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동물학대 제대로 처벌하려면 민법 개정∙양형기준 마련이 우선"

입력
2023.01.06 11:00
구독

'애니청원' 공감에 답합니다

편집자주

문재인 정부 시절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으로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공론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말 못하는 동물은 어디에 어떻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까요. 이에 동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의견을 내는 애니청원 코너를 운영합니다.


경의선 고양이 살해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자두'의 생전 모습. 자두의 반려인은 자두가 자신의 고양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 자두 보호자 제공

경의선 고양이 살해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자두'의 생전 모습. 자두의 반려인은 자두가 자신의 고양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 자두 보호자 제공

"고양이 '두부' 담벼락에 쳐서 죽인 범인, 온당한 처벌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보도(12월 23일)한 애니청원에 포털사이트와 한국일보닷컴을 통해 공감해 주신 분이 545명에 달했습니다.

경남 창원시 한 식당에서 기르던 동네고양이 '두부'를 시멘트 벽에 16차례나 내리쳐 잔혹하게 죽인 범인에게 지난달 1심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이에 시민들은 최근 동물범죄 판결 흐름에 역행하는 낮은 형량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온당한 처벌을 내려달라는 청원에 많은 이들이 공감해 주셨는데요.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겸 카라 동물범죄 전문위원장에게 이번 판결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최민경 카라 정책행동팀장에게는 형량이 낮게 나왔다고 판단한 근거를, 고양이 '두부' 보호자에게는 두부를 기르게 된 계기, 재판부에 바라는 점을 들어봤습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민법 개정되면 동물학대 범죄 형량 높아질 것

지난해 1월 경남 창원시에서 무참히 살해된 고양이 두부 생전 모습(왼쪽 사진)과 이후 밥 자리에 놓인 국화꽃. 카라 제공

지난해 1월 경남 창원시에서 무참히 살해된 고양이 두부 생전 모습(왼쪽 사진)과 이후 밥 자리에 놓인 국화꽃. 카라 제공

-형량이 낮게 나왔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판사들이 기존 형사사건을 다룬 것과 비교해도 이번 사건이 과도하게 낮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법에 동물권이 인정되고 있지 않아서입니다. 즉 사물로서 존재하는 고양이를 내리친 것으로 판단한 겁니다. 다만 폭력성을 줄이기 위한 교육이나 치료 명령 없이 집행유예를 내렸다는 부분은 아쉽습니다. 재발 가능성을 묵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하 박미랑 교수)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으로 민법이 개정되면 형량에 영향을 미칠까요.

"매우 비약적으로 해석하면 지금은 동물학대를 남의 물건을 부수는 것, 재물손괴로 여기고 있고 동네고양이처럼 주인이 없는 '물건'을 학대할 경우 엄중 처벌하기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민법 개정으로 법적 지위가 물건이 아닌 존재, 생명체로서의 가치를 갖는다면 결과적으로 형량이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소유주 여부도 따질 필요가 없어집니다."

-동물학대 재판 결과가 재판부에 따라 크게 다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있을까요.

"동물학대 범죄 관련 양형기준을 마련하는 겁니다. 양형기준이 마련됐다 해서 형량이 바로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일단 일관성은 담보될 겁니다. 양형기준 마련을 위해선 그만큼 판례가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실제 동물학대 범죄가 기소가 돼야 합니다."

양형기준 마련 위해선 동물범죄 수사부터 제대로 이뤄져야

동물권행동 '카라'의 활동가가 창원지방법원 앞에서 고양이 '두부'의 생전 사진이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동물권행동 '카라'의 활동가가 창원지방법원 앞에서 고양이 '두부'의 생전 사진이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검찰은 '두부'를 죽인 범인을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보호자가 없다고 본 건데 '두부'는 어떻게 돌보게 되셨나요.

"지난해 11월 초 가게 주변을 서성이던 고양이를 우연히 보고 처음에는 가게 음식을 챙겨줬습니다. 그랬더니 가게를 떠나지 않더라고요. 계속 사람 음식을 줄 수 없어 사료를 샀고 집도 마련해줬습니다. '두부'는 문 앞에서 손님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손님이 없을 땐 가게 안에 들어와서 놀았고요. '두부'는 가게 마스코트였어요." (이하 두부 보호자)

-재판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초등학교 1학년, 3학년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두부'를 많이 아꼈기에 처음에는 '두부'가 죽은 걸 비밀로 했어요. 사건이 커지면서 아이들도 어쩔 수 없이 알게 됐습니다. 아이들과 밤새 울면서 '두부'를 죽인 사람을 제대로 벌 받게 하겠다 약속했어요. 앞으로 아이들이 사는 세상이 더 안전해질 수 있도록 동물학대 범죄를 제대로 처벌해야 합니다."

두부와 두부 보호자가 처음 만난 날의 사진.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두부와 두부 보호자가 처음 만난 날의 사진.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형량이 낮게 나왔다고 판단한 이유가 있나요.

"서울 경의선 숲길에서 고양이 '자두'를 땅바닥에 내리쳐 잔혹하게 죽인 범인징역 6개월이 선고된 바 있습니다. 두부 사건 역시 범행수법도 유사하고, 잔혹성도 자두 사건 못지않은데 집행유예가 나온 겁니다. 이번에는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되지 않은 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동물권 인식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하 최민경 카라 정책행동팀장)

-양형기준 마련에 대한 목소리가 높지만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사례축적 부족이 현실적 한계 요인으로 꼽힙니다. 판례가 많아야 양형기준 필요성이 논의되고, 판례를 바탕으로 양형기준을 설정하게 되는데, 동물학대 사건은 지금까지 기소조차 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동물학대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기소율이 높아져 판례가 늘어나야 합니다. 수사기관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시민 역시 동물학대 현장이 있다면 지나치지 말고 적극 신고하는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