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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순리 담은 사찰음식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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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흔든 K콘텐츠의 중심에 선 웹툰. 좋은 작품이 많다는데 무엇부터 클릭할지가 항상 고민입니다. '웹툰' 봄을 통해 흥미로운 작품들을 한국일보 독자들과 공유하겠습니다.
말의 힘이 적시(適時)일 때 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 흔한 인용구가 유독 가슴에 박힌다면 그건 이별 직후일 테다. "누군가는 그것이 삶의 무상함을 이른다 하지만 봄이 지고 다시 돌아오고 다시 지고 그래도 또 돌아오는 것 같은 것입니다. 그 사이사이 작은 꽃잎 같은 기쁨도 흩날리겠지요." 40년 만에 만난 불자와의 이별 앞에서 꺼낸 스님의 말이, 10년의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접고 절망한 이에게도 깊이 가닿는 까닭이다.
지난해 2월부터 카카오웹툰에서 연재 중인 한혜연의 '세화, 가는 길'은 그런 말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위로는 과하지 않고 너무 직접적이지도 않다. '주지 스님' 등이 전하는 한마디 한마디에는 종교적 색채보다 보편적 생의 철학을 돌아볼 수 있는 깊이가 있다. 각자의 사연으로 절 '세화사'에 온 인물들은 그 속에서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며 아픔을 서서히 극복해간다. 또 한혜연 작가 특유의 섬세한 선과 농담을 살린 채색이 온기를 전한다.
'세화, 가는 길'은 일종의 옴니버스 형식을 취한다. 첫 장(총 15화)의 화자인 '세화'는 연인의 자살로 '세화사'를 가게 된다. 혼자 보내는 주말을 감당하지 못해 무작정 연인의 위패가 있는 절을 매주 찾는다. 처음에는 밥 한 끼를 얻어먹고 밥값으로 간단한 심부름을 했다. 좀처럼 뭘 먹지 못하던 세화도 절 음식만큼은 잘 먹었다. 그렇게 팥죽 새알심도 만들고 두릅도 따며 점차 사찰 식구들과 가까워진다.
세화사는 등장인물들에게 쉼표와 같은 공간이다. 세화는 말없이 가만히 산만 바라보며 주지 스님과 차를 마신 첫날, 마음의 안정을 얻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을 덜어내고 툇마루 기둥에 기대 까무룩 잠도 든다. 잔잔하고 여유 있는 구성의 컷들이 평화로운 세화사 공기를 잘 전한다.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위안을 얻을 만한 문장들이 곳곳에 있다. 연인의 49재를 앞두고 "진짜 보내는 것 같아서" 한숨도 못 이룬 세화. "어디까지나 형식일 뿐입니다. 마음이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다면 그냥 지니고 있어도 괜찮습니다." 스님의 짧은 말이 조급했던 마음을 달랜다. 갑자기 사찰 김장을 홀로 책임지게 돼 우왕좌왕 걱정이 많은 '동주 스님'에게 공양간을 담당하는 '공 보살님'이 전하는 말도 마치 잠언처럼 독자에게 다가온다. "짜면 물 더 넣으면 되고 싱거우면 소금 더 치면 됩니다. 중요한 건 동주 스님이 김장을 해내셨다는 겁니다."
사찰음식도 주요 소재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제철 나물을 캐고 음식을 함께 만들고 먹는 행위를 통해 인물들은 현재를 산다. 공양간은 그래서 아픈 과거도 두려운 미래도 잠시 미뤄 둘 수 있는 공간이다. 겨울에 연인을 떠나보낸 세화는 냉이를 캐고 그 냄새를 맡으며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릴 때는 단순히 '씁쓸한 흙 맛'이던 냉이된장국이 이제는 '길었던 겨울이 끝나는 맛'이라는 걸 느낄 정도로 성장한다. 절편으로 만든 떡볶이, 민들레 김치, 쑥버무리 등 각종 사찰 요리를 보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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