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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엑손모빌·셸·스탠퍼드대는 왜 소·양 키우는 호주 시골 마을에 꽂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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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제2도시 멜버른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 떨어진 오트웨이. 드넓은 초원에 양 떼와 소 떼를 방목하는 시골 마을이 전 세계 에너지 업계로부터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은 건 2007년 탄소포집저장(Carbone Capture & Storage‧CCS) 시험센터가 들어서면서다. 탄소 저장에 적합한 고갈 가스전(가스를 채취하고 남은 지층)이 지하 2km에, 염류대수층(염분이 든 물로 가득 찬 다공성 암석층)이 지하 1.5km에 드넓게 펼쳐진 데다 각 지층 위에 두껍고 단단한 암석층이 있어 이산화탄소가 이동하지 못하게 막는 일종의 코르크 마개 같은 역할을 한다. 2004년 CCS 관련 장소로 이곳이 낙점됐고 2008년부터 한국지질자원연구원도 이곳에서 관련 연구에 손을 보탰다.
15일(현지시간) 오트웨이 국제시험센터에서 만난 폴 바라클로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시험센터 가까운 곳에 탄소 함유량이 85%에 달하는 가스전이 있는 데다 다양한 지층이 켜켜이 있어 CCS 관련 각종 연구에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호주 에너지기업 산토스가 2000년 이곳을 가스전으로 개발하려 했는데 탄소 함유량이 너무 높아 사업을 포기했고 대신 호주 국책연구기관(CO2CRC)이 전략을 바꿔 '가스 말고 탄소를 정제해 시험 장소로 쓰자'고 지역 주민들을 설득했다. 4.5㎢, 세계 최대 규모의 CCS 시험센터가 문을 열자 기업과 학계가 잇달아 러브콜을 보냈다. 폴 COO는 "탄소배출권값이 치솟으며 (시험센터에 대한) 글로벌 기업과 각종 연구기관의 관심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센터는 셰브론, 엑손모빌, 셸 등 다국적 기업을 비롯해 미국 스탠퍼드대, 영국 에든버러대 등과 협업을 맺고 CCS 기술 실증 연구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오트웨이 시험센터에 매장된 탄소량은 9.5만톤. 자동차 2만3,700여대가 1년 동안 뿜어낸 이산화탄소량과 맞먹는다.
온실가스 감축 속도를 높이고자 세계 각국은 탄소포집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공장과 발전소 굴뚝, 나아가 공기 중에서 이산화탄소를 모아 땅속에 묻거나 재활용하겠다는 것. 이 기술이 탄소중립의 주요 수단으로 관심을 끈 것은 최근이다. 2020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 기술이 207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15%를 감축하는 데 보탬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CCS가 탄소중립의 획기적 해법, 나아가 21세기 연금술로 불리는 이유다.
전 세계 기업들이 이곳으로 몰려드는 이유는 경제적 이유가 크다. 각 국가의 탄소감축 목표가 높아지면서 각종 산업에 환경 제재가 이어지고 탄소배출권 가격도 치솟았다. 2020년 2월 톤(t)당 20달러 수준이던 유럽연합(EU)의 탄소배출권 가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수요가 폭발하며 치솟아 올해 초 100달러를 넘다가 현재 90달러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다. 반면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석탄발전소에서 톤당 탄소포집 비용은 110달러 선에 그친다. 오트웨이 시험센터에서 협업 연구를 진행 중인 박용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몇 년 전까지 기업들 사이에서는 굳이 먼 거리에 탄소를 포집해 저장하지 말고 탄소배출권을 사서 환경 규제를 대응하자는 분위기가 강했다"며 "그러다 배출권 가격이 치솟으며 탄소를 배로 실어 나르더라도 묻을 필요가 있겠다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첨단 기술의 집약처럼 들리는 CCU 기술의 연구 장면은 생각보다 단출했다. 시험센터는 3개의 이산화탄소 주입정과 4개의 관측정이 1.5~2km 깊이의 이산화탄소 저장층과 연결돼있다. 산토스가 가스를 개발하려 했던 근처 이산화탄소 저류층(이산화탄소 80~100%로 구성된 지층)에서 정제한 이산화탄소 가스를 약 2km 길이의 지중 파이프로 각 주입정까지 이동시켜 저장하는 구조다. 이 센터는 3년 단위로 지하 2km 고갈 가스전, 지하 1.5km 염류대수층에 탄소를 주입하는 기술을 연구했다. 최근 광섬유를 이용한 '탄성파 모니터링 기술'(지하에 보낸 탄성파가 땅속에서 반사돼 돌아오면 광섬유 센서가 이를 파악해 지하 심부 지질 구조를 파악하는 기술)로 염류대수층에 저장한 탄소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 내년에는 지질자원연구원이 만든 저장 기술을 활용한 탄소를 지층에 묻어 변화를 관찰하는 4단계 연구를 시작한다.
그런 CCS를 한국에서 상용화하려면 몇 개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저장 과정에서 지진 등 부작용과 이를 염려한 주민들과의 마찰이다. 폴 COO는 "탄소를 저장하는 위치는 지하 800m~2km대로 천연가스나 석유가 매장된 환경과 비슷하다"며 탄소 저장 때문에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을 낮게 봤다. 이어 그는 "지역사회와 꾸준히 대화하며 그들을 설득했다"며 "주민들과 다달이 만남을 갖고 분기별로 소통 편지도 발간한다"고 덧붙였다.
외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비싼 비용도 걸림돌이다. 국내 탄소배출권 가격은 톤당 3만 원대로 탄소포집 비용보다 낮다. 그마저 경기 악화로 철강, 석유화학 공장 가동률이 낮아져 최근 8,000원을 밑돌고 있다. 이원엽 SK E&S CCS사업개발팀 매니저는 "수소 등 관련 산업까지 적용 대상에 포함돼야 사업성이 있을 것"이라며 "기업들도 다양한 수익 모델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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