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사단장 과실치사 빼버린 국방부
이러고도 윗선 개입 의혹 부정할 수야
책임축소 외려 군 기강·국가 신뢰 훼손
안보국방을 책임지는 국방부가 군과 국가에 심각한 내상을 입히고 있다. 국방부는 21일 끝내 채수근 상병 사망 책임소재를 대폭 축소했다. 해병대 제1사단장 등 상부 지휘관을 과실치사 혐의에서 빼고 대대장 2명만 경찰에 이첩했다. 그 의미는 혐의자가 8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는 게 아니다. 국방부는 경찰에 넘겨진 사건을 회수, 재검토하는 나쁜 선례를 만들어 군 사망사건을 독립적으로 수사하라는 군사법원법 개정 취지를 농락했다.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하겠다’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약속을 깨뜨렸다. 사병의 목숨은 가볍고 지휘관 책임은 얄팍함을 공식화한 꼴이기도 하다. 이로써 군과 국가에 대한 불신은 깊어질 것이다. 두고두고 수사 외압 사례로 회자될 터다. 박 대령이 항명으로 입건됐을 때 “천인공노할 일이며,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던 채 상병 유족들이 한을 키울까 걱정된다. 책임자들이 이 무거운 잘못을 절감하는지 알 수 없다.
윗선 개입 의혹은 짙어졌는데 어떻게 해소하려는지도 의아하다. 장관 결재 후 돌연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직접 과실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라’거나 ‘혐의 내용을 삭제하라’고 지시하면서 ‘사단장 구하기’라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제 신빙성이 커졌다. ‘장관보다 더 윗선’으로 지목됐던 대통령실은 ‘가짜뉴스’란 말로 의혹을 일축하기 어려울 것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지금 (수사 외압의) 진실을 밝히지 못하면 훗날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었는데 현실화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사단장에게 과실치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국방부의 ‘법리검토’가 설득력이 있다면 또 모르나 상식적으로 납득이 어렵다. 채 상병이 물살에 휩쓸리기 전 공지된 사단장 지시사항은 “복장 통일 철저” “얼룩무늬 스카프 총원 착용” “해병대가 눈에 확 띌 수 있도록 가급적 적색티 입고 작업” “경례 미흡" 등 복장 규정 일색이었다. 안전보다 과시가 중요했던 지휘관 명령이, 구명조끼도 없이 물 속에서 수색하던 해병의 죽음과 진정 무관한가. 법원이 판단할 기회조차 앗는 것이 정의로운가.
억울한 죽음에 엄중히 책임을 묻는 것이야말로 군의 기강과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다. 박 대령을 '정치 군인'으로 몰아 사망 사건을 항명 사건으로 둔갑시키는 데에 일조한 일부 보수 정치인·언론은 그러니 가짜 보수일 것이다. 박 대령의 방송 출연은 분명 이례적이나 “전형적으로 정치인들이 하는 행태”(유상범 국민의힘 대변인) “전 수사단장 주변에 ‘꾼들’이 달라붙었다”(조선일보)는 주장은 본질과 무관하다. 3성 장군 출신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8명이나 군 외부에 수사를 의뢰하면, 앞으로 사단장 등 지휘관들이 민간 경찰에 불려 가 조사를 받느라 정상적인 군 작전과 훈련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개탄스럽다. 사병 목숨보다 해병대 빨간 셔츠를 중시하는 지휘관이, 나라를 지키는 작전에는 성공하겠느냐고 묻고 싶다. 그런 지휘관을 감싸는 국가에, 누가 기꺼이 충성하겠는지 답해 보라. 사병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국가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박 대령은 “채수근 상병 시신 앞에서 죽음에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고 재발 방지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이 한 명의 전우도 뒤에 남기지 않겠다는 군인으로서의 진심이라고 믿는다. “정의와 정직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해병대 정신이,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 윤 일병 학대·사망사건 등 수많은 부실·축소·은폐 수사와 다른 결론을 냈다고 생각한다. 이 대의에 충실했다는 이유로 처벌받는다면, 그 나라가 지킬 가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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