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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 설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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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명절을 앞두고, 주변에 평소 고마움을 전하는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오랜 풍습이다. 그런데 이번 설에는 ‘스팸’ 선물 세트가 유독 많이 팔려 유통업계가 긴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5만 원 이하 저가 선물 세트가 많이 팔리는데, 이번 설에 이런 현상이 더 뚜렷하다는 것이다. 전통 명절에 부담 없이 마음을 전하는 선물의 대표 품목으로 미국에서 건너온 가공육 스팸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모양이다.
□ 1차 대전 당시 미군 병참 장교였던 제이 호멜은 “군인들에게 뼈를 분리해 살코기만 공급한다면 효율적일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대공황 와중인 1937년 ‘호멜 스파이스드 햄’이라는 통조림 햄을 시장에 내놓았고, 곧 ‘스파이스드 햄’을 줄인 ‘스팸(SPAM)’으로 불리게 된다. 2차 대전은 스팸을 전 세계에 알린 기회였는데, 호멜 사는 전쟁 기간 스팸을 6만8,000톤가량(2억 캔·340g 단위) 판매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동맹국이었던 소련에도 공급돼 소련 군인들은 ‘루스벨트 소시지’라고 불렀다. 하지만 참전했던 미국인들에게는 전장의 고통을 기억나게 하는 기피 음식이기도 했다.
□ 반면 미군이 주둔했던 필리핀 괌 오키나와 그리고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스팸은 비교적 저렴한 돈으로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고마운 존재였다. 특히 아시아 주식인 쌀과 짭짤하고 기름진 스팸은 찰떡궁합을 보여줘 독창적 퓨전 요리가 속속 등장했다. 하와이의 두툼한 스팸을 올린 주먹밥 ‘무스비’가 대표적이다. 얼큰한 국물에 스팸을 넣어 끓이는 ‘부대찌개’ 덕에 한국은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스팸 소비국 자리에 올랐다.
□ 호멜 사도 이런 음식문화 융합에 주목해 한국 대만 베트남의 유명 요리사들과 협력해 전통음식과 스팸이 조화되는 음식을 개발하는 노력을 계속했고, 그렇게 개발한 음식들을 광고 소재로 삼는다. 미국 CNN은 지난해 말 “스팸이 아시아 음식과 융합하면서 참신한 식재료로 재인식되며 미국에 새롭게 소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음식을 세계에 알리는 데 일조한 스팸이 이번 설 연휴에는 불경기에 얼어붙은 서민들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 선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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