난창강의 거친 물살 아래 깊숙이 숨죽인 수원을 끌어올려 만들었다. 며칠 전 비가 많이 내려 일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소금이 맺힌 채 남아있고 우물도 여러 군데 보인다. 해발 2,300m 위치인데 온대성 기후로 연평균 강수량이 겨우 450㎜다. 일조량이 풍부해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소금 생산지다. 약 1,300년의 역사를 지녔다. 네모 반듯한 밭이 햇살을 머금어 유리처럼 투명하다. 멀리 아낙네 둘이 소금밭을 다듬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다큐멘터리에서 본 장면들이 떠오른다. 마침 무거운 나무를 들고 도구를 담은 광주리를 멘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염전 노동이 무척이나 힘들겠다는 감정이입이 무조건반사처럼 생겨난다.
강 건너도 층층이 염전이 쌓여 있다. 꼭대기까지 물을 길어야 한다. 나무로 기둥을 쌓고 중턱의 염전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물통을 들고 오르는 일이 얼마나 힘겨울지 알기 힘들다. 햇살의 도움으로 만드는 소금이다. 신기한 조화가 있다. 매년 3월부터 소금이 탄생한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설산의 녹은 물이 풍부한 수량을 제공하면서부터다. 토양의 영향으로 홍염과 백염이 함께 생산된다.
마을이 있는 강 서쪽은 지세가 완만해 염전이 넓다. 쉽게 많은 양을 거두는데 주로 홍염이다. 동쪽은 가파르고 좁다. 결정이 잘 맺히지 않으며 백염이 많다. 길바닥에서 소금을 담아 팔고 있다. 어느 소금이 비쌀까? 노동 강도가 약한 홍염이 더 싸다. 한 봉지에 10위안이다. 백염은 15위안. 백염은 식용인데 홍염은 동물에게 먹인다.
객잔이 몇 군데 있다. 가옥을 개조해 숙소로 꾸몄는데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하룻밤 묵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다음에 또 갈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본다. 자자몐(加加面)을 판다고 적혀 있다. ‘가’를 중복으로 붙인 국수다. 옌징이 아니면 먹을 수 없다니 특별한 맛이라도 있을까 싶었다. 뜻밖에도 여느 국수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면을 익힌 후 파와 고기를 올렸을 뿐이다. 함께 상에 올라온 조약돌에 비밀이 있다. 시장이 반찬이라 후루룩 한 입에 먹는다. 다 먹으면 국수를 더 담아준다. 먹고 또 먹고 하다 보면 몇 그릇 먹었는지 잊어버린다. 한 그릇 먹고 돌 하나를 끄집어 내놓는다. 얼마나 많이 먹길래 접시에 담긴 조약돌이 산더미다. 정한 개수만큼 먹으면 자기 딸을 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설 같은 이야기인데 실제로 상금을 걸기도 한다. 지금까지 최고기록이 147그릇이고 기록을 깨면 500위안(9만 원)을 준다는 식당도 있다. 설마 한 사람이 먹었는지 의심이 드는데 확인할 방법이 없다.
마방이 옌징을 지나며 자주 먹던 국수다. 차마고도의 피와 땀이 만들어낸 작명이 아니었을까? 허기를 한 그릇으로 채울 수는 없다. 돌을 씹어먹을 정도의 식성이라면 정말 딸을 주고 싶지 않을까? 옌징을 떠나며 다시 한번 염전 쪽을 바라본다. 생명과도 같은 노동이 있고 길을 오가던 마방의 질퍽한 숨결이 살아있는 땅이다. 갈수록 감동이 살아나고 짜릿한 차마고도 노정을 다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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