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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 들여 리모델링했는데"...강릉 산불 피해 펜션 주인들 망연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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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쌓아온 결실이 순식간에 재로 바뀌었습니다."
12일 오전 탄내가 아직 가시지 않은 강원 강릉시 안현동 펜션 타운에서는 한숨을 내쉬고 있는 주민들 모습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화마에 재만 남은 펜션을 바라보던 40대 부부는 "24개 객실 중 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면서 "5년여 전 시작한 펜션 사업이 이제야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예약 손님들에게 취소 전화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펜션 주인들도 있었다. 김모(69)씨는 "날씨가 풀려 예약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는데 이젠 모두 끝"이라며 "예약 취소 전화에 손님이 '다치진 않았느냐'고 되레 걱정해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했다.
전날 발생한 화재로 피해가 집중됐던 안현동 일대 주민들은 하룻밤 새 폭격을 맞은 듯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한 건물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이날 오전 찾아간 화재 현장에서는 간신히 형체만 유지한 채 외벽이 검게 그을린 펜션들이 적지 않았고, 엿가락처럼 휘어버린 철골 구조물과 녹아내린 슬레이트 지붕은 화마의 참상을 짐작게 했다. 한 음식점 건물에서는 상수도가 터져 곳곳에서 물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펜션 업주인 신모(74)씨는 자신이 거주하던 1층 금고에 보관한 현금 1,000만 원과 귀중품이 잿더미가 돼 허탈해하고 있었다. 신씨는 지난해 3억여 원을 들여 펜션을 리모델링했고, 올해 성수기를 앞두고 다시 문을 열 예정이었다. 신씨는 "그동안 흘려온 땀방울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나"라며 억울해했다. 경포대 부근에서 20여 년 동안 펜션을 운영한 이명규(58)씨도 "화재 당시 소화기를 가지고 불을 꺼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면서 "혼자서 펜션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먹고사느냐"며 고개를 떨궜다.
사근진 일대 경포해변에 위치한 카페들도 피해가 컸다. 해안가까지 불길이 번지면서 이날도 영업을 중단한 카페가 대부분이었다. 화재 피해를 당했다는 한 카페 업주는 "고가의 커피머신 등 영업에 필요한 도구들이 모두 불에 탔다"며 "어디서 보상을 받아야 하나 막막할 뿐"이라고 했다.
이번 화재의 유일한 사망자인 전모(88)씨 사연도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펜션 주인 전씨는 옮겨붙은 불을 끄려다가 거실 창문으로 탈출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자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 생활을 하다 퇴직하고 25년 전부터 펜션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전씨는 명절이면 혼자인 외국인이나 이웃을 위해 떡국을 끓여주는 등 동네에서도 평판이 좋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웃 김모(59)씨는 "길을 가다가도 밝게 인사하고, 주변을 잘 챙겨 동네에서도 신망이 높았는데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번 화재로 이날까지 안현동 펜션 26곳 등 건물 125곳이 전소되거나 일부 불에 탔다. 또 전씨가 숨지는 등 1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재민은 323세대 649명으로 집계됐다. 화재가 발생한 곳이 숙박시설이 밀집한 펜션단지였던 만큼, 거주와 생업을 함께 이어오는 주민들의 피해가 큰 상황이다. 이모(40)씨는 "많은 펜션들이 여름 성수기를 준비하며 건물 리모델링 중이었는데, 이런 화마를 당해 가슴 아프고 막막하다"며 "피해지원 등 후속조치를 적극적으로 강구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펜션 중 특히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고 단열효과가 큰 드라이비트나 샌드위치 패널을 쓴 건물의 피해가 큰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건축외장재로 석회암(라임스톤)을 쓰고 삼중창을 단 한 펜션은 거친 화마에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아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은 주머니 사정 때문에 고가의 건축외장재를 이용해 리모델링을 하거나 신축하는 일은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이날 화재 감식반 등 전문 조사관을 화재 피해 현장에 투입해 구체적인 피해 현황을 조사하는 한편 이재민에 대한 특별 지원을 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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