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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 따사로운 ‘무소유’의 뜰… 이만하면 ‘풀소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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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의 봄꽃 구경은 절간 여행과 동의어다. 음력 섣달부터 핀다는 금둔사 납월매는 이미 절정을 넘겼고, 선암사 담장의 수백 년 묵은 매화는 한두 송이씩 꽃잎이 터져 이달 중순이면 만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선암사엔 매화 외에도 꽃나무가 많아 절간이 이렇게 호사스러워도 될까 싶을 정도다. 당연히 상춘객이 많은데, 정작 한국 불교에서 중요시 여기는 사찰은 산 너머 송광사다. 입구의 ‘승보종찰조계산송광사(僧寶宗刹曹溪山松廣寺)’라 새긴 대형 돌탑에 절의 위상이 담겨 있다. 송광사는 전국 100여 개 사찰과 암자를 말사로 거느린 대찰이다. 본당 외에 법정스님이 은거했던 불일암과, 쌍향수(곱향나무)로 유명한 천자암까지 돌아보면 매화보다 깊고 그윽한 고찰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송광사는 조계산 서편 자락에 둥지처럼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 말 혜린선사가 길상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한다. 경남 양산의 통도사, 합천 해인사와 더불어 삼보사찰로 불린다. 불가에서는 부처님과 그의 가르침, 그리고 그 맥을 잇는 승가를 세 가지 보배로 친다.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모셔진 통도사는 불보사찰, 가르침인 팔만대장경 경판을 소장한 해인사는 법보사찰, 그리고 한국 불교의 맥을 잇는 송광사는 승보사찰이다.
고려 명종 때인 약 800년 전 보조국사 지눌이 당시 타락한 불교를 바로잡아 새로운 전통을 확립한 것을 계기로, 송광사는 열여섯 명의 국사(나라의 스승이 될 만한 승려에게 내리는 칭호)를 배출했다. 사찰 들머리에 이들 큰스님의 비석을 나란히 세운 ‘비림’이 있다. 스님들을 위한 종합 수행 도량(총림)이자, 한국 불교 전통의 산실이라 자부하는 이유다.
사찰의 사찰답게 송광사에선 화려함보다 엄격한 기품이 느껴진다. 개울을 가로지르는 우화각을 통과해 사천왕문과 종고루를 지나면 곧장 넓은 마당을 품은 대웅전이 나타난다. 이를 중심으로 수십 채의 전각이 흐트러짐 없이 자리 잡고 있다. 맑은 개울을 베고 있다는 침계루와 육감정이 그나마 멋을 부린 편인데, 그럼에도 몸가짐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근엄함을 풍긴다.
본당에서 조금 떨어진 산자락에는 감로암, 광원암, 불일암 세 개의 작은 암자가 있다. 그중에 불일암은 ‘무소유’의 저자인 법정스님이 17년 머물렀던 곳이다. 불일암 가는 길은 송광사 입구 편백나무 숲에서 연결되는데 특별히 ‘무소유 길’이라 부른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진 것이다.” 그의 가르침을 곳곳에 팻말로 세워놓았다.
삼나무와 편백이 듬성듬성 섞인 넓은 숲길을 따라가다 계곡을 건너 좁은 오솔길로 연결된다. 걷는 데는 불편함이 없지만 살짝 오르막이라 아주 편한 길도 아니다. 통나무를 깔고 흙을 다진 계단을 따라가면 초록의 햇살이 쏟아지는 대숲이다. 이따금 바람소리만 사각거리는 고요의 세상으로 느리게 발걸음을 옮긴다. 발처럼 드리운 대나무 기둥으로 비껴든 햇살이 간간이 오솔길에 흩뿌려지고, 하늘까지 가린 대숲 터널이 끝나면 문득 불일암이 나타난다.
따사로운 봄볕이 작은 텃밭과 그 위에 자리 잡은 암자에 한가득하다. 후박나무, 꽝꽝나무 등 주변의 상록활엽수까지 반들거려 회색빛 산자락에서 절터만 딴 세상인 듯하다. 불가에서 말하는 피안이 이런 걸까 싶다.
살림집처럼 평범한 암자 귀퉁이에는 법정스님의 작은 사진이 걸려 있고, ‘묵언’이라 새긴 팻말에 방문 가능 시간(오전 8시~오후 4시)이 적혀 있다. 투박한 나무 걸상에는 조화와 함께 ‘맑고 향기롭게’ 소책자가 놓여 있다. ‘이 땅의 텅 빈 사람들에게 법정스님이 보내는 메시지’가 수록돼 있다.
3월 호 첫머리에는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라는 글이 실렸다. “나는 오늘 아침, 겨울 산의 적막 속에서 때아닌 새소리를 듣는다. 휘파람새와 뻐꾸기와 박새, 동고비, 할미새와 꾀꼬리, 밀화부리, 산비둘기 그리고 소쩍새와 머슴새와 호반새 소리에 눈 감고 숨죽이고 귀만 열어 놓았다.” 간간이 쟁쟁~거리는 풍경소리에 스님이 들은 새소리가 섞여 있다.
불일암은 송광사 16국사 중 자정국사가 창건한 자정암 터에 고쳐 지은 암자다. “법정스님은 1975년 재출가의 의지로 몇 군데 토굴 터를 둘러보시고는 자정암에 오르셨다. 남향으로 햇볕이 좋고 샘물도 맛이 좋았다. 마침 매화가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보성 대원사 주지 현장스님이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에 묘사한 당시 상황이다. 지금이 딱 그 시기여서 주변 풍광으로만 보면 ‘무소유’의 은신처가 아니라 ‘풀소유’의 이상향이다. 법정스님은 댓돌 위에 낡은 고무신 한 켤레를 남기고, 평소 아끼던 앞마당 후박나무 아래에 영원히 잠들었다.
송광사를 기준으로 불일암 반대편 약 3.5㎞ 떨어진 산중턱에 천자암이 있다. 산길로 걸으면 더욱 운치 있겠지만, 근래에 암자 바로 아래까지 길이 나서 차로도 갈 수 있다. 단 좁고 급경사라 운전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천자암에 가는 가장 큰 이유는 800년 된 향나무를 보기 위해서다. 어디나 흔한 향나무가 뭐 그리 대단할까 싶지만, 막상 그 앞에 서면 경외심으로 우러러보게 된다. 가슴 높이 둘레가 4m에 달하는 아름드리 향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데, 나선형으로 뒤틀리고 꼬이면서 자란 모양이 예술작품인양 멋과 힘이 넘친다. 죽은 듯 희뿌연 가지에 푸른 잎이 무성해 오래된 나무의 기품과 생명력이 동시에 느껴진다.
향나무는 이름처럼 심재가 향기로워 제사 때 망자의 영혼을 불러 위로하는 신성한 나무로 대접받는다. 천자암 향나무는 고려 때 보조국사와 제자인 담당국사가 중국에서 짚고 온 지팡이를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를 내리고 자란 것이라는 얘기가 전해진다. 한 나무가 다른 나무 쪽으로 살짝 기운 모습이어서 사제 간의 예의를 상징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전설이야 믿거나 말거나지만 생태적, 문화적 가치는 진작에 인정받았다. 높이 12.5m에 달하는 두 나무는 풍채가 뛰어나고 조화로워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곱향나무)’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에 올라 있다.
암자는 해발 530m 부근 조계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 전망이 시원하다. 종루 아래 깊은 계곡 건너편으로 높고 낮은 산줄기가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해 질 무렵 풍광이 특히 빼어나다고 한다. 쌍향수 바로 뒤편 계곡에는 봄이 되면 해마다 복수초와 얼레지가 지천으로 피어나는데, 올해는 볼 수 없게 됐다. 암자의 일손을 돕는 공양주는 수로 공사를 하며 기계 발자국에 망가진 듯하다고 아쉬워했다.
천자암으로 가자면 상이읍마을을 거친다. 아래에 이읍마을이 있어서 상이읍이다. 경사진 언덕배기에 터를 잡은 마을을 지나노라면 바위로 축대를 쌓은 다랑논이 층층이 보인다. 원래 있던 큰 바위에 작은 돌을 끼워놓은 모양도 보인다.
페루의 고대 유적 마추픽추가 별건가. 농지가 귀한 산자락을 논밭으로 일구자니 억척스럽게 축대를 쌓을 수밖에 없었다. 3대째 마을에 살고 있다는 한 주민은 선대도 어릴 적부터 봐 왔으니 못해도 100년은 됐을 거라고 했다. 주택 담장도 돌담이 많아 호젓하게 쉬어가기 좋은 마을이다. 길가에 듬성듬성 심은 매화가 팝콘처럼 터지고, 담장 위 산수유도 몽글몽글 봉우리가 부풀었다. 산마을의 봄이 꿈결인 듯하다.
송광사로 가자면 주암호 주변으로 연결된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간다. 섬진강 지류인 보성강을 막은 주암댐 호수로 전라남도 최대 규모의 담수호다. 광주·나주·목포·화순 등 전남 서부 지역에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산중 호수다. 145㎞에 달하는 호반을 따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데 올해는 극심한 가뭄으로 가장자리마다 붉은 속살이 드러나 있다.
호수 상류 고인돌공원은 드라이브를 즐기다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1986∼1987년 주암댐 수몰지구에서 발굴된 고인돌 가운데 양호한 것들을 이전해 조성한 공원이다. 송광면 우산리 내우에서 옮겨온 50여 기를 비롯해 약 140기의 고인돌이 흩어져 있다. 인적이 드물어 한적하게 산책하기 좋은 야외인데, 해가 지기도 전인 오후 6시까지(매표 마감 오후 5시, 입장료 1,000원)만 개방하는 점은 못내 아쉽다.
송광사에서 호수 건너편 유경·후곡·왕대마을은 깊고 깊은 순천의 오지마을이다. 길이 끝나는 왕대마을 뒤편 계곡에 조선 후기에 가꾼 초연정 원림이 있다. 원림은 집터에 딸린 숲을 일컫는다. 초연정은 헌종 2년(1836) 조진충이 초가로 지은 옥천 조씨 제각을 그의 아들이 기와지붕으로 고쳐 지은 정자다. 마루에 걸터앉으면 발아래 계곡 암반으로 맑은 물이 흐르고, 뒤뜰에는 기묘한 형상의 집채만 한 바위 군상이 흩어져 있다.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던 조상들의 멋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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