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어떤 양형 이유> <법정의 얼굴들>의 저자인 박주영 판사가 세상이란 법정의 경위가 되어 숨죽인 채 엎드린 진실과 정의를 향해 외친다. 일동 기립(All rise)!
가족법에서 제일 중요한 자(子)의 복리
누구 관점에서 '복리'를 보느냐가 관건
보호받는 대상자의 마음으로 다가가야
'미성년자인 자는 그 가에 있는 부의 친권에 복종한다.'(1958년 제정 민법 제909조) 이 규정은 2005년 '부모는 미성년자인 자의 친권자가 된다'로 바뀌었다. 이때 '자의 복리' 개념이 민법에 들어왔다. 이혼 실무에서 이혼의 자유와 자녀의 복리가 흔히 충돌하는데 요즘은 후자로 무게중심이 쏠리는 추세다.
2022년 11월 24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혼인 중이 아닌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성별정정을 불허해서는 안 된다(2020스616)'고 결정했다.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자녀의 복리를 이유로 성별정정을 불허하던 기존 견해(2009스117)를 11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그 주요 내용이다.
"···성별의 확인은 개인이 가족질서 내에서 갖는 지위나 역할에 우선하여 결정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삶의 필수조건이다. ···사법은 다수결 원칙이 지배하는 입법이나 행정과 달리 다수의 정치적·종교적·사회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소수자를 보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할 때 그 존재 의의가 있다. ···성정체성 및 성별정정 문제는 제도에 앞서는 인간 실존의 문제임을 성찰해야 한다. 이는 '사회적 찬반양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헌법 정신의 빛이 아무리 고귀하더라도 그 빛이 소수자인 성전환자들을 포함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고루 미치지 않는다면 그 의미는 퇴색할 것이다."
이 판결은 성전환자의 권리를 신장한 것이지, 자의 복리의 중요성을 격하시킨 것이 아니다. 자녀의 행복과 이익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이나 행복추구라는 기본권에 견줄 만큼 중요한 가치임을 환기하고, 이전 판례의 기계적 판단 즉, 자녀가 부모의 성전환에 동의하더라도 그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성별정정을 불허함으로써 복리를 명분으로 복리를 침해하는 부당한 결론을 바로잡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제 자의 복리가 가족법 영역에서 최우선 가치라는 점에 이견이 없다. 중요한 것은 복리를 누구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는가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디즈니월드 부근 모텔에 장기투숙 중인 싱글맘 핼리와 여섯 살 딸 무니의 이야기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모텔 등에서 거주하는 '히든 홈리스'의 삶을 다룬 영화다. 핼리는 방에서 마리화나를 피우고, 생활비를 벌려고 딸을 앞세워 돈벌이하거나 성매매까지 한다. 핑크색 파스텔톤의 화사한 화면이 무색하게 무니의 삶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무니는 막무가내로 밝고, 완강하게 천진하다. 아동학대를 이유로 아동국이 무니를 핼리로부터 분리하려고 개입하는 순간, 이 타고난 낙천가도 버틸 재간이 없다. 무니는 절친 젠시를 찾아가 '넌 내 단짝인데 다신 못 볼지 몰라. 잘 있어'라고 말하며 엉엉 운다. 사실 핼리는 괜찮은 엄마다. 약간의 도움이 필요할 뿐이다. 관객은 알지만 아동국 사람들만 모른다.
실무를 보면 매사 이런 식이다. 미성년 자녀는 말할 것도 없고, 청소년의 건전한 성장을 돕는다는 소년법에 따라 처분받는 보호소년도, 치료나 지원이 절실한 정신질환자나 장애인도, 노숙자나 기초수급자도, 그 누구도 자신의 복리를 말하지 않는다. 아니 아무도 이들의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이들은 보호대상임에도 정책의 입안이나 집행과정에서 배제된다. 이래서는 안 된다.
2022년 11월 8일 미성년 자녀의 복리를 강화하는 내용의 가사소송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에는 가정법원이 친권자나 양육권자를 지정할 때 나이를 불문하고 자녀의 진술을 의무적으로 듣도록 했다. "아픈 물고기들을 치료하려고 물에다 귀를 대요. 물고기의 말을 듣는 거죠."(둘리틀 선생 항해기) 고통이나 행복은 법전과 판례가 아니라, 물고기나 무니의 마음에 규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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