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어떤 양형 이유> <법정의 얼굴들>의 저자인 박주영 판사가 세상이란 법정의 경위가 되어 숨죽인 채 엎드린 진실과 정의를 향해 외친다. 일동 기립(All rise)!
전체 인구 대비 교육, 소득 수준 열악한 장애인 집단
OECD 대비 장애인 인정과 지원에 소극적인 한국
'유니버설 디자인'에 맞춰 장애인 복지 적극 나서야
지하철 탑승 시위를 둘러싸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와 서울시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은 잠시 보류하자. 장애인의 실태를 살피는 것이 먼저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간한 '2022년 장애통계연보'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등록 장애인은 264만4,700명이다. 대졸자 비율은 14.3%(전체 평균 39.7%), 경제활동 참가율은 37.3%(63.7%), 실업률은 7.1%(4.0%)다. 고용률 37.3%(63.7%), 평균 월급은 192만2,000원(273만4,000원), 비정규직 비율은 67.8%(38.4%), 가구 경상소득은 4,557만 원(6,125만 원), 빈곤율은 35.6%(14.6%)다. 우리나라 장애인은 전체 인구 대비 대학진학률이 3배 낮고, 비장애인 대비 소득은 70% 정도인데, 실업률은 1.75배, 비정규직 비율은 2배, 빈곤율은 2.4배 높다. 외국은 어떨까. 2017년 OECD 국가의 장애인복지 지출규모는 GDP 대비 2.02%이다(우리는 0.60%). 장애인 빈곤율은 우리가 OECD 평균보다 1.6배 높다. 더 놀라운 통계가 있다. 2021년 OECD 31개 국가의 장애인 출현율이 평균 24.3%인 데 반해, 우리는 5.4%로 최하위다. 우리가 OECD 평균보다 장애인이 4배 적은 이유는, 쉽게 인정하지 않아서다.
다음은 그 사례다. A는 초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틱 증상을 보이다 '뚜렛증후군(음성과 운동 틱이 모두 나타나고 유병기간이 1년을 넘는 경우)' 진단을 받았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10년 넘게 치료받았음에도 나아지지 않았고 급기야 앉아서 일할 수도, 다른 사람과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으며 차를 타고 장시간 이동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양평군수는 A의 장애인 등록신청을 반려했다. A가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2015년 1심마저 A의 청구를 기각했다. 2019년 10월 31일,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A의 손을 들어주었다(2016두50907 판결).
대법원이 장기간 고민한 이유는 무엇일까. 장애인복지법에 '장애인이란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라고 규정되어 있음에도, 시행령이 장애 유형을 15가지(지체, 뇌병변, 시각, 청각, 언어, 지적, 자폐성, 정신, 신장, 심장, 호흡기, 간장, 안면, 장루·요루, 뇌전증)로만 규정했는데, 뚜렛증후군이 이 유형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아서였다. 대법원은 명시적인 규정이 없더라도, 해당 장애와 가장 유사한 장애의 유형에 관한 규정을 찾아 유추 적용하는 것이 모법의 취지와 평등원칙에 부합한다고 봤다.
제법 오래 판사로 있었지만, 법 해석은 언제나 어려운 작업이다. 실정법의 불비나 한계에 봉착할 때면 더욱 그렇다. 물론 쉽게 가는 길도 있다. 초청장에 이름이 있는 사람만 입장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판사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열거되지 않았다고 실격시켜도 되는 인간은 없다. 가능한 모든 해석에도 답이 안 보일 때, 비로소 판사는 의회 쪽을 쳐다봐야 한다.
앞선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 비효율적일까. 그렇지 않다. 지하철 역사의 엘리베이터는 노인이나 임산부, 캐리어 이용자가 훨씬 더 많이 사용한다. 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편의시설은 비장애인에게도 큰 편익을 준다. 이걸 '유니버설 디자인'이라 부른다. 인권 역시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설계된 것이다. 장애인이 보호되면 그 이상으로 비장애인도 보호받는다. 뚜렛증후군 환자의 탑승을 거부한 양평군수처럼, 무정차로 달려간다고 우리가 바라는 사회에 빨리 도달하는 게 아니다. 그런 지하철의 정차역에서는, 나는 내리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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