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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이동권의 창의적 해법에 대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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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독일의 사회운동가 페트라 켈리의 말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할 때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인용하며 한 말이다. 이 두 말을 종종 떠올린다. 전자는 문제를 만났을 때, 후자는 그 문제해결 방안을 고민할 때 주로 떠올린다.
내가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해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한다면, 이동 수단이 마땅치 않아서 출근하거나, 친구를 만나는 일 등이 어려워진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 된다는 것이 곧 삶의 감옥에 갇히는 일이 되는 거라면 난 어떻게 될까. 나에게 이보다 더 정치적인 일이 또 있을까.
내가 오랫동안 준비했던 회사 면접을 보러 가는 날,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지하철 시위로 지하철 운행이 늦어져 면접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에 대한 책임이 시위가 있을 것을 예상하지 못해 다른 교통수단을 선택하지 않았던 나에게만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에게 이보다 더 정치적인 일이 또 있을까.
우리 사회 구성원들 중에 장애인들이 그들이 가진 장애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을 편히 할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에 편히 갈 수 있는 사회가 오길 바라지 않는 이가 누가 있을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바라지 않는 이가 우리 중에 누가 있을까. 오랫동안 성실하게 취업 준비를 한 이가 면접을 잘 마쳐 바라던 회사에 취업하는 것을 응원하지 않는 이가 우리 중에 과연 누가 있을까.
이 두 가지 사안 중 어느 것이 중하고 중하지 않다 이야기할 수 있을까. 동료 시민들 간에 서로 마음을 다해 응원할 수 있는 이 일들이 왜 함께 존재할 수 없는 일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을까? 나의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정치적인 일이, 다른 누군가의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정치적인 일을 방해하는 사건이 되길 바라는 이가 우리 중에 누가 있을까? 장애인 지하철 시위가 이루어지고 있던 그 지하철을 타고 있던 시민 중에 과연 누가 있을까.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한 구성원으로서 당연하게 제공받아야 할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는 장애인들의 요구가 문제인가? 대중교통이 나를 제시간에 가야 할 목적지에 도착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는 시민의 믿음이 문제인가? 이 요구와 이 믿음이 서로 충돌하는 가치인 것처럼 만든 이는 누구인가?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동료 시민들의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정치적인 일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도록, 그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길을 만들어야 할 책임과 의무와 권한을 부여받은 이들이 그 책임을 오랫동안 내팽개쳐온 탓이 아닌가.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요구가 2023년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현실, 우리들의 일상을 실어 나르는 지하철이 동료 시민들 간의 소중한 일상이 충돌하는 개미지옥이 된 현실, "가장 개인적인 일이 가장 창의적인 일이다"는 문장을 떠올리며 이 문제를 해결할 가장 창의적인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이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굳이 가장 창의적일 방법을 찾을 필요도 없이, 입법과 행정을 통해 당연히 되어야 할 일이 당연히 되는 그런 경험을 우리는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우리 국회와 행정부에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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