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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을 떠나도 지옥… 로힝야 난민촌은 누구나 언제든 죽을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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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총성이 들린다. 총알은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는다. 로힝야인이 머무는 난민촌은 누구나, 언제든 죽을 수 있는 곳이 됐다.”
방글라데시 남동부에 위치한 세계 최대 난민촌, 콕스바자르 쿠투팔롱 캠프에 머물고 있는 모하메드 칸(26)은 지난 18일 한국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화는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앱)인 ‘왓츠앱’을 통해 이뤄졌다.
2017년 8월 25일 미얀마 군부가 이슬람계 소수민족 로힝야족을 집단 학살한 지 오는 25일로 꼭 6년이 된다. 그간 바뀐 건 없다. 오히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또 다른 재앙이 잇따르며 ‘로힝야 인종 청소’ 문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칸은 “난민 대부분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범죄 표적이 되고 있다.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했다.
6년 전 그날 밤 미얀마 라카인주(州) 북부에 위치한 고향 마을에 총성이 천둥소리처럼 울렸다. 총알은 메뚜기 떼가 하늘을 뒤덮듯 쉴 새 없이 빗발쳤고, 불타는 마을 곳곳에선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던 그는 가족과 함께 인근 산으로 도망친 뒤 사흘 밤낮을 걸어 겨우 국경을 넘었다.
가까스로 죽음의 고비는 넘겼지만 난민촌은 또 다른 지옥이다. 서울 여의도의 3배가 채 안 되는 면적의 땅에 난민 100만 명이 다닥다닥 붙어 산다. 당장 배를 채우는 것도 쉽지 않다. 국제 인도주의 단체들이 제공하는 쌀과 기름,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식량 바우처가 유일한 생명줄이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칸은 “2017년, 2018년까지는 단체들의 지원이 아주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로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고 말했다. 실제 WFP는 올해 초 바우처 지원 규모를 월 12달러에서 10달러로, 지난 6월에는 8달러로 잇따라 줄였다. 코로나19 이후 기부금이 줄었다는 이유에서다. 하루에 쓸 수 있는 돈은 고작 27센트(약 361원). 옷과 기본 먹거리를 구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물가마저 고공행진을 하며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2년 반 사이 식량 가격은 두 배로 뛰었는데 바우처는 되레 삭감되면서 간신히 생명을 이어갈 정도로만 음식을 섭취하고 있다”는 게 칸의 설명이다. 하지만 직접 돈을 벌 길은 없다. 로힝야인들은 난민촌을 떠나지 못하도록 엄격한 감시를 받는다. 방글라데시 당국은 2019년부터 안전상 이유로 캠프 안팎에 철조망을 쳤다.
아이들은 영양실조에 시달린다. 제대로 먹질 못하니 늘 크고 작은 질병을 달고 산다. 그러나 아파도 특별한 해결책이 없다. 칸은 “의료시설이 있긴 해도 파라세타몰(해열 진통제) 같은 기본적 약품만 제공한다”고 했다. 이날 오전 그의 생후 22개월 딸이 고열에 시달렸지만 병원에 갈 수도, 의료 처치를 받을 수도 없어 가슴을 졸이기만 했다.
치안 불안도 심각하다. 무장 범죄조직은 갈수록 기승을 부린다. 칸은 “갱단의 마약 거래는 물론, 여성과 아이를 노린 납치, 성폭력, 인신매매도 더 빈번해졌다”며 “낮에는 범죄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밤에는 일상이 된 총격전에 집 밖을 나서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은 멀리서 총소리만 들어도 잠자지 못할 만큼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덧붙였다.
일부 난민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배를 타고 탈출에 나선다. 목적지는 이슬람계 국가인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다. 그러나 ‘해피엔딩’은 아니다. 운이 좋으면 살아서 육지를 밟지만, 바다 위를 떠돌다 배가 뒤집혀 죽거나 식량과 물이 부족해 굶주려 죽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유엔은 지난해 로힝야족 2,000명이 난민촌을 떠나 바다로 향했고, 이 중 200여 명이 죽거나 실종된 것으로 추정했다.
칸의 여동생과 5세 조카도 지난해 11월 200여 명과 함께 난민 캠프를 떠나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나무배에 올랐다. 출발 일주일 후 배 엔진이 고장 난 탓에 인도 벵골만 인근에서 한 달 가까이 표류했다. 칸의 가족은 12월 중순 가까스로 구출돼 인도네시아 최북단 아체 지방에 도착했으나, 당시 26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에 나서는 이유는 뭘까. 칸은 이렇게 설명한다. “난민 캠프에서 6년을 살았지만 미래는 불확실하다. 앞으로 10년, 20년 후를 상상하긴 어렵다. 로힝야인들은 다른 땅에서 살아남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작은 꿈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건다.”
매일매일이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 해도, 칸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현재 캠프에선 아이들을 가르친다. 교육만이 로힝야의 미래를 바꾸고 지역 사회 빈곤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6년 전 교편을 잡을 당시 가르쳤던 미얀마 정규 교육 과정을 그대로 지도한다. 대나무로 얼기설기 지은 학교지만, 수업을 듣는 아이들 눈은 항상 반짝인다고 그는 말했다.
2020년부터는 로힝야족 민담 보존 작업에도 나섰다. 미얀마의 옛이야기를 마을 노인들에게 구전으로 전해들은 뒤, 이를 책으로 만든다. 차량이나 자전거 등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어 8㎞ 넘게 걸어가는 경우도 있으나 힘들지 않다. 칸은 “로힝야족엔 우리만의 문화와 언어, 이야기가 있지만, 불행하게도 학살로 모두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며 “너무 늦기 전에 이를 보존해 후손에게 전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 속에서 바라는 건 딱 하나다. 하루빨리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는 것. 칸은 절박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로힝야의 비극을 끝낼 수 있는 건 한국과 국제사회의 관심뿐입니다.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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