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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구 사나이'의 응원 덕에 월드컵 '도하의 기적' 일어난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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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카타르 월드컵은 제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어요. 기적 같은 일을 해낸 우리 선수들에게도 감사하지만, 저 역시 정말 특별하게 응원했거든요."
이번 월드컵을 특별하게 보낸 이가 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독특한 방식으로 응원을 다녔다. 그렇다고 공식 서포터즈나 유명인도 아니다. 그저 축구를 사랑하는 평범한 시민이다. 그 주인공은 '대구 사나이' 이형상(34)씨. 친구들은 그를 두고 '축구에 미친 사람'이라 할 정도인데, 365일 머릿속이 축구로 가득 차 있어서다.
일상생활이 축구 그 자체다. 평상시에도 자신이 소유한 국내외 선수들의 유니폼을 입고 다니고, 백팩에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자수 패치와 배지가 달려 있다. 방한용 장갑이나 머플러, 귀마개 등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첼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구단들의 굿즈를 착용한다. 최근 읽는 책도 'K리그를 읽는 시간' 등 축구 관련 서적이다. 이 때문에 축구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오해받기 일쑤다.
특히 그는 K리그에 푹 빠져 있다. FC서울의 오랜 팬인 그는 시즌 중 경기를 '직관(직접 관람)'하기 위해 일주일에 최소 사흘 이상은 경기장을 찾았다. 차로 4~5시간 거리의 서울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축구 직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축구를 보기 위해 야근이나 주말 근무도 자처해서 하곤 했다.
그러다 두 달 전 10년 간 직장인 생활에 쉼표를 찍었다. 브레이크 없이 달려오다 방전된 자신에게 잠깐의 휴식을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씨는 내년 초 다시 직장을 구할 때까지 쉬면서 사랑하는 축구에 더 집중해 보기로 했다.
오롯이 축구를 위해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하면서 2022 카타르 월드컵 '100% 즐기기' 모드에 돌입했다. 비록 카타르 현지에 가지는 못하지만 이곳에서 자신만의 특별하고 독특한 응원을 해보기로 말이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이후 12년 만에 16강 도전에 나서는 대한민국 대표팀을 위해 이름하여 '승리 기원' 여행을 계획한 것이다.
"유상철 감독님도 월드컵 지켜보셨겠죠?"
이씨가 고른 첫 번째 여행지는 충북 충주였다. 20년 전 온 국민의 마음속에 '꿈은 이루어진다'는 희망을 현실로 바꿔준, '2002 한일 월드컵 영웅' 고(故) 유상철 전 인천유나이티드 감독이 영면한 곳이다.
고인의 팬이었던 이씨는 추모 1주기였던 지난 6월에도 이곳을 다녀갔다. 월드컵 개막이 다가오면서 고인이 떠올라 주저 없이 지난달 다시 찾았다. 대구에서 충주까진 승용차로 2시간 이상 걸린다. 이씨는 "불현듯 고 유상철 감독이 너무 그리웠고 마음이 시켜서 움직이게 됐다"고 했다. "그날따라 하늘이 맑고 청명해서 정말 좋은 기운을 느꼈다"며 주변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더불어 15년 전 '축구 신동'으로 유 전 감독과 인연을 맺은 이강인(21·마요르카)에게도 힘을 달라고 빌었단다. 유 전 감독은 2019년 성장한 이강인과 재회해 캠핑을 하며 "네가 뛰는 경기를 꼭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고인의 소원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씨의 바람이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결과론이지만 이강인의 월드컵 활약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유 전 감독님이 월드컵에서 뛰는 이강인 선수를 보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요? 이강인 선수도 월드컵에 처음 출전하니 꼭 한국이 승리하는 데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월드컵 '응원의 대가' 만나 16강 기원했죠"
이씨는 지난달 중순 대전에도 다녀왔다. 우리나라에서 월드컵 응원을 가장 많이 다닌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얼굴에 태극무늬를 그리고 태극기로 옷을 만들어 입는 분으로, '태극기 아저씨' 박용식(59) 레드앤젤 응원단장이다.
이씨는 이미 박 단장과는 일면식이 있는 사이다. 이번엔 카타르로 응원하러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갔다. 박 단장은 대전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로, 4년마다 월드컵 때만 되면 장사는 뒤로하고 응원에 열중하는 진정한 '축미남(축구에 미친 남자)'이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부터 태극기 응원에 나서고 있으며, U-20(20세 이하) 월드컵까지 30여 년간 60회가량 해외로 원정 응원을 다녔다.
그래서 "박 단장님의 열정을 늘 존경해왔다"는 이씨. 그는 박 단장에게 "제 몫까지 응원을 부탁드리며 보잘것없지만 저의 기를 넣어드리고 왔다"며 웃었다. 박 단장도 "응원 잘하고 오겠다"며 이씨의 마음을 잘 받았다고 한다.
그 때문이었을까. 대한민국의 16강을 결정짓는 포르투갈과의 3차전에서 박 단장의 얼굴이 중계화면에 잡혔다. 태극기 무늬로 얼룩졌던 그의 얼굴은 금세 환희를 내뿜었다. '도하의 기적'을 만든 16강전 진출은 박 단장에게도 이씨에게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됐다. 이씨는 "카타르로 원정 응원을 간 한국 팬들이 108배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이런 간절한 응원이 우리 선수들에게 닿아 기적을 만들어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대나무처럼 강하고 멋지게 승리했으면"
이씨는 울산에서도 기원하는 마음을 전하고 왔다. 태화강 국가정원 내 대나무가 쭉 뻗은 '십리대숲'을 거닐었다. 그것도 2002 한일 월드컵 대표팀 주장이었던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의 유니폼을 입고서. 20년 전 '4강 신화'의 기적을 또 한 번 바라는 마음이 컸다.
2002 한일 월드컵은 이씨가 축구에 빠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대구 소년은 당시 "한국에서 펼쳐지는 거리 응원에 놀랐고, 패배를 모르는 대표팀의 질주에 감동했다"고 한다. 붉은 색 티셔츠를 입고 모르는 사람들과 응원하고, 밤 늦도록 거리에서 '대~한민국!'이 들려오는 소리가 거의 한 달간 이어졌다고. 이씨는 "'다시 그런 날이 올까'라는 생각에 한일 월드컵 20주년인 이번 월드컵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제 나름의 방식으로 20주년을 기념했다고 할까?"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씨의 바람대로 멋지게 16강에 올라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줬다. '간절하게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전 국민의 염원이 깃든 결과였다. 이씨의 말마따나 20년 전 그때의 감동이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안와골절로 인해 보호 마스크를 착용한 채 모든 경기 풀타임 출전했던 손흥민(30·토트넘), 햄스트링(허벅지 뒤쪽 부분) 부상에도 전력 질주하며 골을 득점한 황희찬(26·울버햄튼), 머리에 두른 붕대를 벗어던지고 중원을 지킨 황인범(26·올림피아코스) 등 선수들의 활약은 국민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2002년에 전 중학생이었습니다. 그때의 응원 열기와 감동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요. 이번에도 그때와 똑같은 전율과 감동이 전해져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제 내년에는 K리그로 돌아가야죠. 월드컵의 기운이 K리그로 향하기를 또 한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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